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 대학로(출처 구글 이미지). ⓒ샘

버클리 대학 앞에 있는 스프린트 대리점에 갈 때마다 마음이 뿌듯해 진다. 미국이나 일본의 제품들을 제치고 우리나라에서 만든 제품들이 제일 좋은 자리에 위치해 있다.

미국 상원 인턴으로 있을 때 미국인 동료들 손에 들려 있는 것도 한국산 핸드폰들이었다. 그 중 한 명은 전화기가 부서지자 한국 제품을 자랑스럽게 사들였다.

나 또한 아내와 내 핸드폰을 구입했는데, 하나는 한국산을 구입했고 또 하나는 다른 나라 제품을 구입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제품은 오래 못가서 고장이 나버려 돌려 주자 그 제품은 이제 더 이상 생산이 되지 않으므로 다른 전화를 준다며 한국산을 주는 것이었다. 두 전화 모두 참 만족스럽다. 이제 핸드폰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한국 제품을 따를 것이 없는 것 같다.

그 많은 제품을 제치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 있는 국민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외국에 나와 있는 동포들에게는 더더욱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우리 가슴을 뿌듯하게 하는 것은 핸드폰 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운동선수들과 의학자 또는 과학자들이 쾌거를 올릴 때마다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자랑스러움이 외국인들이 보는 대한민국을 생각할 때면 부끄럽게 꼬리를 내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이 세계화되면서 많은 눈부신 업적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어깨를 으쓱거리기에는 어림없다. 수 백, 수 천만 가지 중 몇 가지 앞섰다고 자랑하기에는 아직 부끄러운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 몇 가지 앞섰다고 아직 한국을 우러러 보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진정 외국인들이 우러러 볼 수 있는 나라가 되기에는 우리는 세계에 모범이 될만한 일을 한 적이 별로 없다.

세계가 우러러 보는 나라가 되는 것은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다. 우리 국민이 대한민국을 좋은 나라로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나라로 보기에는 아직 우리나라는 너무 혼란스럽다. 그리고 아직 세계인이 우러러 볼만한 뚜렷한 것을 지니지 못했다.

나라가 혼란스럽다는 것은 뚜렷한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가치 있는 목표를 정해 놓고 힘차게 정진해나간다면 우리 사회의 혼란은 사라지고 세계가 우러러 보는 나라가 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으로 세계가 우러러 보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장애인이 잘 사는 나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아직 장애인 제도의 국가적 차원에서의 막강한 힘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마냥 생소하게 들릴 이야기지만, 앞으로의 세계에서는 장애인 제도에 따라 국가의 등급이 매겨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장애인 제도 개선을 위해 우리 국민이 제일 먼저 인식해야 되는 것은 장애인이 일정 집단이 아니라 전체 국민이 장애인, 혹은 미래의 장애인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살아가면서 한 번은 장애를 겪게 되어 있다. 팔 다리를 삐거나 근육의 이상이 생겨서도 임시로 장애인이 될 수 있고, 불의의 사고로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노령화 사회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신체에 손상을 입고 살아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장애에 관한 문제를 단순히 국민 중 한 부류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국민이 겪을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이 장애를 입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 장애를 국민 대부분이 한 번은 경험하고 살아가야 된다는 것은 슬프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동의 아픔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포착한 미국은 지금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우수한 장애인 제도를 가지고 세계를 향해 우뚝 섰다. 버클리 대학과 미국의 상원은 미국의 장애인 제도를 발전시키는 데 최고의 수훈을 세운 곳이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상원에서 장애인 위원회의 인턴으로 일하며 장애인 제도가 미국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미국이 망할 조건을 다 갖춘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망하지 않고 세계 최강국이 된 것은 장애인들을 보살피기 때문이야."

내가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최훈일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진정한 장애인 제도의 힘을 파악하지 못했던 내게는 전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논리였는데, 한국에서 정한 1급 장애인으로 미국에서 살아가면서 그 말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말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미국에 체계적인 장애인 제도가 이루어 진 것은 일반적 생각과는 달리 그리 오래되지가 않았다.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것은 버클리의 에드워드와 상원의 탐하킨 의원이다.

60년대에 에드워드는 언론의 시선을 받으며 버클리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입으로 휠체어를 조종해야 할만큼 심한 장애인이었다. 그는 그 몸을 이끌고 장애인자립센터를 설립하는 등 세계 장애인 운동의 기수가 되어 장애인 자립을 이루는 데 귀감이 되었다.

또한 상원의 탐 하킨 의원은 형이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저능아 취급을 받는 데 분개해 미국의 장애인법을 통과시키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고, 미국에 판매하는 모든 텔레비전에 자막을 넣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들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장애인 운동가들이 불과 수 십 년 동안에 미국의 장애인들을 위해 이룬 업적은 실로 지대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국의 장애인 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장애인 관련으로서는 최고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탐 하킨 상원 의원의 장애인위원회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그리고 버클리 대학의 각종 장애인 제도를 이용해 가며 한국인이라면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한 두 번 해 본 게 아니다.

단적인 예지만 이동식 휠체어 승강기를 비교해 본 적이 있다. 어떤 드라마인지는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한국의 드라마에서 어느 행사장에 장애 아동들을 초대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네들을 위해 준비한 이동식 승강기는 너무 멋있었다.

