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우연히 ‘가와이 가오리’라는 이름의 일본인이 쓴 <섹스 자원봉사>라는 제목의 책 한 권을 읽은 적이 있다. 필자 역시 장애인이지만 그 때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문제였기에 당시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에이블뉴스에서도 ‘장애인 성관계’라는 검색 키워드가 항상 검색순위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관심이 상당함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이 문제에 대해 필자의 생각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장애인 자원봉사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 식사를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음식물을 대신 떠먹여 준다든가, 또는 혼자서 볼일을 보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자원봉사자가 배변활동을 돕는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즉 식욕과 배설욕 해결을 돕는 것이 이들의 기본적 역할임은 당연한 사실이다.

가와이 가오리 저, 육민혜 옮김, <섹스 자원봉사>, 출판 아롬, 2005. ⓒ정연욱

그러나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이 책은, 당연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었던, 또는 알고 있었지만 고의적으로 은폐해 왔던 어두운 문제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꽤 당돌하게 반문한다. ‘당신들 하나 빠뜨렸지 않았냐’ 라고, ‘식욕, 수면욕, 배설욕', 그리고……

'성욕.’

앞서 자원봉사자의 역할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 해결을 돕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틀리지 않았다면 성욕 역시 식욕, 배설욕과 동일하게 묶일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이다.

따라서 이 것의 해소를 돕는 것 역시 자원봉사자가 해야 할 일이며, 지금처럼 은폐될 이유도 없지 않은가 하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 것 역시 여성을 성적 도구화한 성매매에 지나지 않으며, 대상이 장애인이라 할지라도 여성의 성적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허용될 수 없다는 주장 또한 나올 수 있다. <섹스 자원봉사>라는 제목의 이 책은 바로 이 ‘성매매’와 ‘자원봉사’라는 두 경계 사이에 서 있다.

성욕, 과연 기본적 욕구인가?

성 자원봉사를 긍정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욕구’가 인간의 기본적 욕구라고 하면서, 장애인도 사랑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따라서 사랑의 한 방식인 성관계 또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성관계와 사랑을 분리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이러한 관점을 취했을 때 반드시 전제해야 할 것은 성관계(사랑)의 욕구와 성욕이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랑의 행위인 이성간의 성관계에도 성욕이 바탕이 되고, 대부분의 경우 성관계라는 행위를 통해 성욕이 해소되기는 하지만, 이 둘은 서로 등가적인 치환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성관계라는 육체적 사랑의 행위는 대부분 이성이라는 상대를 전제로 하지만, 성욕은 특정한 이성이 아닌 일반화된 이성, 또는 피부 끝에 느껴지는 감각적인 자극을 전제로 한다.

즉, 성관계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이성과의 교감이라면, 성욕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적인 욕구이다.

가령, 어떠한 사람이 자극적인 성인물을 보고 나서 성적인 자극을 받았다고 해 보자. 이 때 일어나는 욕구는 성욕인가, 아니면 성관계의 욕구인가.

예로 든 상황을 성관계가 전제하고 있는 이성과 이성의 양자관계라는 면에서 보면, 한 쪽이 결여된 불구적인 것이다. 성인물 속에 여성이 존재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성인물에서 보이는 여성은 특정한 대상이 아닌 일반화된 여성일 뿐이다. 만약 성욕이 성관계의 욕구와 같은 것이라면, 위와 같은 상황에서 일어나는 욕구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사랑의 방식으로서의 성관계’라는 긍정론자들의 주장은 조금 타당성이 부족해 보인다. 다시 말해 성 자원봉사는 ‘성욕 충족’으로서의 성매매일 뿐인 것이다.

성매매 시에 상대 여성과의 정서적인 교감은 빠지게 마련이며 여성 역시 수혜자에게 성적 자극을 주기 위한 ‘감각적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서의 상대 여성은 우리가 앞서 보았던 ‘성인물 속의 여성’과 다르지 않다. 결국 ‘성 자원봉사’의 수혜자가 바라는 것은 정서적 교감에 따른 성관계가 아닌 성욕의 충족인 것이다.

성욕이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라면, 당연히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욕은 본능적이기는 하나 생존에 직접적인 요소는 아닐 뿐더러, 또 본능적인 욕구라 하더라도 거의 모든 욕구에는 그에 맞는 책임이 따른다.

예를 들어, 인간은 누구나 좋고 예쁜 물건을 보면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 것 또한 성욕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것을 소유할 만한 재력이 없다면 그 사람은 그 물건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맞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제약은 우리가 인간이기에 가지는 것이며, 다른 생물체와 인간을 구분 짓는 지점이기도 하다.

장애인의 성, 동정적 봉사로만 해결할 것인가?

사실 성 자원봉사는 그 대상이 장애인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현행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성매매와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 봉사가 논의되고 있는 것은 비장애인들의 동정적 시선에 의한 암묵적 묵인의 성격이 짙다.

영화 <섹스 볼란티어> 중 캡쳐. ⓒ정연욱

성 자원봉사에 대한 동정적 시선이 위험한 까닭은 성 자원봉사가 다른 봉사와 다르게 상대 이성에 대한 성적 권리 침해를 담보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가 이러한 이유로 금지되고 있는데, 그 대상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권리 침해가 묵인된다는 사실은 상당히 모순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성 봉사의 수혜자인 장애인 또한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들이 일반인과 다르지 않음을 늘 강조하면서 성의 영역에 있어서는 상대방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적극적인 욕구 충족을 원하는 것은 맞지 않다.

그것은 억압으로 인한 반항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비장애인 중에서도 성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성과의 성관계라는 문제는 동정의 시각으로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다. 그 것이 가능하다 해도 그 것은 일회성 봉사에 지나지 않으며, 봉사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양자가 동등한 관계가 아닌 한 쪽의 우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수혜자 입장에서도 썩 유쾌한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장애인의 성적 향유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단순 욕구 충족 이전에 장애인/비장애인의 동등 지위 획득을 위한 노력 선행돼야

기본적으로 이성간의 사랑에는 상대와의 감정적 교감이 필수적일 것이다. 그러한 교감이 활발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비장애인의 동정적인 시선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도록 한 이후, 사회 참여를 통해 사회적인 관계 혹은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장애인들에 대한 구성원들의 인식이 아직은 부족한 때문이 아닌가 한다.

장애인 성 문제를 독립된 섬이 아니라 ‘생활 속 일부로서의 성’으로 보아 주길 바라는 바이다. '장애인의 성'이 일반인과 다른 것인 양 이렇게 이슈화되는 것이 사실 불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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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칼럼리스트
미디어 속 특정한 대상의 이미지는 미디어 생산자의 시각에 따라 자의적ㆍ선택적으로 묘사된 이미지다. 이렇게 미디어를 통해 생산된 이미지는 수용자의 사고와 행동 등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미디어 생산자의 시각을 살피는 것은 꽤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미디어 속에 표현된 ‘장애인’이라는 집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본 칼럼에서 미디어 속 ‘장애인’이 어떻게 묘사되고, 그러한 묘사가 실제의 ‘장애인’의 모습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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