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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함께한 색다른 ‘피서’

경동시장 나들이 나서 ‘삶의 기쁨’ 찾아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1-08-08 10:04:38
"여보, 풍에 안 걸리려면 청둥오리 알을 먹어둬야 한데요."
“진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넉살 좋게 보이는 노점상 할머니가 비닐봉지에 따끈한 청둥오리 알 세 개를 담아 냉큼 손에 쥐어준다.

“그럼요 손님, 두 내외분이 너무 금슬이 좋아 보여 특별히 이천 원만 받겠수다. 엣다, 여기요.”

아내는 옥빛이 영롱하게 빛나는 삶은 청둥오리 알을 살까말까 주춤주춤 하다가 결국 돈주머니를 풀었다.

나는 대우엔지니어링 본사가 있는 경기도 분당에서 회사 임직원 400 명을 대상으로 한 특강을 마친 뒤, 서울의 큰아들 집에 들렀다. 우리 내외는 손자 녀석의 재롱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가 아슬아슬하게 뒤집기를 시도하듯이 깔깔거리며 뒤집기를 하는 손자 녀석의 재롱에 빠져있다 보니 폭염으로 지친 심신의 피로감이 뒷동산으로 달아나고 얼굴에는 함박 웃음꽃이 활짝 피어 이마에 굵게 박힌 내천 자 글씨가 확 펴지는 듯 했다.

다음 날, 우리 내외와 큰아들 식구 등 3 대가 경동시장으로 색다른 피서를 즐기러 갔다. 지루한 장마 끝에 찾아온 삼복더위는 참 혹독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열풍에 숨이 턱턱 막히고, 이마며 등줄기에는 수없이 많은 일자를 그리며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옷이 다 축축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상인과 고객 사이에 보이지 않는 팽팽한 가격흥정 줄다리기가 펼쳐지는 등 사람 사는 냄새를 맡으며 우리는 그나마 더위를 잠깐 잊을 수 있었다.

“말만 잘하면 방금 하와이서 따 온 싱싱한 오렌지 5 개에 이천 원. 골라 골라, 날이면 날마다 안 와. 지금 못 사면 평생 후회할껴.”

우리는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건 팔기에 혈안인 상인과 시장을 보러온 많은 인파들 사이를 비집고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아줌마, 호랑이 콩 사이소. 맛있는 호랑이 콩이요.”
“여보, 호랑이 콩이라는 건 처음 들어보는데 어떻게 생겼어?”
“강낭콩처럼 생겼어요. 밥에 얹어 먹으면 참 맛있어요.”

나는 호기심에 가득 찬 기분으로 아내가 건네준 호랑이 콩을 만져보았다. 부들부들하게 생긴 호랑이 콩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었다.

“빵빵, 아저씨, 오토바이 지나가요. 비켜주세요.”

우리는 야채 짐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코끝에 비릿한 냄새가 전해왔다.

“보양식에 좋은 싱싱하고 팔팔한 자연산 미꾸라지를 방금 남원에서 잡아 왔수다. 사모님이 굉장히 좋아하는 변강쇠표 미꾸라지요.”

손자 녀석은 물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미꾸라지가 보이는지 깔깔거리며 유심히 쳐다본다.

“아따, 요놈 참 복스럽게 잘 생겼다. 장군감이네. 몇 개월 됐어요?”
“예, 이제 5 개월이에요.”
“아따, 9 개월은 넘어 보이는데, 잘 먹이나 봐요. 그 놈 참 건강하게 생겼네.”

예쁜 꽃무늬 양산을 받쳐 든 중년 아줌마가 신나게 흔들고 있는 손자 녀석의 손을 만지며 예뻐해 준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아기가 예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준 할머니를 젊은 엄마가 자기 아기를 함부로 만졌다고 마구 구타한 동영상이 방영되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 때 보도를 접한 나는 그릇된 젊은 새내기 엄마의 행태에 씁쓸한 기분이 되었었다.

나는 어릴 적에 동네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동네 어르신들이 따뜻한 손길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것 마냥 기분이 좋았었는데, 어찌하여 귀여운 아기들을 함부로 만질 수 없는 세태가 되었을까. 세상이 자꾸만 삭막해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자, 온몸이 쑤시는 신경통에 좋은 헛개 나무요, 술 때문에 버린 지방간에 좋은 두충도 있어요. 말만 잘 하면 그냥 드려. 심산유곡 묘향산에서 이슬 먹고 천년을 자란 진짜 산삼도 있어요. 어서 어서 장수식품들 골라보슈.”