그 드라마를 본 지 오래지 않아 필자의 버클리 대학 졸업식이 있었다. 졸업식장으로 사용된 젤라박 공연장은 무대에 휠체어를 위한 경사로가 없었다. 그래서 휠체어 승강기를 무대 한편에 마련해 놓았는데, 한국의 드라마에서 본 승강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볼품이 없었다. 그런 자리에 드라마에서 본 승각기를 가져다 놓았으면 훨씬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필자가 한국인들이 장애인 제도를 마련해 가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잘 할 수 있다고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한국인은 정이 많고 두뇌가 우수하며, 손재주가 어느 민족 보다 우수하다. 이것들이 적절하게 이용되어 훌륭한 장애인 제도를 만들어 가면 어느 나라 못지 않은 제도를 만들어 낼 수 있고, 그것은 세계인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 세계가 우러러 보는 나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장애 문제는 특성상 정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한국의 독특한 환경이나 유난히 어려움이 많았던 역사 속에서 한국인은 나름대로 독특한 정의 문화를 형성해 왔다. 한국인에게 아직 정보다 진한 덕목은 없는 것 같다. 우리 한국인들은 정으로 끈끈하게 인간 관계를 이어 왔다. 정겨운 땅, 정겨운 사람들, 이 보다 우리를 따듯하게 하는 말들이 또 있을까 싶다.

이 정겨움으로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 나왔다. 정이 있어 가족의 어려움을 이겨 나갔고, 정이 있어 이웃의 어려움을 이겨 나갔고, 정이 있어 나라의 어려움을 이겨 나갔다. 정 때문에 보증섰다가 집이나 재산 날린 사람이 우리 나라처럼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그 만큼 정은 타인과 나를 가깝게 해 최고의 인간관계를 만드는 주된 요인이 되는 것이다. 자기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남을 위하는 정을 바탕으로 훌륭한 장애인 제도를 마련해 간다면 틀림없이 세계가 우러러보는 장애인 제도를 가진 나라로 발전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정을 바탕으로 우리의 우수한 두뇌가 이용되어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우수한 정책을 만들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끊임없이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의 손재주이다. 우리의 섬세한 손재주(물론 아이디어 포함)는 제도뿐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많은 용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얼마 전에 한국의 모 벤처 회사가 글자를 읽어주는 기계를 개발했다고 한다. 내년 2월부터 판매될거라는 이 기계는 책에 갖다 대면 대신 글을 읽어 주는 데, 한글 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언어를 읽어 줄 수 있다고 한다. 이 것이 상용화됐을 때는 시각장애인들 뿐만이 아니라 많은 문맹인들에게는 혁명적인 소식이 아닐 수가 없다. 이 것이 한국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더 없이 기뻤다. 앞으로 이런 것들이 계속해서 만들어 져야 한다.

이런 손재주를 가진 한국인들이라면 계단을 오르는 휠체어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미국에서 이미 발명되어있지만 아직 복잡성과 안전성 때문에 소비자에게 까지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지능을 가진 보조기를 만들어 못 걷는 사람들을 걷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시각이나 청각장애인들의 어려움을 현저히 덜어 주는 획기적인 장치를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세계 최고의 단말기를 만들어 내는 우리 기술이 그것을 만들어 내지 못할 리가 없다. 단지 아직 한국인들에게는 장애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피부로 느끼지를 못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런 것들을 만들어 세계 10억이 넘는 장애인들에게 내밀 때에 어느 나라가 우러러 보지 않을 것인가.

지금 미국의 북가주 중국 방송에서는 한국의 '올인'이 방영되고 있다. 끊임없는 지리멸렬한 싸움과 경제적 어려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더 나아가서는 대한민국 발전의 거보를 위해 장애인 제도 발전에 올인 한 번 해 보면 어떨까? 다소 어렵더라도 세계가 우러러 보는 국가를 만들어 가기 위해 올인하다 보면 세계의 장애인들과 예비 장애인들이 한국에 눈을 돌릴 것이다.

이제 장애인 문제를 시혜 차원에서 보는 원시적인 시선은 거두어야 할 때다. 장애인 제도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특정한 제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언젠가 한 번쯤은 요긴하게 이용하는 제도이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그런 나라를 만들어 놓았을 때 국민이 국가에 갖게 되는 신뢰나 안정감이다. 그렇게 될 때에 국민이 나라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를 꺼낼 때마다 나오는 말이 나라에 돈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타당하지 않은 말이다. 마음이 없고 시도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하룻밤 접대비가 수 백이며, 몇 백 만원 짜리 옷을 사대는 부유층의 사치 앞에 그 말은 설득력이 없다.

뿐만이 아니다. 정말 좋은 일을 하려고 할 때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외국 기업들도 좋은 일에 돈을 쓰기 위해 줄 서 있다. 워싱턴 디시에서 무척 규모가 큰 장애인 단체의 모임이 있었는데, 내로라는 기업들이 지원 명단에 줄줄이 올라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 좋은 일을 하려는 뚜렸한 의지만 있다면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다.

큰 의지를 가지고 장애인들이 참으로 잘 사는 한국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머지 않아 세계는 장애인 문제에 제대로 눈을 뜨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장애인 제도가 잘 된 나라를 연구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장애인 문제를 이끌어 갈 최고의 국가를 한국이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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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지체장애인으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 미국 탐 하킨 상원의원 장애국 인턴을 역임했다. 또한 서울장애인체육회 워싱턴 통신원, 서울복지재단 워싱턴 통신원,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출간한 수필집 ‘사랑, 그 빛나는 조각들’은 1992년 올해의 우수도서로 선정됐으며, 2009년에는 워싱턴 문학 수필부문 가작에 당선됐다. 각종 미국 장애인 소식을 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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