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전철역. 엘리베이터를 타면 개찰구를 거치지 않고도 쉽게 전철을 탈 수 있다. ⓒ샘

"가자!"

아내가 갑자기 큰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두 아이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진다. 며칠 전부터 집을 떠나려고 몇 차례 시도를 해 보았으나 건강과 경제적인 문제, 그 외의 잡다한 문제에 발목이 잡혀 선뜻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남 가주로 내려가서 보고 싶은 친척, 친구들을 만나고 깊어 안달 난 아이들은 계속해서 졸라댔고, 그 성화를 견디지 못해 아내가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결정을 내린 시간이 정오를 넘었기 때문에 우리는 급히 짐을 챙겨 차에 싣고 출발했다.

북가주의 버클리대학 주택단지에서 남가주의 토랜스까지는 400마일 거리로 곧장 달려도 6시간 정도 걸린다. 토랜스는 우리가 미국에 와서 10년 넘게 산 곳이어서 정이 든 데다 형제와 그 가족들, 그리고 오래 정든 이웃들이 있어서 긴 여정에도 불구하고 일년에 한 두번은 찾는 곳이다.

여행 중 가장 큰 문제는 두 아이다. 나이 차이도 있고 객관적으로 봐서 성격들도 괜찮은 아이들이다. 그래선지 집에서는 동생을 잘 봐주는데, 비좁은 차 안에서 장시간 여행을 하다 보니까 그런 다정함보다는 다투는 경우가 더 많다. 타이르기도 하고 야단도 쳐보지만 순간일 뿐 금세 도로 다투곤 한다.

생각다 못해 휴게소에서 정차했을 때 내가 뒷자리로 가고 아들을 앞자리로 보냈다. 그 것은 무척 훌륭한 해법이었다. 앞 뒷자리에 않은 두 아이는 더 이상 다툴 일이 없어졌다. 아들은 엄마와 평소보다 더 다정하게 이야기 했고, 뒷 좌석의 다섯 살짜리 딸과 나는 차가 시끄러울 정도로 장난치고 얘기를 나누었다. 비로소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 것이다. 토랜스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내내 즐거웠다.

자리 한 번 바꾸어 해결된 문제는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지나치게 그 문제 자체에만 집착해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쓸데없는 소모전에 몰입해 아무런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조금만 물러서서 생각하면 전혀 예상치 않았던 해결책이 얼마든지 있기 마련이다.

이 '자리바꾸기 해법'에서 또 하나 얻은 결론은 사람 자체를 바꾸기보다는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천성난개'라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난다. 한 번 타고난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셨다. 살아가면서 그 말씀이 맞다는 생각을 한 두 번 한 것이 아니다. 남을 말할 것 없이 나 자신을 보아도 그렇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단점 몇 개를 고치려고 벼라별 짓을 다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 내린 결론은 결국 포기였다. 평생 고쳐지지 않을 것 고치려고 애쓰기 보다는 내버려 두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현자는 말했던가.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고. 그런데 이 고쳐지지 않는 것을 고치려고 한국은 얼마나 무리를 했던가. 사람을 고쳐서 국가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은 바꾸어야 한다. 불가능한 사람 고치기를 고집하기 보다는 이제 바람직한 제도를 통해 국가를 발전시켜가야 하는 것이다.

제도를 통한 발전의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워싱턴 디시와 샌프란시스코의 장애인을 위한 전철 제도이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는 개찰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전철을 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안내원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다소 먼 거리에 설치되어있기 때문에 무임 승차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워싱턴 디시 지역은 어디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중간층까지 내려가 반드시 개찰구를 거쳐서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무임승차가 철저히 방지된다.

우리 정책과 제도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전철 엘리베이터와 흡사하다. 빈곳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로 하여금 양심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허점이 많은 제도가 국가적으로 볼 때 실로 많은 손실을 가져온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해법이 필요한 때다. 팽팽히 긴장된 대립에서 한 발 물러서 냉철히 생각하고 더 나은 제도를 만들어 내야 하는 때다.

남가주로 달려갔던 자가용 링컨 타운카.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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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지체장애인으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 미국 탐 하킨 상원의원 장애국 인턴을 역임했다. 또한 서울장애인체육회 워싱턴 통신원, 서울복지재단 워싱턴 통신원,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출간한 수필집 ‘사랑, 그 빛나는 조각들’은 1992년 올해의 우수도서로 선정됐으며, 2009년에는 워싱턴 문학 수필부문 가작에 당선됐다. 각종 미국 장애인 소식을 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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