하지만 아내는 상인이 외쳐대는 헛개 나무며 두충과는 거리가 먼 흔한 물건을 찾았다.

“아저씨 결명자 있어요?”
“예, 없는 게 없수다. 눈에 좋은 결명자 여기 있수다.”
“한 되에 얼마에요?”
“만 원입니다”
“한 되씩 두 개 주세요. 아따 한 주먹 더 주세요. 우리 먼데서 왔어요. 전주에서 왔어요, 아저씨.”
“참 멀리서 왔구먼. 옛다 인심 팍 썼수다.”

아내는 먼 다리품 팔았다는 동정심을 유발하여 결명자를 두 주먹이나 더 얻었다. 아내는 마치 천하를 얻은 양 기분이 좋아 싱글벙글이었다.

정찰제로 흥정을 할 수 없는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점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후덕한 인심에 사람 사는 맛을 느끼자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도 북극의 차가운 바람처럼 시원하게 느껴졌다.

아내는 결명자 두 주먹만큼의 불로소득에 심취되어 도토리를 찾는 다람쥐마냥 구입할 물건들을 척척 잘도 찾아낸다.

“혜림아, 결명자를 살짝 볶아서 녹차 타마시듯 마시면 눈에 좋단다.”

아내는 며느리에게 친딸처럼 자상하고 친절하게 결명자 끓이는 법을 일러 준다. 얼마 전 전역한 큰아들이 라식수술을 했다. 콘텍트 렌즈나 안경으로부터의 해방과 외모 때문에 수술을 한 것이다. 아내는 눈에 좋다는 결명자를 아들과 남편에게 먹이기 위해 삼복더위에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

아내와 며느리는 한통속이 되어 상륙작전을 전개하듯이 서로 맞장구치며 흥정을 하고 다녔다. 찰떡궁합이라는 말처럼 둘은 궁합이 척척 맞았다. 고부간의 갈등이라는 표현은 아내와 며느리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말이었다.

“어머니, 상추씨도 있는데 좀 살까요?”
“그래 베란다에 상추를 심어 놨다고 했지. 그건 뿌리 채 뽑아서 반찬 해 먹고 씨를 사서 다시 뿌리자꾸나.”

“아버님, 오늘 상추 뽑아서 상추 비빔밥 해 드릴게요.”
“고맙다 얘야. 허허허.”

나는 큰아들 집 베란다 텃밭에 2센티미터 크기로 자란 상추를 생각하자 벌써부터 식욕이 동했다. 며느리는 베란다 텃밭에 뿌릴 상추씨를 한 봉지 샀다. 벌써부터 풋 된장에 상추쌈 해먹을 생각을 하자 입가에 군침에 그득 고여 오기 시작했다.

“혜림아, 김자반 사 줄께. 참기름에 무쳐먹으면 참 좋아. 그리고 문어다리도 사자. 우리 진우가 잘 빨아 먹겠다.” 아내는 이유식을 준비하고 있는 손자 녀석의 주전부리감으로 살이 통통하고 윤기 있는 문어다리를 구입하는 선견지명을 보였다. 아내는 새내기 며느리에게 생활에서 터득하고 경험한 생활 속 지혜의 노하우를 유감없이 전수하고 있었다.

“혜림아, 진우 자니?”
“예, 아버님.”
“날씨도 무더운데 힘들겠다. 물건 봉지 좀 내게 주렴. 들고 가게.”
“괜찮아요, 아버님.”

“혜림아, 내가 진우 안을게.”
큰아들은 며느리가 앞 멜빵에 메고 있는 진우를 대신 안았다.

“우리 큰아들 잘 어울린다. 각시가 힘들면 대신 애기도 봐줘야 돼. 그게 각시 사랑인거야. 알았지. 하하하.”

아내는 진우를 아이엄마 대신 멜빵에 멘 큰아들을 대견스럽게 생각했다. 우리 세대에는 가부장적인 유교사상 때문에 남편이 감히 드러내놓고 아기를 업지 못했다. 그러나 요즘세태는 많이 달라졌다. 남편들이 스스럼없이 아기를 멜빵에 메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아저씨, 이면수 한 마리에 얼마에요?”
“오천원이요.”
“세 마리 만원에 줘요, 아저씨. 저 멀리 전주서 왔어요.”
“옛다, 우리 고향사람인데 드리지라.”

아내는 무더운 날씨에 지칠 줄도 모르고 물건 값을 후려치는 게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보였다. 아내는 뭐가 그리 좋은지 룰루랄라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다. 아내는 깍쟁이처럼 물건을 깎는 지혜를 사부가 제자에게 비법을 전수하듯 며느리에게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혜림아, 이게 살림살이의 지혜야. 마냥 달라고 주면 안 돼. 알았지?”
“예, 어머님, 근데 저는 못할 것 같아요.”
“자꾸 해보면 돼.”

