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들의 수화문법이 반영된 한국어 문자내용. ⓒ소민지

'수화를 쓰는 농인은 바보다.'

무려 22살 때까지 내 뇌리에 박혀 있던 편견 중 하나이다.

나 자신이 농인이면서 농인에 대해 바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의아해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청각장애 당사자인 내가 ‘수화를 쓰는 농인은 바보다’라는 인식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지난 2000년, 중학생이었던 나는 농교회를 통해 동갑내기인 청각장애 친구를 알게 되었다. 나는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진 동갑내기를 만난 것이 반가워서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 연락처를 주고 받을 정도로 친해졌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문자를 주고 받는데 친구의 문자 내용은 주격조사가 하나도 맞지 않고 과거형인지 현재형인지 미래형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와 동갑인데 존댓말과 반말이 섞여서 답장이 오는 등 자꾸 동문서답하는 친구의 문자에 답답했다.

그와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중학생인데 왜 이렇게 한국어를 못할까? 수화를 배우면 다 이렇게 못하나? 초등학생이라도 이 보다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날,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 친구를 보면서 수화를 배우는 사람은 말도 못하고 글도 못쓰고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으니 ‘수화를 쓰는 농인은 바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본 것만 가지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단순한 중학생의 생각이었다.

놀랍게도 이러한 편견은 내가 22살 때까지 지속적으로 수화를 배우는 것에 수동적이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 편견이 깨진 것은 우연치 않게 참가했던 수화강사 양성교육 때였다. 억지로 배운 기초 수화밖에 몰랐던 나는 그 곳에서 수화에 대한 정의를 재정립하게 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좀 더 전문적인 수화공부를 하고자 수화통역학과로 편입했다. 수화를 제대로 접하게 된 것도 그 즈음이다.

그 후 나와 같은 농인들을 만나고 그들과 소통하며 연락을 주고받았다. 문자내용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 내용을 수화문법으로 표현해보면 딱 들어맞았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중학교 때부터 10년이상 영어를 공부해도 문법 체계가 달라서 많이 어려워한다. 이와 같이 농인에게 한국어는 영어나 다름없는 제 2언어다. 농인의 수화는 수화만의 특유 문법를 가지고 있어서 한국어 문법 체계와 다르기 때문에 한국어로 간단한 내용은 가능하지만 깊이 이야기할 때는 많이 어려워한다.

농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한국어로 표현할 때 자기 나름대로 수화문법을 반영한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문득 내 문자에 동문서답하던 중학생 친구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제서야 친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수화를 쓰는 농인이 바보가 아니라 내가 수화를 몰랐기 때문에 그 친구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친구 입장에서는 수화를 모르는 나를 바보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몇 달 전,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수화로 이야기를 했는데 어릴 때와 달리 대화가 너무 잘 통했다. 내가 수화를 배웠기 때문이다.

내가 청각장애 당사자로서 같은 청각장애를 가진 농인에 대한 오해의 벽을 만들었고 이를 허물기 위해 이리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하물며 비장애인은 오죽할까?

농인들의 수화문법이 반영되어 독특한 국어문법에 편견을 가지지 않고, 농인의 언어인 수화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차별로 만연한 이 사회에 살아가는데 있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편견로 인해 농인과 거리감을 두었던 내가 농인 사회에 들어가 수화를 배우고 그들과 함께 웃고 울며 부대끼며 ‘이들도 별 다를게 없는 사람이구나’ 라고 느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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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지 칼럼리스트
양천구수화통역센터 청각장애인통역사로 근무하고 있다.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새내기 사회인이다. 청각장애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청각장애인 특유의 문화 및 사회, 그리고 수화에 대해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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