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장애인 권리협약 제11조에서는 “당사국은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법을 포함한 국제법적 의무에 따라 무력충돌, 인도적 차원의 긴급사태 및 자연재해의 발생을 포함하는 위험 상황의 발생시 장애인을 보호하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 제24조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안전대책을 강구하도록 하고 있는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추락사고 등 장애로 인하여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와 비상재해 등에 대비하여 시각·청각 장애인과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하여 피난용 통로를 확보하고, 점자·음성·문자 안내판을 설치하며, 긴급 통보체계를 마련하는 등 장애인의 특성을 배려한 안전대책 등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재난에 대한 대책에는 경보와 대피, 구조가 있다. 대피해야 하는 긴급 상황의 발생을 미리 알게 하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청각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 지적장애인 등에게는 이를 알리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거나 보호가 필요하다.

대피는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과 함께 위험 장소로부터 안전지대로 이동하는 것으로, 모든 장애인들이 어려움을 갖고 있다. 지적장애인은 상황 파악이 어렵고 대처기술이 부족하며, 지체장애인은 긴급하게 이동할 수 없거나 평소의 편의시설 중 일부가 작동하지 않으면 이동이 불가능해 버린다. 시각장애는 시각적 정보에의 접근이 불가능하고, 청각장애인은 음성이나 음향에 의한 정보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하다.

재난의 종류에는 홍수, 지진, 화재, 전쟁, 원자력 피폭, 가뭄, 환경오염, 건축물 붕괴 등 다양하다. 삼풍백화점 붕괴시에도 장애인의 희생이 있었고, 시설에서의 화재나 가정 및 병원에서의 화재에서도 많은 장애인들이 희생되고 있다.

최근 청주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에서는 희생된 시각장애인 사체가 보름이나 지나서야 발견되는, 현대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비상식적 사건까지 있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지체장애인에게 위험 상황이 되는 경우도 있고, 지하철 승하차장이나 난간처럼 추락 위험이 있는 경우는 시각장애인에게 위험 상황이 되기도 한다.

비장애인에게는 위험 상황이 아니어도 장애인에게는 위험 상황이 되기도 하며, 긴급 사태 때는 장애인에게 더욱 위험하고 희생 대상 순위에서 최고의 위험자가 된다.

물론, 비장애인도 구조시 허리를 잘못 다루어 장애인이 될 수 있으며, 대피가 불가능해 위험 지역 안으로 구조대가 들어가 구조를 해야 하기도 하고, 구조에도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며, 구조 후에도 각종 지원 서비스가 필요한 대상이 바로 장애인이다.

일본의 경우 후쿠시마에서 지진과 스나미로 인한 원폭 피해가 발생하자, 장애인의 피난 시스템을 가동해 장애인을 우선 대피하도록 했는데, 긴급 상황에서 장애인의 위치가 잘 파악되지 않는 문제점을 발견, 이에 대한 대책들과 개인 정보 및 사생활 보호에 대해 조치를 보강하였다.

그리고 피난지에서의 장애인의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피난 장애인 돕기 모금 뺏지를 30여 종 만들어 대대적인 모금 활동을 하였다.

일반 민간 피난자를 위한 모금은 일본에서는 그렇게 활발하게 전개되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에서 활발한 모금이 시작됐는데 비해 일본내에서는 가장 취약한 장애인 모금은 매우 활발하게 전개된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편의증진법에서 '비상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청각장애인을 위한 점멸등 설치가 고작이고, 시각장애인에 대한 대책은 없으면서도 청각장애인 대책에 시각장애라는 이름만 얹어 놓았다.

또한, 소방법 등 여러 재난관련 법률을 검토해 보면 대피훈련 계획 수립시에 장애인도 포함하도록 한 것이 유일한 내용이다.

고층 아파트나 상가에서 휠체어 장애인이 화재시 어떻게 대피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국회에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였으나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장애인의 피난 대책은 장애 예방 대책과도 매우 관련이 높다. 안전 대책 시스템이 완벽할수록 장애 발생은 줄어들며, 장애인 역시 그 장애가 더욱 심화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장애인 성폭력 피해 사건 보도와 재난시 장애인 희생 기사를 접할 때마다 같은 장애인으로서 아무것도 조치해 주지 못함에 무력감과 죄책감을 느낀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장애인이 되어 살아가기 위해 매일 매일 목숨을 걸고 온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현실을 절감하게 된다.

장애인을 포함한 다수가 피난할 수 있는 설비 설치 의무화, 감각이나 운동장애가 있는 장애인을 위한 안전관리 시스템 적용, 휠체어 장애인이나 와상 장애인도 화재 등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 모색 등의 대책은 매우 시급하다.

아태장애인 10년 계획에도 긴급사태로부터의 안전대책 강구가 있고, 장애인정책발전 5개년 계획에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장애인복지관을 대상으로 장애인의 피난시에 걸리는 시간이 비장애인보다 얼마나 더 걸리는가를 비교하는 연구가 고작이고, 그 결과가 장애인은 엘리베이터 등을 이용하기에 오히려 빨리 도망갈 수 있다라는 것이라고 하니 정말 한심하기까지 하다.

장애인 안전대책 강구를 건의할 때마다 정부는 "곧 장애인 안전대책 시뮬레이션을 할 것이며 그 결과를 보고 안전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답변했건만, 그 거창한 연구라는 것이 이 것이었다니 위험 상황에 노출돼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사는 장애인으로서는 배신감마저 든다.

혹시 장애인에 대한 안전 대책을 강구하지 않아 발생하는 희생으로 인해 장애인 인구를 줄어들게 하고, 그 것이 장애 예방의 대책으로 비밀로 정부가 그러한 안을 가지고 있다면 그래, 우리 장애인들은 마루타처럼 의연히 죽어줄 것이다.

화재가 나서 출동한 소방관마저 장애인의 희생이 있음조차 발견하지 않고 돌아가 방치되는 현실에서 우리 장애인은 정말 할 말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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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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