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시합을 위해 출발선에 선 세 아이들. ⓒ이은희

지난 주에는 주언이의 다섯번째 생일이 있었다. 생일이 가지는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선물을 받고 생일케이크를 먹을 수 있다는 즐거움에 이른 아침부터 그저 신나는 아이와 형제들.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고 평소처럼 놀던 중 문득 형아가 제안을 하나 한다.

“오늘은 주언이 생일이니까 우리 주언이처럼 달리기 시합 해볼까?”

'주언이처럼 달리기'란 보통의 달리기와는 조금 다르다. 주언이는 척수손상으로 인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하체를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 첫돌 무렵부터 상체와 팔의 힘으로 몸 전체를 아주 조금씩 끌어당겨 이동을 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워낙 단련이 되어서 꽤 빠른 속력으로 달릴(?) 수도 있게 되었다.

아직 일어나 걸어본 적이 없어선지 다른 아이들처럼 걷거나 달리지 못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없다. 물론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봐야 할 때나 제 손에 닿지 않는 방문 손잡이를 꽝 닿고 동생이 도망가 버릴 때는 마음 속으로 조금씩 결핍을 느끼는 것 같기는 하지만 워낙 밝은 아이라 그런 표현마저도 이내 해맑은 얼굴로 해내곤 한다.

자신은 유모차에 타고 동생은 엄마 손 잡고 걸어야 하는 상황에 대해 가끔씩 모르는 사람들이 의아해 할 때에도 “저는 기어 다니잖아요~”라고 스스럼 없이 말할 수 있는 그런 아이이다.

주언이의 스스럼 없는 태도에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도 어느새 주언이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만 3세 때부터 같이 생활했던 통합 어린이집 친구들의 경우, 아직 어린 친구들이지만 주언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놀이도 하고, 외출할 때면 휠체어를 밀어주기도 하는 등 주언이의 모습을 낯설게 바라본다기 보다는, 특별히 의식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배려하는 마음이 몸에 배어있다고 한다.

오히려 주언이의 모습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은 외부에 있다.

가끔 유모차가 아닌 휠체어를 타고 있으면 어쩐 일일까 궁금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선에 부딪혀야 한다. 그리고 유모차를 탔을 때에도 아직 유모차를 타고 있는 주언이에게 한 번씩 꼭 질문을 던져서 아이 스스로 내가 유모차를 타는 일이 왜 어색한 것인지 그 이유를 찾아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시선도 있다.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데,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주언이와 같은 친구를 바라보는 성숙하지 않은 어른들의 시선이 있어 조금은 아쉬울 때가 있다.

결승선에 도착한 두 아이와 어느새 딴 곳에 눈이 팔린 막내. ⓒ이은희

주언이의 생일 기념 '주언이처럼 달리기 시합'은 힘과 속도에서 월등히 앞선 형아의 승리로 끝났다.

어린 동생은 같이 출발은 하였으나 쪼르르 기어가다 삼천포(?)로 빠졌고, 주언이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기어갔지만 아직은 자신의 승리가 우선에 있고 배려가 익숙치 않은 열한 살 형아에게 석패하고 말았다.

혹시나 형아가 주언이에게 승리를 양보해주지 하는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던 엄마 또한 역시나 하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또 하나의 희망을 읽는다.

편견이 없는 아이들이 어른보다 뛰어날 때가 있다. 어른들은, 심지어 엄마조차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지만, 아이들은 어색함을 극복하고 오히려 불편함을 그들의 곁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을 가졌다.

내 아이와 그의 형제에게 있어 어른들이 생각하는 불편함은 편견이 아니라, 단지 개성일 뿐일 수 있다는 것. 그 것이 아이들의 놀라운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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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칼럼리스트
주언이가 보통 아이처럼 건강했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회의 여러 구석들과 만나면서 아이 덕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인생을 얻은 엄마 이은희. 가족들과 함께 낯선 땅 영국에서 제3의 인생을 펼쳐가고 있는데...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좌충우돌 일상사를, 영국에서 보내온 그녀의 편지를 통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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