최근 보건복지부에서는 활동보조 서비스 기관, 복지관, 직업재활시설, 생활시설, 장애인단체 등 모든 시설과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보조금을 주었으니 평가는 당연하다. 그러나 평가는 최소한 객관적이거나, 서비스 질을 높이거나, 업무를 더욱 잘 하도록 지도하거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고 문제점을 개선하고,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평가가 너무 강하다 보면 평가 준비가 새 업무가 되기도 하고, 평가 요령을 익히는 기술이 발전하기도 한다.

따라서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객관적일 수도 있다.

몇 년 전 직업재활 시설 평가에서 경기도 수원 소재 모 장애인단체의 취업실적 서류를 보고 직원 두 명이 연간 160건의 취업을 알선한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최하점을 부여한 적이 있다.

이에 반발하여 그 단체는 보사연과 평가를 맡은 교수가 속한 학교 정문에서 집회신고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 다음 해 평가에서 서류와 사실 확인을 하고 그 실적들을 인정하여 최고의 점수를 부여받았다. 그 단체는 평가 점수는 1년만에 최하에서 최상으로 바뀌었다.

평가를 하고 나면 담당 직원이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꼭 나온다. 그런 경우 일을 잘하지 못하여 스스로 그만 두는 경우도 있지만, 평가의 방법과 적용에 대하여 울분을 참지 못하고 무력감으로 실망하여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지난 해 장애인단체를 평가하러 온 한 교수는 "장애인 자립이라는 것이 이상이지 실제로 그게 가능하냐? 성인장애인들은 시설을 많이 만들어 보호시설로 보내야지 예산을 낭비하며 자립이라는 헛된 꿈을 주어서는 안 된다, 단체는 시설처럼 체계적으로 하지도 못하는데 국고를 낭비하며 예산을 지원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한 경우도 있었고, "장애인 단체들이 정부가 주는 돈으로 잡지나 내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한 교수도 있었다.

평가 점수가 낮은 경우는 교수의 이해 부족이나 서류 미비로 인한 것이 오히려 많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거나 사업의 타당성이 낮아서 평가점수가 낮은 경우는 오히려 적었다.

보건복지부가 보건복지부 직원들로만 장애인단체를 평가하자 조세연구원에서는 외부 인사를 평가자에 포함하여 평가할 것을 지적하였다.

그렇다면 외부 인사를 포함하면 되는 것을 평가 도구를 만들고, 평가에 필요한 예산을 별도로 편성하고, 평가를 연중행사로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하였다.

평가 실적이 곧 감독기관에게는 면피가 되는 것이다.

체계적 평가를 하는 것이 일하는 사람의 안일이나 태만을 막을 수 있다는 점과 스스로 문제를 개선할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평가 도구의 문제나, 평가자의 자의적 해석이 들어가면 평가는 '독'이 된다.

장애인판정에서 평가를 강화한 결과 장애인들은 자부담이 엄청나게 들었다.

2년마다 진전될 가능성이 없는 장애를 다시 증명해야 하고, 판정기준에 없는 질병의 원인을 증명해야 했다.

의학적 검사도구로 하지마비의 불능을 증명해야만 인정받게 되는 평가를 위한 평가로 인한 등급하향이 나오고, 판정무용론이 나오는 현상이 서비스나 시설 평가에도 나타난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평가 도구가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모순을 최대한 줄이고,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노력한다면 도구의 개발만으로도 발전이라 하겠다. 그러나 평가도구의 사용지침이 모든 경우를 상세히 빠짐없이 적어 두지는 못하므로 평가자의 기술이 추가로 요구된다.

평가의 객관성을 위하여 주로 교수들이 동원된다. 그런데 교수들의 그 권위에 완장을 찬 허세와 자의적 해석, 평소의 사견이 포함되어 평가는 엉뚱하게 적용되어 버린다.

