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장애인복지,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촉구하는 부모연대의 지난달 31일 집회 모습.ⓒ박인용

앞서 장애에 대한 재활모델의 한계를 이야기했는데, 그렇다면 장애에 대한 올바른 관점,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도움이 되는 관점은 무엇일까?

장애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장애인의 발달에 대한 의미 자체가 다를 것이다. 전통적인 장애관점에 따라 장애를 손상 그 자체로 파악하면, 손상으로 인한 개인의 기질을 문제삼고 이를 교정하는 게 발달이라고 여기기 쉽다.

부모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특히 발달장애인의 발달을 그릇되게 이해하고 그들의 성장을 가로막아 오지 않았는가 반성해 본다.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의 주류적인 접근방식은 아직도 자립생활 모델이 아닌 장애에 대한 재활모델에 기초하고 있는데, 장애에 대한 개별적 접근, 의료적 모델이 가진 한계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재활 관점 장애 정의의 한계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을‘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 라고 규정하고 있다. 장애를 병리학적 관점에서 개인의 속성으로 파악하고, 사회적인 맥락을 무시한 생활제약 요인만을 다룬다.

이러한 정의에 의하면 발달이란 생활의 제약을 가져온다고 보는 개인의 손상(또는 손상에 따른 기질)을 변경하는 것이 되는데, 재활 전문가들이나 부모들이 흔히 말하는‘재활치료’ 라고 말하는 시도들이다.

이러한 시도들은 발달장애인이 처한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기 보다는, 손상에 따른 기질적, 행동적 특성을 억제하는데 집중함으로써 발달장애인들에게 오히려 의존을 심화시켜 스스로 발전할 기회를 차단하고 억압을 가져오기 쉽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동기 발달장애인에게 가족이나 재활전문가들의 무리한 개입으로 인해 인권 침해가 빈번할 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 가능성을 오히려 퇴행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장애인차별금지법(35조)은 ‘장애아동의 인권을 무시하고 강제로 시설 수용 및 무리한 재활 치료 또는 훈련을 시켜서는 아니 된다’ 고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자립생활 관점, 사회적 관점의 장애정의

장애를 개인이 가진 손상이 아니라, 손상 위에 덧씌워지는 사회적 제약, 사회적 억압으로 정의하면 손상으로 인한 속성은 장애인에게 개성 정도로 파악될 것이다. 나아가 장애인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나거나 강점으로 파악될 수도 있다. 필자는 Tomas(1995)라는 장애학자가 내린 장애에 대한 정의가 가장 맘에 든다.

“장애(disability)는 손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부과한 활동의 제약과 그들의 심리적 정서적 삶의 질(well-being)을 훼손하게 만드는 사회적 작동을 포함한 억압의 한 형태이다.”

여기에서 장애는 장애인을 억압하는 그 무엇이지, 그가 가진 손상이 아니다. 이 정의에 의하면 발달장애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그의 손상이 아니라, 손상을 가진 이들에게 부과한 제약과 억압 때문이라는 것이다.

손상 자체가 불행한 것이 아니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가진 손상 때문에 삶의 질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원하자는 얘기일 것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하는 꼭 맞는 말이 아닌가?

결국 장애인들의 삶의 질은 손상에 부과한 환경 제약을 해소하고 그들이 받을 수 있는 억압적인 환경을 바꾸는데 달려 있다.

이렇게 장애에 대한 사회적 접근을 하게 되면, 장애인 개인의 손상에 대한 재활보다도 환경의 변화를 먼저 생각하게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장애인에게 자립생활을 가능케 하는 정책과 가족의 역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토마스가 말한 장애에 대한 ‘사회적 정의’를 가지고 발달장애를 가진 딸 아이를 대하려고 노력한다. 즉, 발달장애라는 곤경 때문에 제약 받기 쉬운 활동을 확보해 주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기 쉬운 억압적인 환경을 해소하여 그 아이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것을 하루하루의 목표로 삼을 수 있게 됐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자립생활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장애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버리고, 자립생활 관점으로 생각하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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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중학생 딸을 둔 아버지 활동가입니다. 아이들 돌보고 살림도 챙기는 주부이기도 합니다. 2003년 부모활동가로서 장애인교육권연대,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를 조직하였고, 장애인활동가들과 함께 진보정당 장애인위원회를 건설하는데 참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애어린이 희망찾기>, 위드뉴스 <새로운 부모운동을 위한 전국순회> 라는 연재 글을 썼고, 2007년 한신대에서 <한국사회 장애인 부모운동 연구> 이라는 논문을 썼습니다. 현재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정책국장과 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조례운동본부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부모운동과 가족지원,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해방에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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