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사 운대봉에서 산악인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시상제를 드리는 모습. ⓒ송경태

60 년 만에 찾아온 흑룡의 해, 임진년 새해 첫 산행은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순창 강천산에서 산신령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시산제로 시작했다.

이번 산행은 한국산악회 전북지부 39 명의 헐크들과 함께였다. 우리는 강천사 입구 도선교에서 새해 포부와 소망을 담은 힘찬 파이팅을 외치며 순백으로 뒤덮인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갔다.

오른쪽으로 장장 8킬로미터나 이어진 계곡은 천인단애를 이룬 병풍바위 아래 벽계수가 흐르고 있었고, 군데군데 빙벽을 이루고 있는 얼음폭포와 그 아래로 하얀 솜사탕을 깔아놓은 듯한 얼음소가 있었다. 우리는 겨울 장관을 넋 놓고 감상하며 시산제 장소인 북바위를 향해 힘차게 올라갔다.

올해부터 등산을 시작하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선언한 사랑하는 아내의 안내를 받으며 빙판길로 변한 길을 아내와 함께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며 추위도 잊은 채 걸었다. 부부가 같은 취미를 갖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래서 지난 연말 아내는 큰 맘 먹고 등산복과 장비일체를 장만했다.

“민이 아빠, 오른쪽에 폭포가 하얗게 얼어 있어.”

“소도 얼었겠네?”

“으응, 애들 썰매치기에 안성맞춤이겠는걸요?”

“선녀들은 어디서 목욕하지?”

“찜질방에 가겠죠, 호호호.”

사랑하는 아내와 난생 처음 겨울산행을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고 기분이 아주 좋았다. 아내는 천상의 목소리로 주변의 환상적인 설경을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여보, 힘 안 들어?”

“아주 좋은데요. 우리 가족 모두 함께 왔으면 참 좋겠어요.”

허약체질인 아내가 걱정되어 나는 무리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간간이 얼음 틈사이로 졸졸졸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큼한 물소리를 듣자 나도 모르게 절로 룰루랄라 콧노래가 터졌나왔다. 아내와 내가 선녀와 나무꾼이 되어 데이트를 하는 상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평탄한 구간이 끝나자 본격적인 산행코스가 이어졌다.

“재호야, 여기부터 송관장 안내해라.”

김충곤 부회장님이 시각장애인을 안내해본 경험이 있는 서재호 사무국장에게 나의 산행안내를 부탁했다.

안전이 최우선인 겨울등반에서 첫 산행하는 여성이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는 것이 무리라 고 판단했던 것이다. 새해 첫 산행부터 사랑 나눔과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신 김 부회장님과 서 국장에게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

“서 국장, 올해 꼭 좋은짝 만나 혼사올리고, 만사형통, 운수대통 해야 돼.”

“예, 고맙습니다. 관장님도요.”

우리는 새해 덕담을 나누며 뽀드득 뽀드득 경쾌한 눈 밟은 소리와 함께 경사진 구간을 조심조심 올라갔다.

뒤따라오던 아내가 연신 탄성을 질렀다.

“야, 가슴이 확 트이네. 이렇게 좋은 산행을 왜 여태껏 안했을까?”

“여보, 괜찮아? 힘들면 말해. 무리하지 말고.”

“걱정 마세요. 괜찮아요.”

평소 아내는 심장이 약해 조금만 무리를 해도 몇날 며칠을 끙끙 앓는다. 얼마 전 모악산을 다녀온 후에는 일주일 동안 고생했었다. 아직 돌이 안 지난 큰손자를 바라볼 때 마냥 아내의 행동 하나 하나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60 먹은 아들을 걱정하는 80대 노모처럼 나는 자주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괜찮은지 물어댔다.

길이 점점 가팔라지고 있었다. 발이 눈에 푹푹 빠지고 얼굴에 스치는 바람도 매서웠다. 굴참나무와 애기단풍나무의 잔가지들이 얼굴을 자꾸 할퀴어댔다. 올라갈수록 잔가지들이 노출된 얼굴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나는 잔가지와 칼바람에 노출된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복면마스크를 착용했다.

얼만큼 올라왔을까. 반가운 소식이 귓가에 날아들었다.

“관장님, 조금만 올라가면 시산제를 지낼 운대봉이에요.”

“오케이, 활짝 웃는 돼지머리 가져왔지? 하하하.”

“예, 아주 복스럽게 생긴 돼지입니다. 하하하.”

작년 이맘때 쯤에는 대둔산에서 시산제를 했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 산신령께 큰절도 제대로 못 드리고 하산했었는데 올해는 날씨도 포근하고 눈보라도 없어서 참 다행이다.

“관장님, 북바위에요. 앞에 절벽이니 가만히 앉아 계세요.”

나는 서 국장이 자리 잡아준 넙적바위에 걸터 앉았다.

