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가을에. ⓒ김빛나

10년 전 장애를 입었다. 혼자서는 앉아 있을 수도 없고 팔 , 다리도 가눌 수 없었다. 23년 다니시던 회사를 퇴직하신 아버지는 좋다는 병원마다 나를 데리고 다니시며, 재활운동을 시키셨다.

그러면서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친구들은 다들 고등학생인데 중학교 중퇴자로 남아있는 내 현실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 때,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검정고시. 중학교 과정과 고등학교 과정을 4개월 만에 모두 합격했다.

“빛나야 너 아픈 거 맞아? 어떻게 고등학교도 가보지 않은 애가 3개월 만에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다 마칠 수 있어? 너 천재 인가봐!”

사람들은 나를 보며 입을 모아 칭찬했고, 그 칭찬이 더 해갈수록 나는 자만해졌다.

그리고 그 해 겨울, 특기자 전형으로 한 대학교의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대학교만 가면 모든 게 다 순조롭게 진행되리라 생각 했는데 두꺼운 책을 읽고 요약, 정리 하는 과제가 많아 항상 어머니의 힘을 빌려야 했다.

대학교에 가서도 어머니의 도움만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자퇴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한국재활복지대학’을 알았다. 학생 대부분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그 학교에서라면 부모님의 도움없이 내 스스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을 설득하여, 면접을 보게 되었다. 나에게 호의적인 면접관들, 그리고 나에게 쏟아지는 질문세례.

다른 장애학생들과는 다른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나는 당연히 합격될 꺼라는 생각으로 면접을 보고 나오면서 어머니께 소리쳤다.

“엄마! 나 됐어!!”

“경쟁률이 세던데 넌 뭘 믿고 그렇게 단정짓니?”

“교수님들이 나한테만 질문하고, 다른 애들한테는 질문도 안 하고... 나한테 관심이 많으시던데... 뭐”

드디어 합격자 발표 날. 홈페이지에 당연히 내 이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나의 실망감은 생각보다 켰다. 내 뺨 위로는 눈물이 흐렀고, 흐느낌은 서서히 통곡으로 변했다. 열 한 살 때, 내가 제일 좋아하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이 후로 가장 서럽게 울었다.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 탓에 누가 모진 말을 해도 잘 울지 않던 내가 초상이라도 난 듯, 너무 서글피도 울었다.

억울했다.

중복장애를 이유로 불합격한 것 같아 분했고, 공부를 하는 데에는 머리가 중요하지, 장애정도가 중요한가? 이런 혼자만의 독백을 하며 긴 시간 서글피도 울었다.

이후 나는 목표의식과 성취감도 잃은 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매일 그 열심히 하던 재활운동도 온 몸에 힘이 빠져 할 수 없었고, 좋아하는 치킨을 봐도 식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 내게 어머니께서 한 마디 하셨다.

“빛나야, 네가 그 학교에 정말 가고 싶다면 학장님께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 엄마 생각엔 너의 장애가 보기에 심해 보여서 교수님들이 탈락시킨 것 같아. 네가 어떤 아인지 알고 나시면 꼭 올해가 아니더라도 내년에 좋은 기회를 주실거야”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고 좀 편해졌다. 면접때 내가 제일 잘 했다는 생각도 어쩌면 나의 자만심에서 비롯된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길로 내 방에 들어가 학장님께 보내는 일곱 장의 편지를 썼다.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확신으로...’ 그리고 며칠 뒤, 나는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학장님 특별전형’으로 꿈에 그리던 그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결국 내가 1지망하던 학과에는 입학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 일을 통해 지는 것도 성장의 한 부분이라는 것. 실패의 경험이야말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산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성숙이란 성공만 가지고 얻을 수 없는 것이고, 반드시 실패란 재료도 들어가야 완성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나를 넓혀주고, 깊어지게 한 그 때의 눈물. 성공보다는 내면의 성장을 가져다 준 그 때 그 쓰디쓴 눈물. 그 성숙의 눈물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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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국문학도를 포기하고, 음악을 선택한 아이. 하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는 아이. 안녕하세요^^ 김빛나입니다. 대학교에서 플루트를 전공했습니다. '독립연대'에서 '활동가'로 근무 중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심리상담가'가 되겠다는 스물다섯의 당찬 아이. 저는 꿈꾸는 아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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