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로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법정 기념일이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장애인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사기 진작을 위해 다채로운 행사를 열고 있다.

반면, 진보적 장애인 인권 단체를 주축으로 한 장애인 단체들은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이 아닌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정하고, 사회 속에 만연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려는 다양한 행사들을 열고 있다.

정부가 진행하는 다양한 행사에서는 여전히 4월 20일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기보다는 동정이나 시혜 수준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적지 않다.

더욱이 정부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많은 정부 주관 행사나 정부 지원 행사들이 장애인에게 음식을 제공하며 연예인들을 무대에 세워서 노래와 춤을 보여주거나, 야외 나들이 행사를 열어 비장애인에게 ‘우리 지자체는 장애인들을 위해 이런 복지 사업을 한다’는 선심성 행사를 4월 20일 단 하루 동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 교육법',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과 각 지자체의 '장애인자립생활관한 조례' 등 과거와 달라진 모습은 있다.

하지만 이는 사회의 기본적 장애 인식에 대한 변화 없이 최소한의 정책과 최소한의 예산만 편성하는 것일 뿐, 실질적 장애인의 인권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장애인들이 장애인의 날이라는 4월 20일을 '동정과 시혜의 날'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어릴 시절, 나는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여 진행된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 행사는 사회지도층의 연설로 시작하여, 유명한 연기자와 가수가 나오는 화려한 무대로 꾸며졌다.

뿐만 아니라 수십 명의 장애인들이 함께 청와대로 초청돼 대통령과 영부인이 마련한 음식을 먹고, 기념품 받고, 기념 촬영을 했던 기억도 있다.

당시 나는 365일 집안에서만 지내던 터라 주는 대로 받고 즐기면서 기분 좋은 날이라 생각했고, 심지어 매년 4월 20일이 기다려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부끄러운 기억이기도 하지만 그때의 현실이었기에 지금은 하나의 추억이다.

나와 비슷하지만 다른 기억이 있는 장애인도 있다. 몇 십 년 동안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생활하다가 최근 자립 생활하고 있는 어느 중증장애인은 4월 20일을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난 장애인의 날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사람들이 반갑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의 행동과 표정은 해마다 똑 같다. 장애인의 날 기간이 되면 카메라(방송국)를 들고 와서 손 잡고 힘내라고 말해주고, 놀아주고, 먹을 것을 주고, 후원금을 주고, 사진을 찍고 간다. 나는 그게 싫다. 내가 원하는 삶은 그저 자유롭게 외출해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그런 삶인데 그 사람들은 나를 불쌍한 눈길로만 바라볼 뿐, 나의 바램에 답 없이 안고는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방안에서 울었다. 정말이지 지옥 같았다. 차라리 장애인의 날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멍했었다.

진정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에게 어떤 의미이고 누구를 위하는 날인가?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는 장애인을 우리 사회는 아직도 동정과 시혜로 대하고 있지 않은가.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러면,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4월 20일, 사회 유명 지도층과 유명 연예인들이 장애인생활시설을 방문하여 밝은 미소로 장애인과 함께 어울리며 따뜻한 하루를 보내는 장면이 언론 매체에 또 다시 실릴 것이다.

또 다시 맞은 4월 20일, 장애인을 날에 즈음해 언론매체에 이야기하고 싶다.

시대 흐름에 따라 정책이 바뀌듯 장애 인식도 바뀌어야 하고, 사회적 편견과 차별, 억압 등 장애 문제를 현실적으로 드러내며, 소외된 장애인의 삶과 인권을 조명해 주어야한다고.

또한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달라고.

최근 지역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중심으로 장애인식개선이나 장애 체험, 장애관련 퍼포먼스 등 장애인이 주체가 된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오히려 이런 행사들이야말로 언론매체의 포커스를 받아야 할 것이며, 에 사회지도층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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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육재활학교 졸업 후 몇 년간 직업학교를 다녔다. 그러다가 지인의 소개로 한국뇌병변장애인권협회 자원 활동가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장애인권 문제와 관심을 가지게 됐다.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에서 상근활동가하면서 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만나면서 소통과 고민들이 나누다보니 미디어 속 장애인의 삶을 고민을 해왔다. 지금은 개인사정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청주로 자립해 지역사회에서 장애의 문제와 장애여성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당당하게 살고자 하는 장애인권 활동가로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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