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에이블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던 'KTX 리프트' 얘기를 직접 겪어보니 코레일의 행태가 하도 어이가 없어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3월 24일 TV 방송의 다큐멘터리 제의로 촬영 PD와 함께 대전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솔직히 여행 칼럼을 기고하는 나로서도 철도를 이용해 본 경험은 2년 전 딱 한 번외에는 없다.

우리 나라에서 장애인이 철도 여행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많은 난관에 부딪힐 각오를 해야 했기에 주저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힘들었지만 딱 한 번이라도 기차를 타보았던 경험은 그래도 내게 용기를 주었다. 승용차보다는 철도 이용 방법 소개도 할 겸 대전 여행은 'KTX'를 이용하기로 했다.

서울역에 도착해 우여곡절을 격은 끝에 어렵게 주차를 했다. 3층 매표소에서 동반자 포함 장애인 할인을 받아 발권을 하니 '목발을 사용하는 사람은 먼 거리 이동이 불편하고 열차 계단을 오르기가 불가능하니 휠체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 때 나는 "아! 우리 나라 철도 서비스도 많이 좋아졌구나!"싶어 안도의 안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부터였다.

휠체어 서비스를 신청해 공익요원의 도움을 받아 열차로 가는 도중 내가 타는 열차에는 휠체어가 올라갈 수 없으니 내 자력으로 열차를 타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아는한 'KTX' 등 모든 열차는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 할인제도도 있을텐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황 설명인즉, 휠체어 리프트를 사용 할 수 있는 열차는 특실뿐이라 일반 객실은 자력으로 승차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발권 받은 승차권은 일반 객실 좌석권이었다.

'ktx'의 좁은 계단을 자력으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필자는 공익요원에게 부탁해 매표소로 되돌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승차 할 수 있는 방법을 정중히 요청했다.

그런데 담당자는 귀찮다는 듯 동반자 포함해서 두 배 가까운 추가 요금을 내고 특실을 사용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

사실, TV촬영까지 하고 있는 마당에 서로 불쾌하지 않도록 얼마간의 추가 요금을 더 내고 일을 간단히 처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여행 칼럼을 쓰는 나마저 그렇게 대충 넘어간다면 다른 많은 장애인들이 여행할 때는 더 많은 불편을 겪을 게 뻔했다. 더욱이 나는 20여 년 동안 장애인복지를 한다고 나서지 않았는가. 어쩌면 그 순간 나는 많은 장애인들의 대표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내가 꼭 특실을 이용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고 휠체어로 리프트를 이용해야만 하는 장애인인데 왜 선택을 여지없이 추가 요금을 물고 특실만 이용해야 하느냐?"며 어이없는 상황에 대해 다시 설명을 했다.

그 때, 옆자리의 선임인 듯한 직원이 어떤 근거인지 설명도 하지 않은채 '600 원만 더 내라'며 마치 불쌍한 사람들이니 봐준다는 듯 퉁명스럽게 표를 던져주는 것이다.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만큼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으며, 나이도 들만큼 들었는데……. 심지어 방송용 카메라가 취재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어쩌면 그렇게 할 수가 있는지. 갖은 경험을 한 나도 이런 마음이 드는데, 세상 경험 부족하고 순박한 장애인들이면 이런 경우에 어쩌겠나를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코레일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이고, 장애인도 고객인데 그 태도가 너무 불쾌하다."고 한 마디 하고는 일정에 쫓겨 열차로 향했지만 마음은 못내 편치 않았다.

죄 없이 고생하는 공익요원의 안내로 열차 앞에 도착하니 말로만 듣던 육중한 리프트가 특실 바로 앞에 있었다. 그런데 그 무게가 상상을 초월하여 도저히 한 사람의 힘으로는 몇m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공익요원 두 명이 끙끙대며 겨우 특실 입구에 갖다 대고 작동을 했다. 그런데 열차에 연결되는 브리지가 열차 입구 넓이와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아 조금만 비뚤어지게 방향을 잡으면 이리 쿵 저리 쿵, 말 그대로 좌충우돌이 일어나 출입구 이 곳 저 곳을 긁어대었다.

