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새로 살고 있는 물건들. ⓒ전윤선

거대한 어항같은 도시에서 물기 없는 호흡을 하고 있을 때, 한낮인데도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이 찾아왔을 때, 달콤한 바람이 불고 몸이 뜨거워지고 그래서 눈을 감고 싶을 때, 이런 날이면 어디론가 자유롭게 떠나고 싶어진다.

지하철을 타고 무작정 길을 나선다. 한참을 노선표를 들여다보며 어는 곳에서 내려야 할 지 고민에 빠진다.

그냥 내렸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으니 발길이 동묘역에서 내리라 한다. 동묘역에서 내리니 유난이 노인들이 눈에 띈다. 역 안 온도는 시원하다. 하얀 모시저고리에 중절모자를 쓰고 부채를 손에서 흔드는 노인의 잘 다듬어진 긴 수염이 꼭 도인 같다. 세상사 모든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세상의 작은 욕심을 털어버리고 자신의 큰 욕심인 깨달음이란 연옥의 세계로 안착하는 모습이다.

밖으로 나오니 뜨겁다 못해 가마솥에서 막 쪄 나온 뜨거운 감자 같다. 이리저리 눈길을 돌리니 풍물시장이 펼쳐져 있고, 왼쪽으론 옛 건물의 담장이 잘 보존돼 있다. 이 곳이 동묘역이라 했는데 저 고건물이 동묘인가보다.

건물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은 60년대에서나 봄직한 물건들을 좌판에 늘어놓고 무심한 표정으로 무심하게 앉아있다. 물건을 팔지 않아도, 그저 이곳에 온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제 일을 다 하고 있다는 듯 억척스러운 판매 상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저렴한 가격의 착한 물건. ⓒ전윤선

사람들의 표정은 느린 화면을 돌리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느릿함이 열기를 내뿜는 날씨 탓인지 속도전에 밀려난 한구석의 세상처럼 보인다.

물건들을 자세히 보니 백화점이나 여느 상점에 잘 진열된 새 물건처럼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조금은 낡고 허술해 보이는 물건들을 산처럼 쌓아 놓고, 혹은 가지런히 줄 세워 맞춰 놓고 그냥 앉아만 있으면 물건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 흥정을 하기 시작한다.

새것만 찾은 사람들에게서 밀려난 중고물품을 착한 가격으로 직거래 하는 곳이다.

헌책방, 헌옷, 헌신발, 일제 명품수제품, 천 원짜리 CD. 80년대에 꼭 갖고 싶었던 쏘니 중고가셋트. 카메라까지 없는 것 빼놓고 다 있다. 게다가 싸고 맛있다는 옛날 국밥집, 만물상, 고미술품가게, 오백원짜리 노점 카페까지 잘만 고르면 필요한 물건을 값싸게 흥정하여 살 수 있으니 마치 과거로의 시간여행 온 것 같다.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 ⓒ전윤선

시장 길을 따라 걷다보니 동묘라는 비석이 있고 옛 건물엔 동묘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동묘가 내 발길을 이곳에서 내리라 했나보다.

서울 흥인지문(보물 제1호) 밖에 있는 동묘는 중국 촉한의 유명한 장군인 관우에게 제사지내는 묘로서 원래 명칭은 동관왕묘(東關王廟)이다.

동묘를 짓게 된 이유는 임진왜란 때 조선과 명나라가 왜군을 물리치게 된 까닭이 성스러운 관우 장군께 덕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서 인데, 명나라의 왕이 직접 액자를 써서 보내와 공사가 이루어졌다.

동묘는 선조 32년(1599)에 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601년에 완성되었다. 현재 건물 안에는 관우의 목조상과 그의 친족인 관평, 주창 등 4명의 상을 모시고 있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6칸이고 지붕은 T자형의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으며, 지붕 무게를 받치는 장식은 새의 부리처럼 뻗어 나오는 익공계 양식이다.

