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집을 비운 일요일, 엄마의 버거운 일상은 시작됩니다.

밤새 원인 모를 고열에 시달린 주언이 때문에 엄마는 마음이 복잡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컨셉에 따라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멋쟁이 막내는 오늘도 입었던 옷을 벗겨달라 다른 옷을 입혀달라 뭐를 채워달라, 달아달라 수십 번은 보챕니다.

이른 아침부터 컴퓨터에 눈독을 들인 큰 아이가 못마땅해 '숙제 했니, 일기는 썼니?' 이런저런 구실로 잔소리를 해댄 통에 아이의 입은 삐죽삐죽 합니다.

우는 아이, 보채는 아이, 삐진 아이 때문에 참다 못한 엄마는 이윽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맙니다.

아… 이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알면서도 순간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던 엄마는 이내 우울해집니다.

올해 여섯 살이 된 우리 주언이, 이제는 많이 건강해졌다 생각했는데 유치원을 옮기고 나서 생긴 적응 스트레스 때문인지 면역체계가 흐트러진 모양입니다.

가까스로 병을 마치고 유치원에 다시 나간지 일주일 만에 또 40도에 이르는 고열이 납니다.

여섯 살이 되면서 부쩍 자라 꽤 무거워진 주언이를 한 손에 겨우 안고, 또다른 한 손은 네살 배기 동생을 붙잡고 소아과 병원으로 갑니다.

그러면 안 되지만 일이 있어 집을 비운 남편을 원망합니다.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엄마의 마음은 덜컥 가라앉습니다.

웬만큼 훈련이 되어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아프다는 말에는 금세 약해지고 마는 엄마입니다.

오늘은 무슨 일일까?…….

혹시 모르는 마음으로 소변검사를 위해 소변봉투를 고추에 붙인 채로 일단 병원을 나옵니다.(스스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소변봉투를 고추에 부착시켜 줍니다. 여섯살이 된 주언이가 간호사 이모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엄마는 처음 봅니다.)

사실 소변봉투가 무슨 필요일까 의심스러운 마음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나는 형편 없는 엄마입니다. ⓒ이은희

날씨가 참 좋습니다.

돌아오는 길, 집 근처 호수공원에 많은 가족들이 소풍 나온 것을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집에만 있어야 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햄버거를 사들고 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벤치에서 소풍나온 것 마냥 점심을 먹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와 감자튀김에 헤벌쭉 웃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모처럼 함박웃음을 웃습니다.

이렇게 웃어주는 아이들 때문에 엄마는 또다른 하루를 버텨낼 기운을 얻습니다.

역시 어른인 엄마보다는 아이들이 낫다는 생각도 합니다.

마음만은 지혜로운 솔로몬왕, 기운센 천하장사, 슈퍼우먼 엄마가 되고 싶지만, 세상에는 한없이 약하고 기운없고 안 똑똑한 엄마만 있을 뿐입니다.

나는 그냥 형편없는 엄마입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이은희 칼럼리스트
주언이가 보통 아이처럼 건강했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회의 여러 구석들과 만나면서 아이 덕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인생을 얻은 엄마 이은희. 가족들과 함께 낯선 땅 영국에서 제3의 인생을 펼쳐가고 있는데...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좌충우돌 일상사를, 영국에서 보내온 그녀의 편지를 통해 들여다본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