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안철수 교수가 대선 후보자로 참여하는 정치활동에 대해 사람들이 묻자 한 말이다. 이 말은 곧 '나의 뜻이 아니라 시대적 요구'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장애인의 미래는 주어지는 것인가? 선택하는 것인가?

최근 장애인들의 직업으로 바리스타가 유행하고 있다. 특수학교 고등부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한다고 붐을 일으키고 있고, 복지관마다 바리스타 영업점을 개설하고 있다.

공공건물의 로비에 바리스타가 일할 공간을 마련하여 바리스타의 직업적 활로를 지원하고 있으며, 사회적 기금에 장애인단체들이 바리스타 교육이나 창업 사업을 신청하는 비율이 매우 높아졌으며, 언론에서도 바리스타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언론의 장애인 바리스타 뉴스를 보면 천편일률적이다.

장애인 교육기관에서 국내 최초로 아이디어를 내 바리스타 교육을 실시했고, 공공기관장이 특별 배려로 공공건물 내 공간을 마련해 주었으며, 이용자 한 사람이 뉴스에 등장해 장애인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를 자주 마시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리스타가 등장해 돈을 벌어 가족과 사귀는 애인에게도 맛있는 것 많이 사주고 싶다고 한다.

보도 내용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지적장애인은 돈을 모으고 싶어한다. 바리스타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부족하나 애인도 있고, 가족을 위해 일도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기자의 연출에 상당히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 지역마다 바리스타 영업점이 생기고 그 때마다 그 지역에서 처음으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나타나고 장소를 빌려준 은인도 등장한다. 앞으로 시·군·구 숫자만큼 동일한 뉴스를 새로운 소식인양 계속 우리는 보아야 할 것 같다.

장애인의 직업으로 바리스타처럼 각광을 받은 것이 과거에 얼마든지 있다. 지체장애인들의 도장점포, 시계점포, 청각장애인의 국화빵 포장마차, 지하철의 가판대와 자판기, 거리의 가판대와 구두수선업, 시각장애인의 안마원과 안마시술소 등등.

이들도 시작 시점에는 대단한 아이디어였고, 당시 정부 시책도 영업점을 얻어주고, 신청을 받아 심사를 통해 위치를 정해 주는 등 모든 정책이 여기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지하철 가판대는 대기업 체인점에 밀려 쫓겨났고, 거리의 가판대는 거리와 환경의 미화사업에 밀려 자리가 없어졌으며, 도장점포와 시게방은 기술과 시장의 변화로 도태되었고, 기성화와 디지털시대 등 시대의 변화에 아무도 적응을 하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되었다.

새로 문을 열 때는 언론이 지원을 하지만 문을 닫은 것이나 그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는 언론도 눈을 감는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직업 교육에서도 인기가 없어졌고, 정부나 지자체의 관심도도 초기에 반짝만 하고 식어버렸다.

바리스타를 위해 장소를 마련해 준 지자체는 공기관장에게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불과 몇 사람의 지적장애인을 위한 것이지 장애인의 직업 안정에 결정적 방안이 되지는 못한다.

물론 이러한 사례들이 모여 상당한 효과는 있다. 그러나 장애인 하면 바리스타가 좋더라는 유행식의 접근은 편견과 경직된 행정을 만들고 말 것이다.

거리의 가판대는 지자체의 노력이 지속적이었다면 복권판매 등으로 전환하여 지속될 수 있었을 것이다. 지하철의 매점이나 가판대의 실패는 보다 많은 이익만 쫓은 결과 꽃가게 등의 시도에서 장애인은 투자금만 날리고 울고 나와야 했다. 생활안정을 위한 노력이 오히려 막막한 빛만 안고 나온 것이다.

바리스타는 장애인의 성공담인지, 장소를 마련해 준 사람의 미담 사례인지, 지적장애인을 위한 동정인지, 그들도 애인이 있고 가족을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이 대안인지, 칭찬인지, 지면매꾸기용인지, 심실풀이 관심사 안주감인지 애매한 선을 형성하고 있다.

필자는 장애인으로 결혼을 했다. 그런데 장애인인데도 결혼을 하였다고 누가 말하면 칭찬인지, 비하인지, 자존심을 상해야 하는지, 아무 의미없는 정보제공인데 반응을 하는 것이 오히려 예민한 병인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지 복잡해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바리스타라는 한 직종이 모든 장애인을 책임질 것도 아니고, 일시적 관심이 얼마나 지속되고 변화무쌍한 시장경제에 지속적 적응할 수 있도록 누가 책임질 것인지도 과제이다.

어쩌면 과거 쇠퇴한 장애인의 집중직업군에 대해 바리스타 영업점과 같은 초심의 관심만 유지되었다면 아마 당시 집중직업군들은 다른 형태로라도 유지가 되고 있었을 것이다.

버려지거나, 잊혀지거나, 모자라거나, 넘치는 사랑, 그 적절한 수준을 왜 지키지 못한 것인가를 우리 사회가 함께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이 조금만 능력을 보이면 대단하게 여기고 이야기거리로 삼고, 조금만 모자라면 장애인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이 사회가 바로 과거 장애인 직업군을 말아 먹지 않았나.

그렇게 보면 요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바리스타 역시 잠시 유행처럼 불꽃을 피우다가 상처만 남기고 깊은 밤처럼 고요 속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당연한 것이다.

정말 바리스타 영업점을 운영할 장소를 내어주는 지원나 배려가 가능하다면 다른 품목의 영업점을 위해 장소는 왜 못 만들어주는가? 다른 것을 위해 영업한 장소를 만들어 준 사례는 왜 없는가?

정책적 접근이라기보다는 언론에서 부각되고, 누군가 찾아와 설득을 하니 개인적 감정으로 판단하여 지원하는 것은 아닌가 싶고, 그러한 것이 얼마나 지속될까 의심을 하게 만든다. 정책이 아니라 기관장의 왕심으로 장애인 정책을 책임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한전 등 공기업이나 지자체에서 노천이나 공터, 유휴지에 장애인 영업점들을 만들어 장애인 가족이 먹고 살도록 십년 정도 편의를 봐 주다가, 집을 짓고 가게를 어느 정도 유지할 정도로 지역에 홍보도 되고 단골도 생기자 강제 철거를 하거나 그 영업점을 뺏는 일이 최근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장애인들은 재판을 통해 구제를 받고자 노력하지만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다시 거리로 내몰리는 사례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은 아직도 진정서를 들고 국민권익위원회, 법률구조공단 등을 전전하고 있다.

한 쪽에서는 몰아내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바리스타가 대안인 것처럼 젊은 중증 지적장애인의 직장을 배려하는 두 가지의 얼굴을 이 사회는 보여주고 있다.

바리스타를 장애인직업인식개선 홍보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공단도 과거의 집중 직종을 지키기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못했음에 대하여 반성해야 한다. 공단의 존재이유이자 역할임이 분명했음에도 말이다.

비장애인들은 자신들의 흥미와 적성 등을 고려하여 직업을 선택한다. 그러나 전체 장애인 250만명 중 개인 사업자와 근로자를 합쳐 겨우 20만도 안되는 장애인의 경우 적합직종이라는 이름을 붙여 한 곳으로 몰아간다.

이런 장애인의 직업 사회에서 바리스타는 과연 스스로 선택한 것인지, 혹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이지 헷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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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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