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사무실 직원들이 일하는 하트 빌딩. 이런 건물이 세동이 있다.(출처 구글이미) ⓒ샘

요란하게 비상벨이 울렸다. 대피령이다. 911사태 이후 상원에 한 달에 몇 번씩 일어나는 일이어서 무디어질만도 한데 장소가 장소인만큼 벨이 울릴 때마다 직원들은 초 긴장이다.

연락을 받은 오피스 매니져 트리샤의 얼굴 빛이 하얗게 질려 있다.

"정체 불명의 비행기가 날아오고 있대. 이곳 도착시간은 2분이야. 건물을 나가서 공원 북쪽으로 도망쳐. 1초라도 빨리!"

순식간에 복도가 메워졌다.

"샘은 나하고 같이 간다."

트리샤는 다른 직원과 함께 도망치지 않고 내 옆으로 다가 왔다.

"빨리 서둘러요."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나를 챙기느라고…….

"이쪽!"

그녀가 별도의 복도로 안내했다. 그녀와 함께 도착한 곳에는 이미 경찰이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대기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로 내려와 건물을 빠져 나왔다. 미국 의회에는 하트, 러셀 등 세개의 오피스 건물이 있다. 그 안에는 8천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우리가 대피한 건물에는 그 8천여 명의 직원들이 몰려있었다. 그들의 얼굴이 굳어있다.

우려했던 건물 폭파는 일어나지 않았다. 트리샤는 전화로 상황을 보고 받고 있었다. 한 시간여 후에 상황이 종료됐다.

"무슨 일이래?"

트리샤에게 물었다.

"켄터키 주지사가 탄 전용기가 교신없이 날아왔대."

전 레이건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날아 오던 중에 착륙 신호 없이 내려오는 바람에 의회 직원들이 혼비백산한 것이다. 잘못하면 격추됐을지도 모를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상원 직원들은 다시 건물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의회 오피스에 들어가려면 소지품 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1시간 정도 소요된다. 트리샤는 끝까지 나와 동행했다.

"작년 여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트리샤가 내게 묻는다.

"무슨 일이있었는데?"

"글쎄, 대피령이 내려졌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서 한 장애인 휠체어를 들고 내려왔지 뭐야. 세상에 그런 창피한 일이 어딨어."

나는 의회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창피하다는 줄 알았다. 기계인데 고장이 날 수도 있는데 웬 호들갑인가 의아해 했는데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달랐다.

"어떻게 버릇없이 장애인의 휠체어를 들어 나를 수가 있냐구. 장애인이 얼마나 창피했겠어."

나는 그때에서야 미국인들의 장애인 이동에 대한 의식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휠체어를 들어 나르는 것 뿐만이 아니라 업혀서 옮겨 다니는 경우도 많아 무디어져 있는데 미국인들은 엄청나게 민망한 일로 생각하고 있다.

그 일 후로 나도 누구에게 들려 휠체어를 옮겨지는 일이 조금씩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상황이 연출되지 않도록 사회 구석구석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필요하고, 또한 그 시설이 더 완벽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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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지체장애인으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 미국 탐 하킨 상원의원 장애국 인턴을 역임했다. 또한 서울장애인체육회 워싱턴 통신원, 서울복지재단 워싱턴 통신원,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출간한 수필집 ‘사랑, 그 빛나는 조각들’은 1992년 올해의 우수도서로 선정됐으며, 2009년에는 워싱턴 문학 수필부문 가작에 당선됐다. 각종 미국 장애인 소식을 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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