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정말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만큼 아픈 현실들이 장애물이 되어 우릴 힘들게 하지만 그렇다고 눈을 감으면 아름다운 세상은 더 이상 볼 수 가 없다. 내가 눈을 뜨고 밖으로 나가야만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다. ⓒ한옥선

“우와~어머 어머~”

“진짜 예쁘다 그치?”

“응 난 진짜로 보는 것은 난생 처음이야!”

“그래? 나둔데”

“세상에나 저것 좀 봐.이야~”

아 정말 이야기며 하는 행동이며 누가 보면 딱 시골 사람들 생전 처음 서울 구경와서 높은 빌딩보고 신기해서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은 파리가 들락거려도 모를 만큼 벌리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넋 놓고 구경하는 딱 그 광경이 내게 펼쳐지고 있다.

며칠 전 sbs 방송의 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게 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얼마 전에도 방송 후 수술한 다음 병문안을 간적이 있었는데 또 가겠다고 하고 약속을 잡았다가 그만 갑작스레 김장 봉사 가는 바람에 약속을 못 지켜 안 그래도 연락을 하고 찾아 가야겠다 했는데 다행이 먼저 연락이 왔다.

어린 딸들에게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도 사주고 싶고 병원 생활만 하고 있다 보니 마음도 답답하고 나가고 싶은데 아직 그럴 용기가 안 난다고 도움을 청한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흔쾌히 답을 하고 약속 날짜를 잡고 찾아갔다.

말은 안 해도 외출이란 단어는 설레기도 하지만 불안함과 두려움이 아직은 더 클 것이다. 친구가 화상 입고 처음으로 사람이 많은 쇼핑센터를 가는 것이다. 이전에 그 평범한 모습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그 수많은 사람들의 스쳐가며 머무는 시선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들 그게 어떨 것인지 우리가 자라면서 그런 일 속에서 어떨지는 짐작을 하기에 두렵고 무서울 것이다.

나 역시도 처음 외출 할 때 내색은 못했어도 얼마나 두려웠는지 전날 잠이 다 안왔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지나친 걱정이 었다는 것을 지난 후에 알았다. 물론 숨어버리고 싶을 만큼 끔찍한 소리도 눈길도 있었지만 그것은 내가 걱정 한 것보다 오래 시선이 머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있게 친구에게도 내경험을 말해주며 용기 내라고 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나와 다니니 그 시선 혼자 한 몸에 다 받는 게 아니라 나와 나눠 받으니 염려 말라고 하고 쇼핑센터로 향했다.

도착한 서울에 한 쇼핑센터 정말 주차장부터가 우리 동네랑은 달랐다. 들어서면서부터

“우와~대따 크다. 이거 나중에 차를 어디다 세웠는지도 모르겠네.”

하하 정말 집에 올 때 차를 분명 기둥번호를 보고 내렸는데도 못 찾고 헤매고야 말았다. 나만 아니 그 친구도 그리고 같이 동행했던 피디도 몽땅 같이 차를 찾아 헤맸다~호호

들어선 쇼핑센터 주차장이 그렇게 크니 실내는 얼마나 대단할까 역시나 였다. 1층으로 올라간 우린 진짜 눈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너무 예쁘고 멋있고 대형 크리스 마스 트리가 얼마나 멋있던지 사람들이 보던 말던 친구랑 난 신나서 애들처럼 밖으로 나갔다. 거대한 트리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예쁜 아치문 장식에서도 사진을 찍고 우리 모습을 보던 피디가 한마디 한다.

“아니 그러고 보니 한 선생님이 더 좋아하시네요!”

“그런가요? 하하 저도 이렇게 커다란 트리 실제로 보는 거 처음이거든요”

“야~친구 잘 둔 덕에 이런 것도 보고 좋지?”

“푸하하 그려~친구 덕분에 시골 아줌마 서울 구경 제대로 하네”

이렇게 어린 애 같은 내 모습에 장난을 치면서 친구는 긴장이 조금씩 풀어졌고 카페도 가고 싶다고 해서 가서 커피도 마시고 나니 두려웠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결 편안해진 모습이다.

커피를 마시며 쓰고 있던 캡 모자도 벗어도 괜찮을 거 같다고 넌지시 이야기를 건네었다. 솔직히 실내에서 여름용 캡 모자를 쓰고 다니면 오히려 더 눈길을 끌게 마련이고 그럼 뭐가 이상한가 하고 더 보게 된다고 그냥 벗고 다니면 사람들은 똑같은 사람이 지나가나 보다 하고 신경 안 쓴다고 했더니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카페를 나가면서 친구가 모자를 쓰지 않았다. 고마웠다. 내 말을 들어줘서가 아니라 용기를 내고 있는 모습이 예뻐서다.