현재 장애인개발원은 개발원 직원과 교수들로 3개 팀으로 나누어 직업재활시설의 평가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한 교수가 취업시킨 실적 적용에 있어 서류는 믿을 수 없으니 취직되었다는 사업주의 확인서가 없는 것은 전혀 알선 실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반면에 실제로 취업하지 않아도 사업주의 확인서만 있으면 그것은 인정된다.

장애인이 취업한 경우 사주에게 취업확인서를 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으나 강제로 요구할 수는 없디. 그러한 격식을 귀찮아하는 사업체의 경우는 고생하여 실제 취업한 것도 인정되지 않으니 아예 취업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

확인서가 없으면 취업실적이 인정되지 못하므로 차라리 확인서를 주지 않는 사업체에는 취업을 아예 알선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 것이고, 이로 인한 취업의 피해는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의 사기를 꺾어버리고, 평가자가 호통을 치면서 모든 종사자를 자신의 강의를 받는 제자로 취급하는 듯 트집을 잡아서라도 가르치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문제는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줄 경우 원망을 들을 것을 우려한 교수들이 평가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자 개발원이 교수 구하기에 급급하여 평가시마다 항상 이상한 교수가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강의만 하고 실무를 한번 해보지도 않은 교수가 시어머니가 되어 가르치는 것은 그래도 약이 된다고 참을 수 있으나, 평가도구의 적용을 개인적 권위로 공통되지 않은 잣대를 만들어 고집하고 적용해 버리는 교수들부터 평가를 받아야 하는가?

교수면 모두 믿을 수 있고, 전문가면 믿을 수 있다고 하여 의사에게 맡긴 장애인판정이 얼마나 편법이나 무성의하게 이루어졌는지 이미 정부는 경험한 바가 있다.

이제 평가는 하나의 업무요, 기술이 되어가고 있다. 실제 일을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평가를 잘 받는 기술개발과 평가를 대비한 업무요령으로 일하게 만든다.

정책개발이나 정부의 소식이나 시민들에게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해 발행하는 잡지의 경우 이용자의 설문지 회수가 없다거나, 지난 해의 평가 반영이 나타나지 않아서라든가, 그 사업을 해야 하는 사전 조사에 구체적 데이터가 없거나 인용 논문의 주가 없다는 이유로 그 사업의 점수를 인정하지 않는 등의 경우도 발생해 평가가 거의 횡포에 가깝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사업의 특성상 소식지처럼 피드백이 없거나 정책개발처럼 구체적 대상이 없다거나, 그 사업을 해야 하는 이유를 대학논문처럼 주를 달지 못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것을 교수들은 신경쓰지 않고 있다. 그냥 "그런 것은 나는 인정 못해요"라고 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그런 교수가 소신있고 전문성을 가진 것으로 인정되기도 한다. 너무 평가도구의 방식에만 얽매이는 것도 문제이고, 너무 자의적 적용을 하는 것도 문제이고, 평가자마다 서로 기준이 달라 편차가 심하다는 것도 문제이다.

업무만 과다하게 만들어 오히려 업무를 방해하는 평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사기를 꺾어버리는 평가, 서로 친숙하지 않는 단체에 평가자로 가서 평가를 통해 감정을 푸는 평가, 이런 평가가 계속된다면 개발원은 평가에서 손을 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건복지부도 진정한 평가의 의미를 살려 억울한 경우가 없도록 배려하고 지도하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감독자는 행정가이고 결과만 정리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신뢰성과 타당성을 가지고 예측 가능한 평가를 제대로 하고, 돌발적 꼬투리 잡기는 이제 그만 두었으면 한다.

평가 천국인가?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이 평가자들에게는 너무나 즐겁고, 권력자라는 기분을 느끼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교수들도 학생들에게 평가를 받듯이 공무원과 평가자, 평가기관도 사용자에게 평가를 받도록 장치라도 해야 할 지경이다.

미숙한 평가자의 평가는 곧 사형선고가 될 수 있음을 그들은 모른다. 큰소리치는 기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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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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