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한 해도 남북 관계는 정치적으로 좋지 않은 소식만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가을부터는 조금씩 관계가 풀리는것 같기도 해 다행으로 생각하며, 북녘 장애인들의 좋은 소식을 전하려고 한다.

2011년 6차 방북 지원을 보람 속에서 마무리했다. 11월 29일 북경을 거쳐서 사단법인 푸른나무 김인선 사무총장과 함께 평양에 도착했다. 북녘의 장애인 특수학교와 고아원에 겨울 내복과 모포, 식량, 장애인 보장구, 휠체어를 전달하고 사업 협의를 하기 위해서 였다.

어려운 민족의 분단 현실 속에서 추위에 어려움을 겪을 장애인들과 고아들을 돌아보고 남과 북의 장애인 교류와 협력을 위한 일들을 추진하고 마무리하는 의미있는 평양방문이었다.

그리고 지난 12월 7~11일 북경에서 열린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 총회에 조선장애자보호련맹중앙위원회의 김문철 부위원장과 리분희 서기장 등 3명이 참석하여 만장일치로 북한이 세계장애인올림픽 준회원국으로 받아들여졌고, 2013년에는 정회원국이 되는 성과를 거두었는 이야기를 들었다.

2012년 런던 세계장애인올림픽에 북한이 정식으로 참가하는 역사적인 전환점을 시작으로 북녘 장애인 체육발전과 복지발전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이다.

또한, 12월1일 오후 5시부터는 대동강장애인문화센터에서 조선장애자보호련맹 주최로 세계장애인의 날 축하 행사가 평양에서 3회째 열렸다. 원래 세계장애인의 날은 12월 3일이나 련맹의 IPC 총회 참석으로 2일을 앞당겨 행사를 진행했다.

우리는 련맹의 공식 초청으로 이 날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추운 날씨에도 EU 7, 각 나라 대사들과 참사들이 참석하였고, 보건성 최창식 위원장과 유럽 NGO 단체 임원, 장애인 부모님 등 300여 명이 대동강 장애인문화센터를 가득 메웠으며, 행사장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도 밖에 가득했다.

북녘 장애인들의 삶에 큰 변화를 보여주는 현장이기도 했다.

북한의 '제3회 세계장애인의 날' 행사. ⓒ신영순

세계장애인의 날 축하 행사는 김문철 부위원장의 개회 인사와 유럽동맹의 축하메시지, 그리고 장애인들과 학부모들의 감사 인사와 함께 대동 맹아학교 소속 시각장애인들의 완벽한 악기 연주와 노래로 시작되었다.

청각장애인들도 봉산탈춤과 백조의 호수 발레까지 완벽한 무용을 공연했으며, 모든 참석자들은 큰 감동으로 박수 갈채를 보냈다.

이제는 남북 장애인들이 만나서 함께 춤도추고 악기 연주와 노래를 부르며, 통일의 대열에 함께 손잡고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내안에 넘치는 순간이었다.

청각과 지체장애인들이 만든 정교한 봉재, 목각 공예품들도 전시 판매되었다.

그동안 주위의 많은 반대를 무릎쓰고 북녘 장애인들에게 직업재활과 악기 및 체육 기자재들을 지원한지 불과 4년여만에 많은 장애인들이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것이 진정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인권개선이라 나는 믿고 있다.

북한 '세계 장애인의 날 행사'에 참석한 푸른나무 일행. ⓒ신영순

체육과 예술 관련 장비와 악기를 지원했던 초기에는 식량난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장애인들에게 무슨 악기며, 체육이냐는 부정적인 비난에 부딪혀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민족통일의 미래를 위해 남과 북에 복지 균형을 이루는 일은 통일이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한다.

11년간 북녘 장애인들과 고아들에 대한 식량 지원과 함께 예술, 체육, 재활치료, 특수교육, 직업재활 등을 위해 조선장애자보호련맹과 함께 꾸준한 신뢰와 기쁨으로 협력해 온 결과 그 열매들이 지금 북한의 각 분야에서 풍성하게 익어가고 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

북한 세계 장애인의 날 기념 행사 중 봉산탈춤. ⓒ신영순

북한 세계 장애인의날 기념 행사 모습 중 시각장애인연주단. ⓒ신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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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순 칼럼리스트
신영순 선교사는 지적 장애인 딸의 엄마로서 33년 동안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왔다. 지난 1991년 번동코이노니아 장애인보호작업장을 설립, 7년간 원장으로 일했다. 특히 1998년부터는 식량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북한의 고아, 장애인들을 위한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때문에 수시로 한국과 북한을 오가고 있다. 칼럼을 통해 북한 장애인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들의 지원을 통해 일하고, 공부하며, 재활의 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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