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로 사는 생활.

화장실에서 물벼락을 맞거나, 물건이나 돈을 도둑맞거나, 발을 밟히거나, '나를 때려주세요' 하는 등의 종이가 등에 붙어있거나, 지우개 조각이나 종이 뭉치 따위가 날아오거나, 모함을 당하고 누명을 쓰거나...

그런 생활을 9년 가까이 해야했다.

눈물이 말라가는 뺨에 손을 얹고 그런 상념에 사로잡혀 대구에 도착했다. 촛불을 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을, 그이들 얼굴에 비쳐 일렁이는 촛불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또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울컥울컥 솟구쳤다.

여러 사람들의 발언을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기관들의 가해자 엄벌 등의 강경책으로 학교 폭력을 근절하겠다는 기만적 태도에 화를 내고 있었다.

그 날 떠올린 기억들 속엔, 다른 기억들도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왕따에서, 어떻게 빠져나왔을까요.

나는 학교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잘 어울리지 못하는, 소위 '아싸(아웃사이더)'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몇몇과 공감대가 형성되고, 우정이 생겼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다툼이 생겨났다. 처음에 나는 피해자였다. 그러다 당하고만 사는 게 지겨워서였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새 문득 나는 처음의 가해 학생을 왕따시키고 있었다. 소외시키고,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리고, 배제하고, 따돌리고... 그런 내 모습에 문득문득 경악했으나, 애써 합리화하며 모른 척하려 들었다.

3학년에 올라가면서 단짝친구와 같은 반이 되면서, 여전히 저는 외톨이였지만, 왕따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폭력의 가해자가 된 후에야 그 숨막히던 왕따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저는, 피해자인가요? 가해자인가요? 아니면 모두 다?

이런 일들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왜 저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야 했을까요?

아니, 그보다, 왜 이런 폭력이 있는 것일까요.

지금 정부 기관들에서는 연일 '가해자 엄정 처벌' '가해자 격리' '가해학생 대안학교' 등을 대안이라고 내놓고 있다.

근데 과연 가해자를 괴물로 만들고, 가두고, 격리하고, 처벌하는 것이,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인지, 저는 의문이 든다.

학생 간 폭력에 대해 장애학생이 노출될 가능성이 높으니 이런 대안, 저런 대안들도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학교 폭력'은 무엇일까.

학교 폭력, 그 정의부터 다시 잡아야 하지 않을까. 학생 간에 일어나는 폭력을, 왜 학교 폭력이라고 지칭하는 걸까.

이런 고민은 나뿐만의 것의 아니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한새 칼럼리스트
희귀난치병으로 인한 전신만성통증으로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중증 시각장애인. 스스로를 안드로진(중성), 레즈비언, SMer(사도마조히즘 성향을 가진 사람)로 정체화한 성소수자 청소년이다. 나이주의와 가족주의, 가부장주의, 남성중심주의를 거부하며 채식주의를 지향하는 인권활동가다. ‘장애인&운동현장 이슈, 인권 이야기’,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 사랑과 연애, 성생활’ 등의 다양한 얘깃거리들을 풀어내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