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큰 명절은 꼬박꼬박 두 번씩 돌아온다. 세월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뭘 잊거나 빼먹는 건망증도 없는 정확한 놈이다.그래서 무섭다.

설이니 뭐니 명절 분위기를 탈 때 쯤이면 가슴 저 밑바닥부터 갑갑함이 밀려 온다. 벌써 이십년 가까이 휠체어를 타면서도 명절처럼 일가친척이 함께하는 자리는 늘 불편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다.

몸 불편한 나한테 뭘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만히 앉았다가 차려준 밥상에 달랑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데 왜그리 앉은 자리는 가시방석 같고 마음은 만톤짜리 돌을 얹은 듯 무겁기만 한건지...

이때쯤, 보통의 여자들은 특히나 결혼해서 남의집 며느리된 입장의 여자들은 음식 장만과 식구들 뒤 치닥거리 때문에 때아닌 속 앓이를 한다는데 똑 같은 여자임에도 장애가 있는 우리의 입장은 그와는 또 다른게 있다.

명절 가까이 두고 장애가 있는 이웃이나 동료들을 만나면 해마다 똑같은걸 묻곤 한다.

“이번에 식구들 모이는데 가~안가?”

의견이 분분하지만 안가거나 못가는 이유는 해마다 다를게 없다.

제일 먼저 걸리는게 이동의 문제다. 차가있는 집이라면 그래도 좀 낫지만 그나마 자기 차도 없는 집에서는 갈길이 막막해진다.

버스나 기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니 휠체어에 목발에 변기에 이것저것 자신 말고도 챙겨야 할게 한 두 가지가 아닌데다 애들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이 되면 골이 아프기 전에 마음에서 포기되고 그에 몸이 따라간다.

그 다음 문제가 무엇이냐면 온갖 우여곡절 끝에 가족의 품에 안겼다. 그 순간부터 나의 쓸모는 평소에 발휘하던 백분의 일로 줄어든다.

다들 이리저리 각자의 할 일을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저 혼자 독도 섬처럼 덜렁 떨어져 앉아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시선들에 맘을 졸인다.

“힘든데 그냥 앉아서 편히 쉬라”는 말도 분명 거짓은 아닐 진데 그때만은 날 위한 배려로 와 닿기보단 괜히 걸리적 거리는 방해꾼이 된 듯 서운함으로 다가온다.

밖에서 어른이 들어와도 뉘처럼 쉽사리 일어나 맞을 수도 없고, 먹고 난 자리 툴툴 털고 일어 설 때 마다 머리 위의 시선들에 일일이 눈 맞춰 인사 치루는 것도 영 어색하고 버겁다.

설상가상으로, 평소에는 나름 나의 불편함을 채워주던 배우자도 주변의 눈치를 살피느라 내 편에서 멀어져 있다.

이밖에도 명절 내 치러야할 불편함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럼에도 비장애인의 명절과 다를바 없는 한가지는 여기에도 있다. 여성이 아닌 남성이 장애가 있을 경우 그 또한 일반적으로 보이는 남성들의 행태와 많이 다를게 없다.

앉아서 밥상 받고, 앉은자리 털기가 무섭게 또 다른 꺼리를 요구하고. 그게 당연한 듯 분위기는 맞춰지고...

뭐 물론 다 그렇다는건 아니다.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이고 상대의 힘듦을 먼저 보고 힘을 보태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때는 몰라도 그때만은 그 예외적 상황에 나도 끼고 싶을 뿐이다.

며칠 후면 기다린건 아니지만 “설”이다. 시댁이 없는 나는 친정엘 내려 간다. 지난 2년은 이런저런 구실로 명절에 찾지 않았다. 어머니와 형제들에게서 서운함이 묻어나는 책망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한해 한해가 지날수록 더욱 깊어지는 육신과 마음의 무게로 나는 또 문 밖을 서성이고 있다.

바라 건데 내년에는 가볍게 그 문에 들어서는 나를 기대 해 본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내 주변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희와 철수”의 이야기처럼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시각과 조금 더 깊은 관심으로 들여다보면 어느 누구 하나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 신체나 정신적으로 흔히 말하는 정상적 범주에 속해있지 못한 이들의 삶은 마치 또 다른 생명체인양 세상의 잣대에서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별(의) 별 이야기는 그 다름을 이야기하려 한다. 무엇이 다른 삶을 살게 하였는지, 왜 다르게 구분되어지는지 당사자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통해 다름과 소통의 이야기를 펼쳐가려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