다시 쇼핑센터를 구경하며 수다를 떨며 아이들에 선물을 고르기 위해 그 많은 사람들 사이를 거니는데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시선들이 하나 둘 머물긴 했지만 처음보다 더 좋아보였다. 피디가 친구에게 괜찮은지 묻는데 나랑 같이 있어서 그런지 정말 말한 것처럼 생각보다 사람들이 덜 보는 거 같아 괜찮은 거 같다고 말한다.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친구는 위로가 되는 거 같았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혼자만 두드러지게 보이는 화상 장애인 외모 지상주의라고 말하는 요즘 이 시대에 사람들 속에서 그 두려움은 말할 수 없는 공포심과 소외감을 가지게 만든다. 그런 그 속에서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같이 같은 모습으로 있다고 하면 덜 두려운 것은 당연하단 생각이 든다.

화상 전문 병원에서야 너나 할 거 없이 비슷한 모습이거나 같은 마음들이라 별로 그런 생각이 안들겠지만 막상 퇴원하고 나오면 당당하고 자신있던 모습과 용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는게 화상 장애인들의 사정이다.

우리 엄마가 처음 외출 할 때 얼굴 손 다 가리려고 애를 쓰셨던 게 생각난다. 난 화상을 많이 입어서 열이나 추위에 아주 약한 편인데 한여름 칭칭 감고 가리니 그것 때문에 더 열이 올라 죽을 것만 같았다.

연세 있으신 분들은 장애인들에 대한 생각이 좀 안좋다. 그런 세대 밑에서 자란 우리들도 그 영향을 받아 역시나 장애인에 대한 생각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기에 생각이 자연스레 사람들의 반응을 미리 짐작하면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얼마전 kbs에서 주말에 통합 어린이 집이 방송에 나왔었다. 그 프로를 보면서 난 그 부모들과 아이들에게 박수를 쳤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아이들이 어릴때부터 서로 자연스레 어울리며 자라면 장애란 것을 특별한 눈이 아니라 똑같은 사람, 단지 좀 움직임이 불편한 사람으로 알게 될뿐만 아니라 누가 가르쳐 주지않아도 불편한 친구를 위해 배려하는 모습들, 장애 아동들도 비장애아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자신감이 생기는 모습들, 정말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이 자란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분명 장애인 친구들을 어른이 되어서도 똑같이 대할 것이고 장애인 친구들을 곁에서 봐왔기 때문에 무엇이 불편한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잘 알 것이다.

장애 아이들도 비장애 아이들을 보면서 무엇가를 해내려고 도전하고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더 단단해지고 소외가 아닌 한 구성원이란 생각으로 자신있게 살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생각이 나 어릴 때보단 많이 좋아지긴 했어도 아직 조금만 도시를 벗어나면 집 밖에만 나가도 불편한 시설과 따가운 시선 때문에 상처만 받고 다시 들어와 창살 없는 감옥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정말 집나가면 장애인들은 개고생이 따로 없다. 하지만 안나가면 나만 손해다. 세상이 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면 또 다른 누군가가 나 같이 살다 가지 않을까? 그래서 우린 나가야 하고 우리 같은 사람들을 자꾸 봐야 불편한 눈길이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대해줄 것이다.

이런 내 경험들이 친구에게 전해졌고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커다란 쇼핑센터를 씩씩하게 활보하면서도 위축되지 않고 즐거웠는 지도 모르겠다. 친구야 앞으론 나가 놀자~집안에서 병원에서만 놀긴 너무 답답하잖어.

오랜만의 외출 그것도 사람들 많은 곳으로 다녀서 몸은 피곤했겠지만 연신 웃음이 가득한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또 엄마가 골라준 선물을 받아 보고 좋아할 친구의 딸들을 생각하면서 돌아오는 내 마음도 흐뭇했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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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타인의 가스 폭발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선물 받고 다른 사람들보다 이름표 하나 더 가진 욕심 많은 사람. 장애인이 된 후 고통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불평이나 원망보다 감사라는 단어를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얼굴부터 온 몸에 58%의 중증 화상에 흉터들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용감하게 내놓고 다니는 강도가 만나면 도망 갈 무서운 여자. 오프라인 상에서 장애인들을 만난다는 것이 어려워 온라인상의 장애인 카페를 통해서 글을 올리면서부터 다른 장애인들과 소통을 하게 되었고 그들의 삶이 사소한 나의 글 하나에도 웃는 것이 좋아 글 쓰는 것이 취미가 된 행복한 여자입니다. 제가 내세울 학력은 없습니다. 다만 장애인으로 살아온 6년이 가장 소중한 배움에 시간이었고 그 기간 동안에 믿음과 감사와 사랑이 제게 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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