아내는 태평양처럼 넓디넓은 시장 통을 제집 안방마냥 힘차게 활보하고 다녔다. 저 왕성한 힘이 어디서 나올까? 집에선 비실비실하던 아내였는데 말이다.

나는 뜨거운 뙤약볕 속에 무거운 봉지들을 양손에 들고 다니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아내는 마치 물 만난 물고기 같았다.

사실 나는 아내가 백화점으로 쇼핑가자고 하면 싫다고 자주 사절했었다. 아이쇼핑이든 참 쇼핑이든 좇아 다니기도 힘들고, 늘어나는 물건 봉지를 낑낑거리며 들고 다니기도 무척 힘들어서 쇼핑이라면 딱 질색이었다.

어디선가 고소한 술떡 냄새가 풍겨왔다.
“여보, 술떡 냄새 죽여준다.”
“하하하, 정말 사냥개 코네. 니 아버지는 냄새 하나는 잘 맡는다. 호호호.”

나는 술떡을 찾기 위해 큰아들의 안내를 받았다. 경동시장통을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는데, 뱃속에서는 ‘꼬르륵 꼬르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먹을 것을 달라고 세포들이 아우성치고 있는데 고소하고 구수한 떡 냄새를 맡았으니 그냥 지나칠 내가 아니다.
송경태는 떡 킬러가 아니던가. 나의 떡 먹성을 잘 아는 아내가 가던 발걸음을 돌려 떡 매대 앞에 섰다.

“아줌마, 이 콩떡 얼마에요?”
“3천원이요.”
“아줌마 인절미 맛 좀 봐도 되죠?”

아내는 주인아줌마의 승낙이 떨어지기도 전에 벌써 내입에 맛깔스러운 콩고물 인절미를 한 개 넣어준다. 떡판에서 갓 만든 인절미는 고소하고 따끈했다. 입에 찰싹찰싹 달라붙는 맛이 천하 일미였다.

“야, 맛있다. 너희도 먹어봐.”
“예, 아빠. 엄마가 줘서 먹고 있어요.”

콩고물이 고소하고 달콤한 인절미 맛. ‘철썩철썩’ 떡메를 치며 직접 만든 인절미 맛은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꿀맛이었다.

인심 좋고 후덕한 아줌마에게 ‘인절미 맛 좀 봐도 되죠?’ 하고 말하기가 무섭게 개구리가 날아가는 곤충을 날름 낚아채듯 잽싸게 입속에 넣고 우물우물 거렸다.

사실 뱃속의 세포들이 ‘꼬르륵 꼬르륵’ 하며 배고픈 합창을 할 때여서 그런지 인절미 맛은 더욱 고소했다. 아내가 주인아줌마 몰래 내입에 살짝 넣어준 불로소득이라 더 달콤했는지도 모른다.

아마 주인아줌마는 우리가 훔쳐 먹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넉넉한 인심으로 모르는 체 눈감아주는 것 같았다. 이런 게 바로 아름다운 미덕이자 넉넉한 우리네 전통 인심이 아니던가. 각박한 삶 속에서 우리의 전통 미풍양속이 하나 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게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백설기와 팥시루 떡을 한 봉지씩 샀다.

“아들아, 진우 모자 씌웠지? 햇살이 무척 따갑구나.”
“예, 아빠.”

나는 손자 녀석의 여리디 여린 살결이 성난 태양에 화상이라도 입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손자 녀석의 팔등과 손을 수시로 만져보았다.

그럴 때마다 손자 녀석은 손가락을 꼼지락 꼼지락거리며 반응을 보여 주었다. 마치 피부로 대화를 나누듯 속삭이고 있는 듯 했다. 이게 핏줄인가 싶었다.

“여보, 저녁에 삼겹살 구워먹게 상추며 깻잎 좀 사지 그래?”
나는 100 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3주 전, 신한은행에 입사한 막내아들이 오늘 휴가를 나온다고 하여 삼겹살을 구워주고 싶었다.

막내아들도 큰아들과 마찬가지로 지난달 말 전역했다. 최전방 비무장지대에서 힘든 군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 취업준비를 했다 한다.

그리고 취업시험에 합격하고 지난 6월말 전역한 후 쉴 틈도 없이 이틀 만에 9주간의 신입사원 연수교육에 들어간 것이다. 매주 주말이면 휴가를 나와 형 집에서 연수원에서 내준 과제물을 정리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낸다고 했다.

