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조용히 안할래?

여자 친구와 함께 뒷줄에 앉아 우리가 방문한 장애인 선교단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다. 우리가 오늘의 데이트 코스로 결정한 곳은 매주 한 번,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임을 갖고 예배, 한글공부, 종이접기, 영어회화 등 100명이 넘는 장애인들이 각 자가 원하는 소그룹 활동을 하는 곳이다.

지체, 시각, 뇌병변 지체장애 등 장애의 유형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이기에, 다양한 장애 유형의 사람들을 접하지 못했거나, 많은 장애인들을 한 장소에서 만난 적이 없는 이들은 순간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녀 역시 다양한 장애 유형에 대해 본 적이 없기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던 터였다.

그 때 들려온 소리가 “너 조용히 안할래?” 였다. '너' 라는 말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아랫사람을 지명할 때 쓰는 말이다. 얼굴 한 번 본적 없고, 문자 한 번 주고받지 않은 사이에서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말이다.

20대 초반만 되어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교양없는 짓이라는 사실을 다 아는데, 서른이 다 된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특별히 동안으로 보이는 얼굴도 아니었지만, 자신의 나이보다 10년 가까이 어리게 보이는 사람은 없기에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 해도 한 마디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저 말씀이세요? 저는 한번도 뵌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저를 아시는지, 왜 반말이시죠?"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뒤를 돌아보고 내게 반말을 했던 중년의 아주머니에게 조용히 한마디 했다. 그녀가 내게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는다면 굳이 나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문제였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말해도 아무 말 없던데 왜 유별나게 그래? 말이나 말지"

장애를 가진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반말을 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아무런 말이 없는데 왜 나만 자신이 반말을 하는 부분을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는 뜻이었다.

그 사람에게는 '성인들에게는 자신의 나이에 관계없이 '너'라는 말을 쓰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사회의 일반적인 무언의 약속이 장애인들에게는 지키지 않아도 될 일로 인식되어 있었다.

“아주머니! 반말은 아드님에게나 쓰셔야지요!"

적반하장격의 반응에 화가 나서였는지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었는지. 다른 사람들이 문제의 여성과 나를 바라봤다. 일이 더 커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우리 커풀은 뒤쪽으로 자리를 피하면서 더 이상 그녀와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모임은 끝이 났다.

모임을 모두 마친 이후,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는 이들에게 자원봉사자들이 반말을 하는 경우가 많은지를 물어보았다. 한결같이 돌아온 대답은, 존댓말을 쓰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고, 자원봉사자들을 대상으로 장애인에게 반말을 쓰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가 방문했던 매주 모임마다 많은 봉사자들이 다녀가고, 장애인의 복지와 선교를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 했다.

장애인에 대한 선교와 복지의 출발점은 장애인에 대한 존중임에도 불구하고 당연시되어야 할 성인장애인에 대한 존칭 사용이 무시되고, 운영진들조차 자원봉사자들에게 이러한 사항을 주의시키지 않는 것을 보면서 장애인들에 대한 인권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던 데이트였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