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백지영은 자신의 노래를 통해,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은 심정을 “총 맞은 것처럼 정신이 너무 없어”라고 표현했다.

이별에 이르는 과정까지 누구의 잘못이 더 많았느냐를 떠나 이별을 통보한 사람이 떠나고 나면, 사랑을 잃은 사람만 홀로 남는다.

연인과 헤어지는 이들의 심정은 누구나 애통하겠지만, 특히 장애를 가진 이들의 마음은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에 건강한 사람의 그것보다 더 큰 상처를 입는다.

몸이 불편하기에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올 줄 알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나면 “내 장애 때문에 헤어지는구나”라는 생각과, “나를 대신해 만나게 될 사람은 비장애인이겠지”라는 생각이 상·하행선을 오가는 열차처럼 교차한다.

그녀와 사귀고 나서 가장 많이 걱정이 되었던 일은 “몸이 건강하고 멋있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헤어지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것이었다.

20대 초반, 한참 예쁠 나이. 외모도 그렇지만,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다른 배려심이 많은 아이였기에 여자 친구의 곁에는 항상 여러 명의 오빠와 언니, 동생과 친구들이 있었다.

오래 걷게 되면 발에 무리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우리 커플이 가는 곳은 대부분 정해져 있었고, 거리에서 그녀의 지인들을 만나는 경우가 늘어갔다. 나를 잠깐 도와주는 줄 알고 “이분은 어디까지 데려다 드리면 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내 남자친구”라고 얘기하는 여자 친구가 고마웠다. 하지만 그때마다 들려오는 “오 그래? 너 정말 대단하다”라는 말이 내 장애를 더 드러나게 만드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여기에 그녀가 간혹 “내 친구들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어떠냐고 말하는 때가 있다”라고 털어놓았을 때는, 곧 이별의 순간이 올 것 같은 불안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 아이와 헤어지게 되면, 나는 다시 건강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장애와 비장애를 떠나, 나는 여자친구 자체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더 고마웠던 아이였다. 그랬기에 나는 장애인이 아니라고 내 자신을 포장했을지도 모른다.

불안감이 커지자 어느새 이별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집착”으로 변해갔다. 그녀가 퇴근 시간이 되면 곧바로 집에 가는지, 회사에 회식이 있으면 언제쯤 끝나는지, 휴일에 나를 만나지 않는 날이면 누구를 보는지….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궁금했다. 정확하게 알아야 불안한 마음이 가셨다.

앞선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그녀는 직장인 나는 학생이었다. 생활 패턴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었다. 언제나 시간이 남는 쪽은 나였고, 내 전화에 조용히 “나중에 전화할께”라고 얘기하는 것은 여자친구였다.

좋은 말도 두세번 이상 들으면 짜증스러운 법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받아주던 여자친구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장애를 떠나 남자친구로써 좋아하는데 왜 그렇게 불안해하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누군가는 사랑에 대해 ‘사랑은 내 경험과 장점을 다른 사람에게 어필하는 것이고, 그것을 타인이 받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수시로 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에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 것”이 연인들의 흐름이다.

그러나 나는 그 흐름을 알지 못했다.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고, 그렇기에 그녀와 함께 좋은 쪽으로 결말을 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나와 헤어지면서 “장애 때문에 헤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말과 함께 “집착 때문에 떠난다”는 말을 남겼다. 내가 집착을 하지 않고 평범하게 사귀었다 해도 언젠가는 이별을 겪었을지도 모를 만큼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적어도 “집착 때문에 떠난다”는 말은 듣지 않았을 것이다.

이별을 통보받은 나도 “총 맞은 것처럼” 정신이 너무 없었지만, 그녀 역시 집착에 지쳤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기에 더욱 아쉬웠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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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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