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처럼 많이 흔들리지 않으니까. 지하철에서는 자리 양보 한번 해보는 게 어때?"

“자리 양보도 좋지만, 나는 내 다리 상태가 더 중요해. 언제 통증이 생길지 모르니까.”

주말,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 안. 어르신들에게 자리 양보를 하는 것을 두고 그녀와 나는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지하철에서는 서서 가더라도 크게 힘이 들지 않으니 어르신들이나 임산부에게 자리 양보를 하는 것이 어떠냐”는 여자친구의 의견에 맞서, “다리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어 통증이 생기면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되니 편안히 앉아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 생각이 대립각을 세운 것이다.

체력이 떨어지거나 날씨가 갑작스럽게 추워진 경우, 혹은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 다리에 힘을 많이 주고 다닐 경우에는 다리에 쥐가 나는 것과 동일하게 다리가 뭉치는 증상이 있다. 이때는 무엇인가를 잡고 잠시 쉬면 다시 원래의 상태대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심한 경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움직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게 될 때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순간은 나의 장애로 인해 가족들도 장애가 있느냐는 사람들의 질문과 도와주는 순간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반말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때였다.

그럴 때마다 자존심이 무척 상했지만, 내 몸이 좋지 않아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 입장에서 “당신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겠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일을 몇 번 반복해서 겪다 보니,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기적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젊은 사람이 자리 양보도 안 한다”는 말이 듣기 싫어서 노약자석이 아닌 일반석에 앉는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거리에서 사람들과 마주치다 보면 그들이 장애인의 처지나 혜택 등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가장 많이 질문을 받는 것이 “정부에서 한 달에 몇 만원씩 들어오느냐”라는 것이다. 조금만 장애인 복지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비장애인들이 말하는 “정부에서 받는 돈”이 장애인 중 극히 일부에게만 지급되는 장애인연금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내용만을 골라 그렇게 믿어버린 것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질문을 받는 원인이다.

여자친구와 내가 지하철에서 다툼을 벌인 것 역시, 장애 상태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고집스럽게 내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차분히 설명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만약 자리 양보로 인해 아무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다행이지만, 그로 인해 내 다리 상태가 악화된다면, 더 많은 부분에서 그녀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고, 나중에는 집에 가는 버스에 오르는 것도 그녀가 보살펴줘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느 커플이나 ,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챙기고 도와줘야 하는 것이 많아진다면, 고비가 왔을 때 더욱 지치게 마련이다. 이런 부분들을 미리 차단하고 싶어 그녀에게 나를 이해해 줄 것을 요청했고, 그녀가 내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지하철 안에서의 다툼은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내 몸의 상태가 좋지 않아, 그녀와 내가 동시에 사람들의 “쯧쯧” 혀 차는 소리를 듣는 일은 피하고 싶었기에 자리 양보를 하지 않는 이유를 털어놓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그러나 생각대로 잘 풀리기만 한다면 연예는 너무 재미가 없다. 또 다른 오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오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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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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