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로 시행되던 것을 법으로 보장하면 일시적 서비스가 아니고 법적 근거를 가지게 되어 지속적으로 혜택을 볼 수 있다.

장애인연금법이 제정되어 기존의 장애인수당이 중증장애인은 연금으로 개칭되면서 실제로 당장 1인당 지급되는 금액이 늘어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혜택을 보는 대상이 늘어났고, 앞으로 한 사람에게 지급되는 금액도 늘어날 가능성은 높다.

장애인 활동보조 제도 역시 장애인활동지원법 제정으로 1인당 서비스가 늘어나지 않았으나, 그 대상은 늘어났고 서비스는 법적 근거를 가지게 됐으며, 지속적인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장애인복지법상 활동보조 서비스는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법적 근거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장애 재판정이나 서비스 인정 재판정 등으로 복잡해졌고, 번거로운 절차가 늘어남과 동시에 오히려 등급 하락으로 자립생활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도 생겼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

사실 장애인복지법상 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 필요를 인정하여 예산을 배정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법에서 장애인의 경제적 부담 경감이나, 적절한 서비스라고 하면 되지 서비스마다 법을 만들고 구체적으로 서비스 이름과 절차 등을 법으로 정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법이라고 하여 고정된 것이 아니고 법도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개정하거나 폐기할 수 있어 법도 사실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장애인 자동차 LPG 환급금 제도가 폐기된 아픔을 경험한 바 있다. 이 제도는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다변화 정책에 의하여 실시되었는데, 몇몇 고위 공직자들의 자동차를 소유한 특정 장애인이 아닌 기초생활수급자와 중증장애인을 위해 골고루 도움이 되는 서비스로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에 의하여 연금이나 활동보조 서비스로 예산이 통합된 것이다.

장애인 연금이 전혀 추가된 예산 없이 다른 서비스와 통합으로만 확대된 것은 분명 아니지만, 대부분의 재원이 다른 서비스를 폐기함으로써 마련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보장하고 증진시켜 사회통합과 스스로 자립할 환경을 만들어 주는 지원제도였는데, 이를 더 어려운 사람과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준다는 미명아래 본래의 취지와는 다른 서비스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실제로 대상이 더 늘어난 것도 아니다. 자동차 LPG 이용 대상자가 결코 적은 대상이 아니었다.

그럼 이 제도는 법이 없어서 쉽게 폐지된 것일까? 그것을 믿고 LPG 차량을 구입한 사람은 속은 것일까? 2012 총선을 앞두고 어느 장애인, 어느 정당도 LPG 환급제도 부활을 말하는 이가 없다.

장애인 등의 특수교육법은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정해 놓고도 예산확보의 문제로 교사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고, 장애아동 복지법을 제정해 놓고 지역마다 아동지원센터를 설치한다고 하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서비스 전달체계만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장애아동에게 지원되는 실제 서비스가 보장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예산의 획기적이고 실효성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

예산 확대를 보건복지부가 항상 책임질 수는 없다. 그리고 복지부는 많은 노력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죄인이 된다. 의지가 있어도 예산을 다루는 재경부를 이길 수가 없다.

그러므로 법은 거창하게 선언적으로 만들어 놓고, 시행령에서 사업의 일부를 보류하거나 점차적으로 시행하게 하여 예산 부담을 줄이기도 하고, 지침이나 시행규칙에서 대상을 축소하는 등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게 된다.

발달장애지원법이니, 장애인주거보장법이니, 장애인보장구지원법이니, 성년후견제특별법이니, 아직도 만들어야 하는 법은 많고, 예산은 답이 없다.

더구나 장애인들이 총선을 앞두고 공약을 통하여 예산과 권리를 찾으려 하자, 정부는 정달들에게 책임질 수 없는 행동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며 반발까지 보이고 있다.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이나 장애인차별금지법, 그리고 장애인의 서비스 관련법이나 인권법이 제정될 때마다 장애인의 숙원이 하나하나 풀려가는 것처럼 법제정 당시에는 축제분위기를 맛보지만 시행 단계에서는 항상 패배감과 무력감을 맛보고야 만다.

정말 님이 나에게 오는 발길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와서 사랑해 줄줄 알았던 그 발길이 '발길질'로 바꾸어 아픔을 주고 만다.

아픔을 주는 것은 항상 남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측근이고, 배신도 남이 아니라 님이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발길은 함께 하기 위함이고 만나기 위한 것이어야지 발길질로 변한다면 장애인들은 그 발길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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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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