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길을 걸어보면 점토블럭, 고압블럭, 우레탄블럭 등의 재료와 형태를 달리하여 조성되어 있다. 지역적 특성이나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형태를 고려하여 설치했다기보다 행정편의에 의해 설치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세종로에서 서울시청에 이르는 차량보도도 마찬가지이다. 평상시에는 차도로 이용하지만 행사가 있을 때는 규모에 맞게 교통통제를 하여 보행자전용으로 바뀐다. 하지만 그 안에 보행자는 없다.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과 보도부 사이의 차도부를 돌 포장재로 마감하였다. 이것은 고대 유럽의 돌 포장재와 비슷한 바닥재를 도입한 것이다.

돌 마감재를 차도부에 사용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차량의 속도를 늦추고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질서정연한 돌 바닥재를 통해 도시 미관을 조성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조성된 길은 유럽의 돌 포장재와 비슷할 뿐, 유럽의 거리와는 사뭇 다르다.

오래된 유럽의 거리는 도로와 바닥재가 발전하기 이전에 마차와 수많은 사람들의 통행에도 견뎌낼 수 있도록 돌 바닥재를 사용했다. 그러한 거리를 과거의 역사와 유물로 보존하여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돌 바닥재들이 휠체어나 유모차 등의 이동에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유럽의 거리는 새로이 들어서는 차도나 보도에 돌 바닥재를 사용하지 않는다.

서울시는 보행자를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세종로에서 서울시청 방향에 설치한 돌 바닥재 위로는 휠체어, 유모차, 자전거 등이 지나갈 수 조차 없다는 것이다. 비단 휠체어나 유모차가 아니더라도 울퉁불퉁한 돌 바닥재로 인하여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보행자가 조심조심 걸어야 하는 길이 되어버렸다.

이 안에서 서울시 가로 정비 정책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인 보행자의 보행권은 찾아볼 수 없다. 감속에 의한 보행자 보호와 도시 미관을 위해 돌 바닥재가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자동차가 우선시 되어버린 서울시 도로의 한 단편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최근의 가로 정비 정책은 보행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거리의 주인인 보행자에게 가로를 돌려주자는 취지이다. 따라서 가로 정비의 가장 큰 목표는 걷고 싶고, 걸을 수 있고, 걷기에 편안하고 안전한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반대로 가장 걷기 불편하고, 차별을 조장하며, 보행을 방해하는 길을 만들고 있다. 어쩌면 서울시는 멋스러운 유럽의 옛 도시의 분위기를 서울에 되살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서울은 유럽이 아니다. 돌 바닥재만 비슷하게 설치했다고 해서 서울이 유럽의 도시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의 몸에 맞는 서울의 옷을 입어야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은 몸에 맞는 옷을 입어 보기도 전에 너무 빨리 성장해버렸다. 서울만이 가진 서울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환경에 맞는, 기존 도시가 가진 물리적 장애를 극복해 나아가야 한다. 자전거조차도 돌아다니기 힘든데, 어떻게 휠체어가 도시공간을 이동하며 다닐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서울의 길들이 다양한 보행조건과 보행환경을 받아들이고, 아이들과 유모차, 젊은 사람들의 활기찬 걸음걸이와 휠체어를 탄 노인이 공존하게 하는 모습이 담겨지길 바란다.

이는 삶을 관통하는 개인의 모습이 거리에서 동시에 보이게 되는 것이고, 다양한 행위가 담겨지고 발생되는 것이다.

건축과 도시는 이러한 세심한 배려들로 인해 보다 풍요로워진다. 그 배려를 통해 도시가 발전하고 사회는 성숙되어간다. 서울의 길은 서울만의 성격을 담아 길이 아닌 거리로서 다양한 삶을 담아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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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길 칼럼리스트
시작은 사소함이다. 비어있는 도시건축공간에 행복을 채우는 일, 그 사소함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어진 도시건축과 지어질 도시건축 속의 숨겨진 의미를 알아보는 일이 그 사소함의 시작이다. 개발시대의 도시건축은 우리에게 부를 주었지만, 문화시대의 도시건축은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 생활이 문화가 되고 문화가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사람의 온기로 삶의 언어를 노래하는 시인이자, 사각 프레임을 통해 세상살이의 오감을 바라보는 사진작가, 도시건축 속의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통하고자하는 건축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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