“오늘 우리 막내 오면 맛있는 거 해줘야지. 막내가 좋아하는 돈가스도 만들어 주고. 호호호.”
“도련님이 삼겹살을 무척 좋아하시더라구요. 맛있는 상추며 깻잎을 골라야겠어요.”
아내와 며느리는 막내아들이 휴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내가 뜬금없이 막내 결혼을 화제에 올렸다.
“여보, 막내는 결혼을 늦게 시켜야겠어요.”
“왜? 짝이 생기면 빨리 보내야지.”
“큰아들 봐요.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 생활때문에 못 데리고 있었고, 대학도 떨어져 지냈고, 군복무 중 결혼해서 언제 같이 생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게 너무 서운해서 큰아들 결혼시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래서 막내는 좀 데리고 있다가 결혼 시킬 거에요.”
“그게 어디 우리 뜻대로 되던가?”

나는 몇해 전 아들을 결혼시킨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들이 태어나면 부모와 1촌이죠. 그런데 대학을 가면 4촌이 된데요. 그러다 군대를 가면 8촌이 되고, 장가를 가면 사돈네 8촌이 된답니다’ 라고 했다.

농담 삼아 하시는 말씀에 웃었지만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다. 아들이 결혼을 하여 분가를 하니 딸이 없는 나에겐 어쩐지 무척 서운한 마음이 들었었다. 아마 아내도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둥지를 떠난다니 무척 서운한 모양이었다.

“아줌마, 풋고추 천원어치만 줘요.”
“천원 어치는 안 팔아요. 다른데 가봐요.”
야채장사 아줌마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우리를 톡 쏘아 붙였다.

아마 우리를 세상 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방인 취급한 모양이다. 아내는 심술이 났는지 투덜거리면서 한마디 내뱉었다.
“아따, 돈 많이 벌었는갑다. 혜림아 우리 다른 데로 가자.”

우리는 아내의 뜻에 따라 옆집 야채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마치 왕정시대의 왕의 지엄한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사들 같았다. 아내의 명령에 반항 한 번 못하고 말이다. 하지만 아내는 우리 가족의 밥줄을 쥐고 있는 위상 놓은 위치가 아니던가.

후덕하게 생긴 야채가게 아저씨를 아내와 며느리가 잘 어르고 얼러 최상의 상추며 부추와 각종 푸성귀들을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게 장만했다. 돈을 지불하면서 아내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아저씨, 돈벼락 맞아 떼부자 되세요. 호호호.”

마치 심 봉사를 골리는 뺑덕어미처럼 옆집 야채가게 아줌마가 들으란 듯이 깔깔거리면서 말이다.

시장을 한 바퀴 돌자 내 양어깨에도 어느덧 묵직함이 전해왔다. 비닐봉지를 든 양손가락이 쥐가 날 정도로 저려왔다.

그러나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 맛있게 먹을 귀중한 물건이라 생각하니 힘든 줄도 몰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짐들을 양손에 들고 가는데도 무더위를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는 또 몇 블럭을 지나 싱싱한 과일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선 곳에서 초록물감을 들인 것처럼 선명한 빛깔의 고창 수박이며 병아리처럼 샛노란 상주 참외며 먹음직스럽게 생긴 꽃자주빛의 왕자두 등을 깎을 대로 깎아서 샀다.

어느덧 우리들 양손에는 황제도 부럽지 않을 먹음직스러운 먹거리가 풍성하게 들려 있었다.
오늘따라 더욱 기승을 부리는 폭염 때문에 굵은 땀방울이 이마며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려도 우리는 더위와 지루함과 피곤함을 잊은 채 드넓은 시장통을 휘젓고 다녔다.

간혹 아내를 따라 냉방시설이 잘되고 쾌적한 초현대식 백화점에서 쇼핑을 볼 때는 좀 따분하고 귀찮기도 했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무더위 속에서 고생을 하는 데도 신이 나고 재미있었다.

물건 값을 깎아달라고 조르고 맛배기로 음식을 집어먹어도 누구하나 짜증내지 않는 정과 인심이 넘치는 전통시장에서 사랑스러운 손자와 아들내외 등 3대가 쇼핑을 즐기니 한여름의 삼복더위도 저만치 달아난 기분이었다.

“진우야, 할아버지랑 시장으로 피서 나오니 참 좋지?”

나는 손자 녀석의 코끝에 얼굴을 살짝 대어 보았다. 새근새근 갸날픈 숨소리와 함께 더운 숨 바람이 내 얼굴을 자꾸만 간지럽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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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송경태 (skt2211@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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