방금 전까지 등산로는 폭설이 쌓였었는데 제사지낼 장소에는 눈이 없었다. 아마 산신령께서 제사상 한상 크게 받으시려고 미리 마련해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도 잔잔하고 춥지도 않고 간간이 햇살도 방실방실 비추어 시산제 지내기에 딱 안성맞춤이었다. 올해 한국산악회 전북지부 운수가 대통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올해도 우리 산악인들이 아무 탈 없이 산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 조직의 최고령자이신 강창호 고문님께서 산악인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축원사를 하셨다. 강 고문님의 목소리가 북바위가 들썩거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정철수 전 회장님의 축원문 낭송에 이어 새해 소망을 비는 회원들의 하례식과 주인제 대장님의 소지태우기 의식이 차례대로 거행되었다.

나는 지구촌의 경제불황 탈피, 남북통일 민족화해 염원, 산악인 무사안녕 그리고 박경기님과 주인재님 자제분의 고시 합격과 지인․친구․가족 모두가 운수대통 만사형통하길 간절히 기원했다. 또한 사랑하는 아내와 큰아들, 며느리와 큰손자 진우의 무탈, 작은아들 결혼과 도서관신문사 발전과 직원의 행복을 염원했다.

“송 관장, 고사주야! 한 잔 받아.”

이대홍 부회장님이 대둔산에서 공수해 온 인삼막걸리를 복주라며 한잔 건네주었다.

“캬아, 인삼막걸리 맛 죽여준다! 형님 한잔 더 마실 수 있어요? 하하하.”

뒤이어 주 대장님과 아내도 한잔씩 건네주었다. 고사 고기에 묵은지를 얹어 막걸리 안주로 먹었다. 고사 고기 맛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였다.

“야, 고사 고기 맛 짱인데? 입에서 살살 녹네. 하하하.”

사랑하는 아내가 계속 고사 고기를 묵은 김치에 싸서 입에 넣어 주었다.

“여보, 아 해봐.”

“우와, 고기 맛 최곤데? 감칠맛이 나네.”

비록 비좁은 시산제 장소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은 협소한 식사였지만 천하가 부럽지 않을 새해 첫 산행의 오찬이었다.

“여보, 따끈한 생합 미역국 좀 마셔요.”

“우와, 미역국 참 시원하네. 보온병 효능이 대단해.”

나는 아내가 정성들여 준비해온 감칠맛 나는 생합미역국을 단숨에 두 그릇이나 비웠다. 날씨가 추울 때는 뭐니뭐니 해도 따끈따끈한 국물이 최고다.

“송 관장님, 천년 묵은 나무뿌리주에요. 한잔 하시죠.”

박종근 신임 구조대장이 가보로 내려온 천년 묵은 약초뿌리로 담근 귀중한 약주를 한 잔 건네주었다.

“캬아! 술맛 좋다. 기운이 팔팔 솟는 기분이야. 박 대장도 올핸 대박나라구. 하하하.”

우리는 서로 준비해온 반찬과 과일을 나눠먹으며 즐거운 겨울산행의 묘미에 흠뻑 취해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도 기분이 좋은지 ‘참 잘 왔다. 잘 왔어’를 연발했다.

“여보, 산행 좋지?”

“예, 정말 그래요. 앞으로 자주 와야겠어요.”

우리는 그릇을 남김없이 비운 후 시산제를 지낸 북바위 위를 지나 옛 산성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관장님, 북문이에요.”

“주변 풍경이 어때?”

“예, 비경이에요.”

나는 잠시 추억의 서랍장을 열어 보았다. 30여년 전, 고교시절에 다녀갔던 강천산. 단풍나무는 개종되지 않은 순수한 토종 단풍나무로 잎이 작고 색깔이 무척 고왔지. 서리가 내려도 지지 않는 애기단풍이었지. 단풍기간이 길어 가을이면 계곡을 따라 펼쳐진 단풍 빛이 장관이었지.

옥수 같은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용소는 명경지수 그 자체였지. 고찰인 강천사와 삼인대 사이를 지나 흥화정 옆길을 택하면 50미터 높이에 길이75미터로 걸린 구름다리, 아찔하고 짜릿한 전율을 느낄 수 있는 구름다리를 간신히 건너면 40-50 도 경사진 일명 죽음의 바위 구간이 펼쳐졌지.

단내를 풀풀 풍기며 죽자 사자 한참동안 올라가면 강천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지. 그곳에 서서 수려한 장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시원하게 탁 터졌지.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반대방향으로 내려가면 강천산 8부 능선쯤 되는 300미터 높이에 기다란 저수지가 있어 산상에 있는 천지처럼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지.

또한 강천사와 삼인대, 강천산 5층 석탑, 금성산성 등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산재하고 도처에 비경이 숨겨져 있어 나는 선녀를 찾으러온 착각에 빠지곤 했었지.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추억들로 인해 나의 두 볼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환상통이 찾아온 것이다.

“민이 아빠!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 잠시 옛 추억을 회상하느라구.”

길이 꽤 미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내 아내에게 착용시켜 주었다. 등산초년생인 아내는 시내에 눈이 없으니 산에도 없는 줄 알고 준비하지 않았다고 했다.