몇 번 만에 겨우 자리를 잡아 휠체어가 옮겨 탈 수 있었다. 지켜보던 승무원에게 '열차가 상해서 어떻게 하느냐'고 하자 '항상 그러는데 괜찮다'고 했다.

드디어 목적지인 대전역에 도착하지 다시 내릴 일이 걱정이었다. 리프트를 작동하는데 출발 때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니 짧은 정차 시간을 어길 수밖에 없었다. 겨우 내려 플랫폼에 나를 대기시켜 놓고 또 다시 쩔쩔매며 리프트를 원위치 시키고 있었다.

플랫폼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서 있는데 출발하는 열차 승객들이 나를 보며 '저 사람 때문에 출발이 지연되었다'고 손가락질하는 듯한 자격지심을 느꼈다.

신형 리프트가 나오기 전에 내가 이용해 보았던 'KTX'의 수동 리프트는 비교적 사용이 간편해서 일반실 특실을 가리지 않고 이용 할 수 있었고 조작도 손쉬웠다. 그런데 왜 좀 더 쉬운 쪽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상부의 지시로 신형만 사용해야 해 담당자들도 더 힘들다고 했다.

서울로 올 때도 갈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는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게다가 한술 더 떠 방송용 카메라를 소지한 방송국 PD 에게 카메라를 가지고 있으니 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고 은근히 으름장을 놓기까지 하며, 동반자는 일반실을 따로 이용하라고 승차권을 따로 끊어 주었다.

만약 개호가 필요한 장애인이었다면 어떤 상황이었을까 걱정스럽고 한심했다.

플랫폼에 도착해 잠깐 정차하는 열차에 빨리 탑승해서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PD와 함께 기다리고 있는데 사복 차림의 가방을 든 남자가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는 급기야 우리에게 다가와 카메라를 든 PD에게 '무엇을 찍느냐, 왜 찍느냐'며 수사관처럼 캐어 물었다. PD가 나를 가리키며 다큐멘터리를 촬영 중이라고 설명을 하니 금방 사라졌다.

동행한 PD는 너무나 어이없는 상황에 분개하며, 교양 프로그램이라 조심스럽지만 시사 프로그램에서 다뤄야 할 현실이라며 기막혀 했다. PD는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의 현실을 새삼 체험하는 기회가 됐다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듯 했다.

갈 때와 올 때, 조금도 다르지 않는 2번의 발권 실랑이와 4번의 리프트 사용 문제점을 나름대로 정리해 추측해보았다.

코레일이 신형 고속열차 '산천'을 도입하면서 신형 리프트를 채용해서 문제가 발생하자 문제를 무마하려고 그나마 사용이 간단하던 구형 리프트를 전면 사용 중지하고 신형리프트를 채용하면서 정작 장애인들에게는 더 큰 불편을 주게 되지 않았나 싶다.

단 몇 m도 움직이기 힘든 신형 리프트를 가급적 특실이 정차하는 지점에 한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나머지 일반 객실은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근시안적 처방을 한 것이리라.

나 같은 목발을 사용하며 좁은 승강 계단을 오를 수 없는 장애인은 미처 생각을 못하고 꼭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에게만 특실을 사용하도록 하는 서툰 규정을 만들어 놓고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대안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일이리라.

2년만에 큰 용기를 내어 시도해 본 나의 기차여행은 그렇게 뭔가가 갈기 갈기 찢겨나간 듯한 상처를 남긴채 끝이 났다.

장애인 당사자에게는 금전적인 피해 이전에 모멸감마저 줄 수 있는, 용납되기 힘든 공적 장애인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심각성을 깊이 인식한 여행이었다.

코레일이 지금이라도 잘못된 실수는 과감하게 인정하고 해결 방안을 시급히 모색해서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를 소중한 고객으로 모실 수 있는 안전하고 친절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철마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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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구 칼럼리스트
장애인들은 편의시설 미설치 등 사회의 각종 제약으로 인해 여행을 생각하기 힘든 현실이다. 더욱이 해외여행은 ‘그림의 떡’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만약 해외로 나서려고 해도 정보 부재에 시달리기 일쑤다. 장애인들에게 해외여행과 관련된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현재 장애인전문여행사 (주)곰두리여행클럽을 운영하고 있으며, 각종 장애인 관련 단체 활동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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