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공항(출처: 구글이미지). ⓒ샘

8/7/2004

Dullers Airport. 시원하게 트인 대기실 창 밖으로 관제탑이 보인다. 비행기 이륙 시간이 12시 35분, 아직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다. 버거킹에 들어와 워싱턴을 떠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

백 번 천 번을 해도 부족한 고백이다. 이 곳에 오게 된 것에서부터 이곳에서 지낸 시간 시간 들, 그리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다. 그렇게 섬세하게 이끄셨고 그렇게 이끌어 가실텐데 나는 왜 그렇게 걱정이 많았는지.

이 죄 많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어떻게 쓰시려는 걸까?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공항에 있어 보기는 처음이다. 서둘러 나와서 시간도 넉넉할 뿐더러 동행이 없으니까 챙길 일도 없고, 이제 익숙해져 맹숭맹숭해서 이상할 정도다.

참으로,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어디하나 성하게 몸 쓸 수 없는 장애인이 두 달 반을 집 떠나 혼자 살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을 가진 이 나라는 축복 받을 나라임에 틀림없다.

한국은 도대체 언제나 이렇게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할수록 한국의 장애인들이 안타깝다.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이 산적한 문제를.

(비행기 안에서)

세 시간 남았다. 세 시간만 지나면 아내와 딸을 보게 된다. 아쉽게도 아들은 수련회에 가서 모레나 보게 된다. 가족과 떨어져 산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특히 DC를 방문했던 가족들을 공항에서 떠나 보낼 때는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던가. 겨우 한 달 더 남게 될 뿐이었는데 공항에서 가족을 배웅하고 혼자 돌아가는 발걸음은 천근이나 되었다. 이제 그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글을 쓰는 도중에 커피가 왔다. 마시겠느냐고 물을 때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흔한 일이 아니다. 건강도 그렇지만 무언가에 중독되는 것이 싫어서 피해 왔는데 오늘은 다르다. 가족에게 돌아가는 길, 비행기 손걸이에서 꺼낸 탁자가 글쓰기에 유난히 편하고,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이렇게 기분 좋게 글에 취해 있는데, 게다가 세 시간 정도면 화장실 걱정을 안해도 되니. 참 좋은 시간이다. 게다가 커피까지…

….

공항에 아내와 딸이 나와 있었다. 교회 수련회에 간 아들을 빼고 우리 셋은 뜨겁게 포옹을 했다. 아! 이 감격! 힘든 일 다 마치고 돌아와 가족을 만나는…….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우리는 내내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현관에 모젤이 포스터를 만들어 놓았다. 내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림과 함께 'WELCOME DAD'라고 쓰여 있는 포스터가 그 동안의 긴 긴장을 한꺼번에 쓸어 내렸다. 나는 다시 한번 딸을 끌어안았다.

딸아, 아빠가 해냈어. 미 전국에서 열명만 뽑는 센 경쟁률을 뚫고 상원에 가서 장애인 정책을 공부하고 왔어. 전신 마비의 몸으로 혼자서 말이야. 아빠에게는 뜻이 있단다. 그래서 그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 몸으로 혼자서 상원을 다녀 온거야. 장애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 혈투를 벌이고 있는 미 정가의 노력을 뼈져리게 느끼고 왔단다. 우리 나라도 그렇게 되어야 해. 아니 그 이상이어야 해. 이제 아빠는 그것을 위해 온 힘을 쏟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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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지체장애인으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 미국 탐 하킨 상원의원 장애국 인턴을 역임했다. 또한 서울장애인체육회 워싱턴 통신원, 서울복지재단 워싱턴 통신원,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출간한 수필집 ‘사랑, 그 빛나는 조각들’은 1992년 올해의 우수도서로 선정됐으며, 2009년에는 워싱턴 문학 수필부문 가작에 당선됐다. 각종 미국 장애인 소식을 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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