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새통 속에서 엘리베이터는 더 이상 이동약자를 위한 편의시설이 아니다. ⓒ장애여성네트워크

다툼을 부르는 공간

"이번에 내려요~"

고개를 돌려 뒤에 서 있던 남자에게 말하고 전동스쿠터 후진손잡이를 잡았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남자가 먼저 나간 뒤 후진을 하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어~어 뭐하는 거야?" 하는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스쿠터를 멈추고 다시 뒤를 돌아보니 왼쪽에 서 있던 아저씨의 작은 가방이 스쿠터 바퀴에 걸려 엘리베이터 문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는 인상을 쓰면서 "말도 없이 운전을 하면 어떡하나?"고 한다.

 

"뒤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으니까 길을 비켜줬죠. 무대포로 운전한건 아니잖아요."했더니, "그 사람한테 말했지 나한테 했어?"라며 아까보다 말투가 더 퉁명스러워진다. 한 성질 하는 나또한 "왜 반말이에요? 그리고 작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말하면 다 들리는데, 그럼 소리치고 마이크대고 해요?"라고 반박했다.

 

"난 못 들었어."라는 말에 굴하지 않고 빈정대면서 "귀지 파요."라고 말했다. "뭐라고? 뭐 이런게 다 있어?", "이런게 싫으면 걸어가거나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엘리베이터는 왜 타?", "……."

아예 엘리베이터 문열림 버튼을 누른 채 험상궂은 표정으로 싸우자는 기세다. 그는 멈출 기세가 아니었고 나역시 계속해서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승객들의 항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버튼에서 손을 떼고, 계속해서 투덜대며 말을 던지고 있지만 엘리베이터 문에 의해 차단되고 말았다.

양보란 없다

9호선 김포공항역 엘리베이터에서 일어난 일이다. 다른 9호선역은 잘 모르겠지만 이 곳은 늘 전쟁터다. 4대의 엘리베이터 앞은 항상 긴~줄이고, 양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커다란 여행용 트렁크를 든 사람들은 이해하겠는데, 젊은 사람들을 비롯해 작은 손가방 하나 들고도 긴 줄을 서서 서로 타려고 하니 북새통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북새통 속에서 엘리베이터는 더 이상 이동약자를 위한 편의시설이 아니다. 스쿠터가 옆에 있다해도 오히려 먼저 탈까봐 조금의 틈을 내주지 않음은 물론이요. 혹여 나와 눈이 마주칠까 딴청을 피운다.

일주일에 한두 번 이용하는 9호선. 기존 지하철에 비해 편의시설이 잘 되어있고 편하다는 이점이 있다. 이동의 편리함과 더불어 급행이라 기뻤는데……. 김포공항역에만 도착하면 때아닌 전쟁터에 기쁨은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어떤 때는 두 번이나 엘리베이터를 못 탄 적이 있다. 그러다보면 다음 열차가 도착해 그야말로 장사진이다.

누구를 위한 편의시설인가?

작은 가방을 든 정도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도 충분한데 왜 긴 줄을 감수하면서까지 엘리베이터만을 고집하는지 도통 이해가 안간다.

급한 약속이 잡혔을 때는 스쿠터를 지하철에 버려 버리고 싶은 심정일 때도 있다. 이번처럼 말다툼까지 하게 된 경우는 처음이지만, 탈 때마다 인상이 써지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이 울컥울컥 일어난다.

작은 양보와 더불어 계단, 에스컬레이터 이용을 바랄뿐이다. 이것 또한 나만의 욕심이요, 이기심일 수도 있지만 엘리베이터 외에는 선택권이 없는 장애인들의 입장을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주 치루는 엘리베이터 전쟁! 언제쯤이나 멈출 수 있을지 의문이다.

*칼럼니스트 이호숙님은 '장애여성 INU기자학교' 수강생으로서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내면의 치유와 사회변화를 실천하고 있는 장애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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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은 장애남성과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장애여성 안에도 다양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한다. "같은 생각, 다른 목소리"에서는 장애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조금씩 다른 목소리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장애여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이제까지 익숙해 있던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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