5월까지는 항상 아이젠을 준비해야 한다는 나의 말에 아내는 놀라는 눈치였다. 아내는 첫 산행부터 톡톡히 수업료를 지불한 셈이다.

“관장님, 남문이에요.”

서 국장이 남문에 도달했다고 알려왔다. 나는 서 국장이 가르쳐준 남문 이정표를 만져 보았다. 금성산성을 알리는 너덜너덜한 표지판이 아니었다. 깔끔하게 장식된 철판 이정표였다.

우리는 계속 발목까지 빠지는 설원을 어린애 마냥 신나게 달렸다. 마치 어린 시절 바둑이와 함께 아무도 걷지 않은 눈 덮인 들판을 껑충껑충 뛰어가듯이 말이다.

“관장님, 형제봉이에요”

“그래, 우리 형제님들 어디 계시지?”

“마실가셨겠죠”

농담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눈이 쌓인 음지와 질퍽거리는 양지구간을 수없이 번갈아 가며 뛰고 걸으며 갔다. 간혹 진흙벌이 발목을 꽉 붙잡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는 질퍽거리는 악의 수렁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려 스틱으로 반동을 주며 걸었다. 바짓가랑이가 온통 황토빛 진흙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여보, 빨래감 많아 좋겠소, 하하하.”

“당신이 산행에 다녀올 때마다 내놓는 더러워진 빨랫감에 부아가 나곤 했었는데 이렇게 경험해 보니 이해할 만하네요.”

아내의 말을 들으니 아내를 데려 온 것이 역시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장님 왕자봉 정상이에요.”

“벌써 정상이야? 근데 우리 왕자님 어디 가셨어?”

우리는 해발 583 미터 정상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과 합류하여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

강 고문님께서는 우리 내외를 위해 사진기로 재능봉사를 해주셨다.

“관장님, 사모님과 멋지게 포즈 좀 취해 보세요.”

“예, 강 고문님. 감사합니다.”

강 고문님께서는 지난달에도 남덕유산 상고대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어 주셨는데 오늘도 우리 부부를 위한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고 계셨다.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강 고문님의 웃음소리처럼 경쾌하게 들려왔다.

사진촬영을 끝낸 후 나는 칼칼한 목을 축이기 위해 배낭포켓주머니에서 물병을 꺼내 단숨에 들이켰다.

‘캬아아! 물맛 죽여준다’

갈증 뒤에 마시는 물맛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짜릿한 쾌감을 주었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소소한 기쁨들이 있기에 힘든 여정에도 불구하고 산행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보! 물 한 모금 마셔 봐. 물맛이 끝내 줘.”

“예, 물맛 참 시원하네요.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인데요?”

아내의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자 나는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여보! 등산 잘 왔지?”

“예, 너무너무 행복해요.”

아내의 행복한 모습에 나까지 덩달아 행복해졌다. 이래서 부부는 일심동체라 하는가 보다.

“관장님, 바위가 깊어요. 앉아서 발 디디세요.”

“어메, 무서워라.”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바위 구간을 내려갔다. 거리가 장장 1,3 킬로미터라고 했다.

주인재 대장님은 가파른 바위구간을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도록 뒤에서 내 배낭을 붙잡고 따라오시며 안전한 산행을 유도해 주셨다.

“송 관장, 발 조심해. 날카로운 바위가 돌출되어 있어.”

“예, 주 대장님.”

다른 이의 도움을 받는 입장이면서도 나는 아내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우리 각시는 잘 가고 있나요?”

“걱정 마, 잘 가고 계셔.”

“다행이네요. 이런 난코스를 잘 내려가다니.”

나는 아내가 어떻게 이 험한 구간을 내려갈까 걱정했는데 잘 하산하고 있다니 한시름 놓였다.

서 국장이 루트를 따라 로프를 잡고 내려가도록 안내해 주었다.

“관장님, 로프를 양다리 사이에 두고 조심히 내려가세요.”

“야, 상당히 가파른데.”

로프를 바지가랑이 사이에 넣고 내려가려니 몸의 무게중심 잡기가 매우 곤란했다. 나는 내 방식대로 로프를 왼쪽에 두고 뒤로 향한 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문득 아내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이 아빠! 구름다리에요.”

“여보, 고생 많았어.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없어요. 아주 좋아요.”

“첫 산행 성공을 축하해. 여보!”

“고마워요. 민이 아빠!”

임진년 새해 들어 첫 산행을 아내와 함께 성공적으로 마쳤다. 자신감을 얻은 아내는 다음에 또 산행하고 싶다고 했다.

“여보, 아예 산악회에 가입하지 그래?”

“좋아요, 당장 가입 할래요. 여보.”

우리 부부의 첫 등반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많은 배려와 관심을 가져주신 한국산악회 전북지부 회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악천후 속에서도 무사히 산행을 안내해준 서재호 사무국장님께도 고마움을 드린다.

"사랑하는 진우야! 이 할배 할미와 함께 새해 첫 산행에 성공했다. 너도 감기 걸리지 말고 무럭무럭 자라야지. 우리 진우 파이팅! 우리 각시 파이팅! 한국산악회 전북지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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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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