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무원에게 무임승차권을 발급받아 지하철을 이용할 때, 나도 모르는 버릇이 하나 생겼다. 앞이나 뒤에 복지카드를 제시하고 표를 받아가는 사람들 중 장애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표를 받아갔을 때는 그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곤 했던 것.

때로는 그런 시간이 길어져 직원에게 "다음 사람을 위해 비켜달라" 는 말을 듣는 경우도 있었지만, "저 사람은 어디가 장애이기에 무임 승차권을 받을까?"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장애가 심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저렇게 복지카드를 제시하고 해택을 받으니 정작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들은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이 곱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더욱이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교통료 등 각종 할인 등을 받기 위해 뇌물을 주고 장애 등급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언론이나 현실에서 자주 보게 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갖고 해택을 받는 사람들'과 '병원에서 돈을 주고 장애 판정을 받은 사람'들을 '동급'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이런 생각은 두 번째로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교회 청년부 모임에서 같은 지역으로 묶여 자주 인사를 나누다 오빠 동생 사이에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빈혈과 다리 통증으로 인해 오랫동안 서서 이동을 한다거나 피로할만큼 몸을 움직이면 안 되는 아이였다.

우리가 동료이자 선후배에서 연인으로 발전했을 때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몸 상태로 인해 여러 가지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음을 사전에 이야기한 후 그 부분을 이해해줄 것을 부탁했다.

몸이 불편한 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소아마비를 갖고 있는 나에 비해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의 부탁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고 "네가 얘기한 내용을 잘 알았으니 우리 한 번 잘 사귀어 보자"는 말로 그녀를 안심시킬 수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더욱 큰 스트레스, 미안하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예전에 장애인을 봤을 때 어느 정도까지 불편한 줄은 몰랐는데 장애 체험을 해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불편하더라"고 얘기하는 사람을 간혹 만난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장애가 자신에게 현실로 닥쳤을 때 느껴지는 불편함이 더 크다는 얘기였다.

그녀를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몸의 불편함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쪽은 나보다 오히려 그녀였다.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그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길을 걷다가 미끄러져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때는 그녀가 아닌 내가 넘어졌을 경우였다. 내게는 "몸이 불편한데 조심해서 다녀라"는 말을 하던 사람들이 그녀가 넘어졌을 때는 "어디가 이상한가?, 술을 먹어서 그렇다"는 등의 온갖 추측성 단어를 쏟아내곤 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도 "젊은 사람이 왜 엘리베이터를 타느냐"고 타박을 듣는 쪽은 거의 대부분 그녀였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장애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모두들 행복하게 살 수 있을줄 알았고, 나 역시 소아마비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장애를 원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 비로소 그녀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이들의 애환도 알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몸이어도 그 뒤에는 한숨과 눈물이 숨어 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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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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