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과 함께 치료실을 다니는 어머니가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아들의 장애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이들보다 오히려 같은 치료실에 있던 부모들이 서로 아이의 상태를 비교하며 경중을 따지는 것"이라고 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치료실에 모인 아이들 대부분이 사회성에 따라 조금씩 정도가 다르지만 장애라는 범주에 함께 속해 있어 서로 위로를 받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

그녀를 사귀면서 처음에 가장 신경이 쓰였던 사람들은 물론 비장애인이었다. '장애'라는 것 자체가 난간이 없는 계단이나 턱 등에 신경이 쓰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식사나 영화 관람 등 데이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이 등록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이들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비장애인들의 경우 굳이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아르바이트를 통해 좀 더 여유 있는 데이트를 즐기는 커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직장인이었다. 만약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학생을 싫어했다면, 평범한 직장인을 만나 심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훨씬 더 편안한 데이트를 즐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포기하고 나를 자신의 남자친구로 선택했다는 것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 나타나는 비장애인들은 항상 경계 대상 1호였다.

장애인이 장애인을 차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에 그녀의 주위에 있는 나보다 장애가 경한 이들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녀의 교회 동료이자 몇 살 위인 P가, "저 사람은 나보다 장애가 심하니 고생하지 말고 나랑 사귀어 볼 수 있냐" 고 여자친구에게 고백을 했던 것이다.

P는 내가 여자친구와 있을 때 자주 보던 사람이었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자신을 3급 장애인이라고 소개했지만, 목발을 짚는다거나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군 생활 도중 사고로 다리 수술을 했으며, 오래 서 있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는 비장애인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P는 중도에 장애를 입어서인지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지하철 매표소에서 복지카드를 제시하고 무임권을 받을 때면 뒤에 다른 사람이 없는지를 항상 살펴보고 만약 뒤에 대기자가 있다면 그 사람을 먼저 보내고 자신은 항상 아무도 없을 때 표를 받았다는 것이다.

또, 그는 수술의 여파로 날씨가 흐려지거나 온도 차이가 심해지면 다리가 아파 천천히 걷는데, 만약 이 때 누군가가 자신을 처다보는 것이 느껴지면 불같이 화를 냈다는 것이 여자친구와 함께 P를 알고 있었던 이들의 한결같은 말이었다.

장애를 입고 나서 자신을 기다려줬던 여자친구도 "나 장애인이야"라는 말로 떠나보냈다던 그는 비장애인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였지만, 자신보다 심한 내 장애 앞에서는 "고생하지 말고 나랑 사귀자"는 말을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P는 어떤 여성과 사귀더라도 결국에는 자신의 장애가 드러날 것이라는 두려움에 이성에게 쉽게 접근을 하지 못하다가 내 여자친구를 보고 마음이 움직였을 수도 있다.

그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용기를 낸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왜 그 '용기'가 자신보다 장애가 조금 더한 나와 사귀는 내 여자친구에게 발산되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스러운 일이다.

내 몸의 불편함이 자신과 비슷했다면 P는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일이 있은 후, 여자친구는 P와의 연락을 완전히 끊었다고 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분명히 깨달은 것은 장애인이 장애의 상태를 두고 다른 한 사람을 자신보다 아래로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P가 내 여자친구에게 고백을 했던 일은 이렇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가 만약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나는 P에게 말해주고 싶다.

"자신의 장애가 경증이라는 것을 내세워 다른 장애인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말라"고.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