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장개봉한 ‘철의 여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메를린은 집 안에서만 설거지를 하는 여성에서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정치계에 나가 영국 최초 여성 총리가 된다. 미국대표를 만난 메를린여성 총리는 이러한 말을 남긴다.

“난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며 살았어요.”

나는 농인으로서 그 말에 매우 공감했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품에 안고 태어나 청각장애라는 것을 판정받은 후 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는 아주 어릴 적부터 남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나 그것에 대해서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장애가 불행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최초의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일반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생각한다.

수업 과제가 있는 줄 몰라서 혼나는 일은 다반수고, 개교기념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학교에 간다던지, 발음이 좋은 일부 농학생은 못알아들은 척 했다며 선생님께 두배로 혼내는 일도 있다.

또한 수업 내용을 필기하라고 하면 친구의 필기내용을 보고 따라 쓸 수 밖에 없는데 필기를 보여주기 꺼리는 친구도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매년마다 수없이 겪어온 일이기 때문에 몇몇 농학생들은 새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일부러 필기 내용을 잘 보여줄 것 같은 친구를 골라서 친해진 뒤 필기를 부탁하기도 한다.

농학생들은 학습권을 침해당하는 이런 제반의 일들이 모두 자신의 청각장애로 인해 비롯된 일이라며 받아들인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 어릴 적부터 이미 익숙하기 때문에 이러한 차별을 애써 담담히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학생들은 매년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반복적인 상황에 부딪치고 그것이 누적되어 상처로 남는다.

새로운 선생님께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새로운 친구와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지

출석 체크는 ‘어떻게’ 할 것인지

발표 수업은 ‘어떻게’ 나설 것인지

필기나 과제가 있을 때 ‘어떻게’ 도움을 받을 것인지

듣기 시험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나의 장애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오늘 수업 시간에는 ‘어떻게’ 버틸지

학교라는 이름의 전쟁터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를 고민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등교해야 하는 농학생들.

일상적으로 학습권 침해를 당하는 농학생을 위한 지원은 없는 것일까?

사실 지원 정책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4장 제21조를 보면 “특수교육대상자를 배치받은 일반학교의 장은 교육과정의 조정, 보조인력의 지원, 학습보조기기의 지원, 교원연수 등을 포함한 통합교육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등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농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이 현행법에는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는 각 장애영역의 특성을 무시한 채 단순히 장애인에 대한 일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장애 특성에 따른 보조인력의 자격에 세부적인 지침이 없다. 즉 농학생에 대한 교육 지원서비스를 보조인력 1명만 채용하여 지원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4~5년을 배워도 능숙하게 하기 어려운 것이 수화통역이다. 단순히 말을 수화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속에서 언어적 번역을 거친 후 재구성하여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직업이다.

교육 통역을 위해서는 수업을 담당한 선생님의 교과 지식에 버금갈 만큼의 지식기반까지 갖추어야 한다. 그만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쉬운 일이 아니다. 외국어 통역시 전문용어를 미리 숙지하고 있어야 통역이 가능한 것처럼.

그만큼 어려운 직업이기 때문에 수화통역사는 보조인력이 아니라, 전문인력 2명으로 채용하여 20분마다 교대로 통역을 하도록 대우해주는 것이 맞다.

대전에 거주하는 청각장애를 가진 소연이와 그녀의 동생은 수화통역 지원을 받기 위해서 소연이는 한 살 늦게, 동생은 한 살 빨리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들을 위해 교육통역을 맡았던 수화통역사는 3년동안 혼자서 하루도 빠짐 없이 아침 일찍 출근하여 수업이 끝날 때까지 통역을 했다. 그렇게 3년간 교육통역을 담당했던 통역사는 올해 초 육아 휴직으로 학교를 떠난 상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육통역을 감당할 수 있는 수화통역사를 구하지 못해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된 소연이는 답답한 마음에 교육장님께 편지를 썼다.

수화통역사를 구하지 못해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된 소연이가 교육장에게 쓴 편지. ⓒ소민지

특수교육보조원 채용시 수화통역·지식기반을 보유한 수화통역사를 채용해야 하나 급여는 일반적인 보조인력과 같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지급하게 된다. 거의 봉사나 다름없는 특수교육보조원 모집에 수화통역 자격증을 가진 수화통역사의 지원이 전무하다. 결국 수화자격증이 없으면서 수화통역을 할 수 있는 통역사를 채용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수화는 할 수 있는’ 보조인력을 채용하기만 하면 되는 서비스체계에 문제가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 소연이네 학교에서는 수화통역 자격증이 없지만 '수화가 가능한' 수화통역사를 채용했다. 하지만 교육 통역을 감당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교육부와 학교 측에서는 수화가 가능한 보조인력을 채용했으니 농학생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며 문제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질 낮은 수화통역은 농학생이 내용을 알아보지 못하니 결국 수업을 못듣는 것과 같다. 지원 못받아도 학습권 침해. 지원받아도 학습권 침해.

장애인 서비스 관련 법 제정이 되었고 시행했지만 결국 무용지물인 것이다. 이게 무슨 아이러니인가?

청각장애의 특성에 맞는 교육지원 서비스 체계를 별도로 만들고 수화통역사를 보조인력이 아닌 전문인력으로 대우하고 인력을 늘려 농학생의 학습권 침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올해 3월 2일 금요일, 전국의 농학생들은 여전히 ‘어떻게’를 고민하며 등교했다. 소연이가 교육장님께 편지를 써야 할 정도로 교육 지원 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어떻게' 전쟁을 준비할지 고민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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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지 칼럼리스트
양천구수화통역센터 청각장애인통역사로 근무하고 있다.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새내기 사회인이다. 청각장애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청각장애인 특유의 문화 및 사회, 그리고 수화에 대해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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