동묘. ⓒ전윤선

평면상의 특징은 앞뒤로 긴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과 옆면과 뒷면의 벽을 벽돌로 쌓았다는 점이다. 또한 건물 안쪽에는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데, 이와 같은 특징들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한국의 다른 건축들과 비교해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동묘 안으로 들어가 봤다. 좀 전 소란스럽던 시장과는 달리 안은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시원하고 고즈넉해 잠시 쉬어가도 좋을 듯하다. 지금은 공사 중이라 관우의 사당 안까지 접근할 수 없으나 곧 공사가 마무리 되면 관우를 모신 사당 앞까지 이동할 수 있다한다.

휠체어가 접근하기에 편의시설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먼 발치에서 볼 수밖에 없다. 공사가 끝난 연말쯤 다시 와서 관우와 대면해야겠다.

관우의 사당. ⓒ전윤선

다시 시장 길로 나와 착한 가격의 먹을거리를 찾아 나섰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휠체어가 접근할만한 식당이 꽤나 많다. 짜장면과 우동 한 그릇에 천오백 원 이란다. 믿어지지 않는 가격이다. 가격만큼 맛도 착하다. 날씨도 덥고 시원한 냉면 생각이 간절하다. 더위를 식혀줄 냉면을 찾아 길 건너로 갔다. 3대에 걸쳐 내려온다는 “이강三代냉면”대를 잇는 맛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이곳의 메뉴는 냉면과 만두, 가을엔 칼국수, 쌀국수를 함께 한다고 한다. 만두는 반인분도 손님에게 내어준다. 물냉면과 비빔냉면 만두 반인 분을 주문했다. 잠시 후 주문한 냉면과 만두가 나왔다. 더위와 배고픔에 지친 상태에서 비빔냉면을 먹으니 입안에서 감칠맛이 난다.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옛날 방식 그대로의 만들어 어릴 적 엄마표 냉면과 맛 같고 냉면의 양도 푸짐하다. 만두 또한 일품이다.

그냥 내린 동묘에서 벼룩시장과 잘 어울리는 동묘도 보고 게다가 값싸고 푸짐한 냉면까지 먹으니 횡재한 기분이다.

오래된 미래. ⓒ전윤선

1. 관광지

관광지명: 서울동묘/동묘골동품 상가 거리

입장시간: 오전 09시~오후 6시

입장요금: 무료

화 장 실: 장애인화장실 완비

주 소: 서울 종로구 숭인동 238-1

전 화: 02-731-0412

홈폐이지: http://www.cha.go.kr/korea/her

2.가는 길

지하철

-지하철 1호선 청량리 방면 3번출구(엘레베이터)앞에서 좌우 앞

-지하철 6호선 2호기 엘레베이타고 올라와 1호선 내부 엘리베이터 3호기 이용

-안전발판서비스 시행

-장애인화장실 (좋음)

-전화: 02-502-5491 (이동약자 원스톱 서비스 시행)

버 스:경성여객 271번/ 해원여객201번/메트로버스 260번, 427번/ 삼진운수 261번/북부운수 262번/다모아자동차 270번/(저상버스운행)

3.음식점

상 호: 이강三代냉면

메 뉴: 냉면, 만두, 칼국수, 쌀국수

가 격: 5천~6천원

전 화: 02-747-1460

접근성: 휠체어 접근가능(편의시설완비)

위 치: 동묘앞 서울전문학교 옆

상 호: 남도음식백화점

메 뉴: 자장면,우동,냉면, 삼겹살

가 격: 1500원부터

전 화: 없음

접근성: 휠체어 접근가능(편의시설완비)

위 치: 동묘역 3번출구 동묘담장끼고 남쪽 50미터 내외

4.주변볼거리

-서울풍물시장

-숭인공원

-낙산공원

문의: 휠체어 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옛날 방식 그대로 냉면. ⓒ전윤선

골동품 가게. ⓒ전윤선

시간이 멈춤듯한 거리, ⓒ전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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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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