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아, 이번 주는 바자회 때문에 일요일날 못 보는 거 알지? 대신 다음 주에 만나면 더 이뻐해줄게. 토라져 있지 말고 다음 주에 보자 알았지!"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주말에 그녀를 만나면 무엇을 할까?'를 생각하고 있던 차에 여자 친구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교회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바자회를 준비하고 있어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많은지 이번 주에는 데이트를 못하게 되었단다.

그녀는 나를 사귀기 전부터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체육 시간에 뜀틀 운동을 하다 몸을 다쳐 한 달 가량 병원 신세를 지고 난 이후부터였다고 했다.

한 달 동안 병원에 있는 것도 지겨운 일인데, 몸이 불편한 채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은 자기보다 훨씬 더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도 그들의 몸 상태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소아마비 장애인인 나를 그녀가 남자 친구로 받아주었으리라. 물론 장애를 빼고 얼굴만을 봤을 때는 영 아니었다고 밝힌 것에 충격을 받긴 했지만 말이다.

나를 만난 이후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다는 그녀가 '나를 만나기 싫어서 데이트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니 이번엔 이해를 해 달라'며 애교 섞인문자를 함께 보내왔다.

그녀의 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더욱이 미안하다는 애교 문자까지 보내오지 않았는가. 좋은 일 하는 그녀를 위해 화이팅을 외쳐주어야 할 마당에 내 욕심을 차린다는 건 얼마나 이기적인가.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다른 감정이 밀려오고 있었다. 드러난 상황은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고 생각을 하는데도 왠지 나도 모르게 기운이 빠지고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와의 데이트를 잔뜩 기대하고 있었던 탓일까.

그녀와의 데이트가 이미 물건너 간 마당에 나는 이 기회를 빌어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우울증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기로 했다.

사실 교회나 사찰, 성당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바자회나 집회 등의 행사를 여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실제 이런 행사로 떠들썩한 분위기만큼은 아니지만 일부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다. 그나마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장애로 인해 겪는 우울증을 해소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교회나 성당, 사찰 등이 이런 역할을 해주면 좋으련만, 그 어느 한 곳도 이 부분을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몇 년 전에 상영한 발달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큰 성공을 거둔 영화 '말아톤' 을 보면, 장애의 유형을 떠나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 가족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가를 알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의 냉대는 말할 필요도 없으며, 아들의 재활을 위해 몸부림치는 어머니 앞에서 다른 형제는 부모의 관심 부족으로 정서적으로 비뚤어지기 시작한다.

장애 자식의 미래를 향한 부모의 걱정, 장애인 자녀에게 많은 신경을 쓰는 탓에 일상적인 대화조차 힘들어진 다른 자녀들, 무엇보다 그 모든 부분을 다 감싸주면서 자기 자신은 챙기지 못하는 이들. 이 것이 이 땅에서 장애 자녀를 가진 부모들의 현실이다.

'내가 죽으면 몸이 성치 않은 저 자식은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걱정은 많은 부모들에게 우울증을 갖게 하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서 나는 지금껏 이렇게 살아온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과 장애인 가족들에 대해 우리의 교회와 성당과 사찰들은 과연 어떤 위로를 해 주었는지 묻고 싶다.

각종 전도 집회를 하는 교회에서는 물론, 부활절과 성탄절 등의 행사마다 미사가 열리는 성당도 그렇고, 석가탄실일을 포함해 법회가 열리는 사찰에서도 과연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아픔에 얼마나 귀 기울였는가.

수많은 신도들의 아픔을 함께 하며 어루만져주는 이들 종교시설들이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고통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은 솔직히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결국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고통은 그 어디에서도 풀 길이 없다는 얘기다. 그저 개인적으로 풀어야 할 뿐. 장애인 가족들은 여전히 "전생에 내 죄가 많아서"만 되뇌여야 한다는 것인가.

교회에서 전도 집회 대신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그동안 누구에게도 풀어놓지 못했던 마음 속 슬픔을 털어 놓을 수 있는 기도회가 열리고, 성당과 사찰에서도 그런 미사와 법회가 열렸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램을 가져본다.

나아가 '장애인 돕기 바자회'와 함께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마음 풀어주기 행사가 열리는 날은 과연 언제쯤일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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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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