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필자의 칼럼 교정을 봐주는 나솔인 씨가 운영하는 유어웨이의 명사초청 강연에서 '장애인의 성과 함께'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내용은 영화 '도가니'와 관련해서 장애인 성폭력의 현실, 구조적 원인, 대책에 관해서, 그리고 활동을 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와 장애인의 성에 관한 편견에 대한 것이었다.

강의 중 나솔인 씨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올 4월 장애인 맞선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전 인터뷰를 했었는데 인터뷰에 응했던 남성장애인 5명 중 4명이 "결혼은 개인이 알아서 할 문제이지 사회가 도와주거나 지원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그 4명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결혼의 관문을 통과한 장애인들이었다고 한다.

성과 관련해서도 필자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성은 개인이 알아서 할 문제이지 국가나 사회가 지원해줄 문제가 아니다"고. "특히 장애인의 성을 이야기할 때 장애인(특히 지적장애인)은 책임질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성을 누리게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는 일"이라고.

바로 이것은 '성은 개인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관점의 생각이다. 그러나 과연 성이 전적으로 개인적인 것이기만 할까?

물론 성은 개인적인 측면이 많다. 애인이나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며, 선택하는 기준 또한 각자가 다르다. 자녀의 수와 양육방식 또한 개인적인 것이며, 성생활의 방식 또한 개인적인 것이다. 부부의 성생활까지 국가가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간통죄 폐지 주장이 그것에 기인한다.

반면에 사회적인 측면도 있다. 남성의 역할은 가족 부양과 경제활동, 여성의 역할은 자녀 양육과 가사를 기대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일반화돼 있으며, 결혼제도, 가족제도가 국가와 사회마다 다른 것 또한 사회적인 것이다.

4,5년 전쯤 학업과 운동, 리더십 등에서 남학생을 능가하는 10대 소녀들을 일컫는 '알파걸' 열풍이 일었다. 과거였다면 "계집애들이 독하고 드세게 설쳐댄다"라는 이야기가 대세였을 것이다.

결혼할것처럼 상대방을 속여서 성관계를 갖는 것을 '혼인빙자간음죄'라고 한다. 이 죄는 남성에게만 해당하는 죄다. 몇 년 전 이 죄가 폐지되었다. 이유는 남녀차별적이고,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바로 사회적 측면에 기인한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전과가 남는 형사처벌만 받지 않는다는 것이지 민사적인 손해배상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은 개인적인 것임과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출산과 양육은 개인적인 것이다. 사회나 국가가 강제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출산 및 양육에 있어서 국가나 사회의 책임이 강조되고 커져가는 것일까?

바로 출산과 양육이 이루어져야 국가와 사회가 구성되고 존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출산의 원인이 사회으며, 출산은 다름 아닌 성생활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젊은층들이 3가지를 포기했다고 한다. 연애, 결혼, 출산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는 분명 개인적인 것인데 왜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일까? 갑자기 그냥 개인이 하기 싫다고 생각이 바뀐 것일까? 아니다. 바로 그 이유는 사회에 있다. 취업이 힘들고 저임금인데 위의 3가지를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성에도 두 가지 측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필자는 특히 장애인의 성에 있어서는 사회적 측면이 크다고 본다. 그동안 칼럼을 통해 여러 차례 이야기를 했지만 장애인이 성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개인보다는 사회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만약 개인의 책임이 크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곧 취업과 교육의 기회 부족을 장애인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

개인의 책임만을 강조하면 장애인 자신의 노력과 능력이 부족한 것이 되고, 사회의 책임만을 강조하면 장애인이 남의 탓만 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취업, 교육, 성, 세 가지 모두 두 가지 측면이 다 있고, 필자도 개인적인 측면을 강조하지만 사회적인 측면에 더 큰 비중이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이 굳이 국가나 사회의 지원을 받지 않고도 개인이 자유로이 성을 누릴 수 있다면 지원이 필요 없다. 그것이 이상적이고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그 원인이 사회에 있다면 지원을 해주는 것이 사회의 책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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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미숙아로 태어나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갖게 됐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다음 인생을 고민하던 중 인터넷으로 장애인시설에 근무하던 한 여성을 만나 그곳에 있는 한 남성생활인과의 고민을 들어주다 호감을 느끼게 됐다. 거절당했지만 그것을 계기로 장애인 성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장애인푸른아성 회원을 거쳐 활동가로 일했고, 프리랜서로 지체 및 발달장애와 중복되지 않는 뇌병변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 강사이자 장애인 성 분야 활동가다. 현재는 장애인푸른아우성카페 운영자와 장애인성재활네트워크모임에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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