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만약 삶에 대한 의욕이 없다면 그것은 나를 위한 적당한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하겠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살아있다는 것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심장의 맥박이 여리게라도 움직이고 있는 한 살아있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맥박이 전혀 안 움직이는 것이다. 죽으면 맥박도 멈추고 숨도 멈추고 온 몸의 모든 기능이 멈춘다.

그러나 살아있어도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인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전혀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그러므로 일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때 좌절과 절망 속에서 자포자기한 삶을 산 적이 있었다. 군복무 중 폭발사고로 양안을 모두 잃어야 했던 때였다. 그 때 나에게는 삶의 모든 것이 의문형이었다.

‘과연 나는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어느 처녀가 앞 못 보는 남자에게 시집을 올까?

과연 나는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어느 고용주가 일거리를 못 보는 장애인에게 자리를 선뜻 내줄까?

과연 나는 컴퓨터를 다룰 수 있을까? 모니터 문자를 음성으로 전환하는 프로그램이 없는데 어떻게 모니터를 읽을 수 있을까?

과연 나는 대학을 다닐 수 있을까? 칠판의 글씨는 어떻게 읽고 등하교는 또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사는 것 자체가 허무하기만 할 뿐 무엇때문에 살고 있는지 전연 알 수 없었다. 한마디로 허무한 인간이었다.

그러던 중 라디오를 통해 시각장애인이 대학을 다닌다는 사연을 우연히 듣게 되었고, 재활을 하겠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마음이 변하자 모든 것이 변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의문을 품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실현하기 시작했다.

과연 나는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처음 본 순간 사랑을 느꼈습니다. 결혼해 주세요.”

지금 나의 아내가 되어 있는 목소리가 유난히 고왔던 여성에게 꽤나 저돌적인 프러포즈를 했었고, 3개월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도 둘이나 낳아 현재 큰아들은 공군장교요 둘째는 육군장교로 복무 중이다.

과연 나는 대학을 다닐 수 있을까?

비록 두 번의 고배를 마신 끝에 입학하긴 했지만 모두 무사히 졸업하였고,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도 취득하였다.

과연 나는 컴퓨터를 다룰 수 있을까?

물론이다. 나는 컴퓨터를 다루는 정도가 아니라 프로그램을 개발하기까지 했다.

내가 개발한 국내 최초의 ‘음성인터넷도서관’은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통령상’ 에 선정되는 가문의 영광을 얻었다.

나는 이 세 가지 소원을 달성하는 데 28년이 걸렸다.

그리고 또한 내 몸 하나 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우산이 되기보다 많은 사람과 함께 비를 피할 수 있는 큰 우산이 되어보자는 신념으로 ‘미국대륙 도보 횡단’을 완주하였고, 이를 시작으로 장애인 세계최초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을 달성하였다. 그리고 전주시의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나 자신을 불태운 삶을 살게 되면서 나는 전혀 딴 사람이 되어 버렸다. 달라진 나의 삶을 듣기 위해 수많은 초청강의가 들어왔다.

나는 강의를 하면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나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나의 강의를 듣고 자신들이 그동안 얼마나 나태하게 살아왔는지, 혹은 포기를 일삼으며 살아왔는지를 고백하면서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내 인생의 참 스승입니다.’ 라고 했다.

특히 나는 자신이 아무 소용없는 사람이었고, 다 죽어가는 인생이었는데 나의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얻었다는 어느 남자의 이야기를 잊을 수 없다.

몇 해 전이었다. 후진양성에 일생을 바치시고 정년퇴임 후에도 사회봉사활동을 왕성하게 하시다 돌아가신 이우승 교장선생님 문상을 가게 되었다. 우리 시각장애인도서관에서 8년 넘게 자원봉사활동을 하셨기에 더욱 각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문상을 했다.

이우승 교장선생님의 장례는 다른 문상 집과는 무척 달랐다. 그분의 소천을 안타까워하는 울음소리가 밤새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었다. 문상객도 날이 새도록 줄을 이었다.

나는 이처럼 수많은 이들이 이토록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보통의 경우 체면이나 예의때문에 문상 집에 찾아오는 사람도 종종 있어서, 따분하게 앉아서 술 한 잔 들이키다 가거나 혹은 밤샘을 하게 되면 꾸벅꾸벅 졸기 바쁜데, 이 선생님의 문상객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서럽게 울거나 침통해하거나 무척 슬퍼했다.

나는 이우승 교장선생님의 장례를 보면서 참으로 보람있게 살다간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선생님의 생활을 상세히는 모르지만 “아! 이분은 가치 있는 삶을 사신 분이구나”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나의 장례식 때는 몇 사람이나 울어줄까?

나는 그분을 떠올리며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보람있고 참되게 살다가 죽은 사람이야말로 의미있는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아닐까?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분간할 수 없는 삶을 산다면 참되게 죽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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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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