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대해 몇 꼭지 이야기 하려고 한다. 자립생활 지원과 관련해 발달장애 자녀를 양육해온 경험과 주변 장애청소년들과 교류하면서 느낀 점들이 많다. 앞서 새로운 부모운동이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자기옹호 운동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었는데,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노력하는 부모들과 활동가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대부분 장애인 부모들이 경험하는 일이지만, 자녀의 장애를 처음 발견한 순간부터 다가오는 혼란스러움과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에 자녀의 장애를 올바로 수용하기 어렵다. 특히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다 보면 몸과 마음이 지치고 고통스러울 때가 많기 때문에 장애인 자녀에 대해 조급함이 자리잡기 쉽고, 주변 사회의 편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그랬지만 많은 부모들이 조급한 생각에 재활치료에 매달려 정작 발달장애인에 필요한 자립능력 지원이나 사회적인 자립경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아주 많다. 학교 졸업을 앞두고 비로소 자녀의 자립을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겨울 온실에서 막 나온 것처럼 자녀에게 자립을 위한 기초소양이 부족한 것을 알게 되고는 막막함을 느낀다. 학령기에 자녀를 위해 다양한 재활지원과 교육활동을 하지만, 가족과 지역사회 안에서의 실생활 경험은 부족하며, 학령기 이후에는 활용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지원프로그램이란게 단편적인 직업재활프로그램 외에 매우 빈약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발달장애인들에게 중요한 자기선택과 옹호능력, 자기관리와 신변능력, 자립적 이동, 사회적 기술 등 자립생활 역량은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게 아니다. 영·유아기부터 자녀의 장애에 대해 올바로 인식해야만, 자녀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자녀의 성장주기에 따라 자립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많은 장애인 부모들을 만나 교류하면서 발견했던 그릇된 생각과 편견을 몇 가지로 나누어서 따가운 지적을 하려고 한다.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모든 분들이 자녀를 위해서라도 바람직한 관점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유연한 생각과 상식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내 아이는 장애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부모 자신이 자녀의 장애를 부정하는 경우 가장 문제가 된다. “내 아이는 장애가 아니야”라고 부정함으로써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 나쁜 사회인식에서 자녀를 방어하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종종 있다. 영유아기에 발달상의 어려움을 파악했지만 정확하게 장애로 진단하지 못한 부모들이 취하기 쉬운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장애에 대한 우리사회의 편견과 낙인감 등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어느 유력한 후보가 “장애아인 경우는 낙태를 허용할 수 있다”는 우생학적인 부정에 이르기까지 장애에 대한 비합리적인 편견과 부정적인 억압들이 안타깝게도 처음 자녀의 장애를 발견한 부모들을 현실에서 눈멀게 하고 심리적인 방어기제로 도피하게 만든다.

이는 유명 병원에서 의사들이 지적 장애나 자폐성 장애 등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진단명이 아니라, ‘반응성 애착장애’니 ‘사회성 형성 부족’이니 어중간한 진단을 남발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장애를 개인의 병리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협소한 관점 때문에 질병을 진단할 때처럼 오진 가능성을 줄이려 하거나, 아동의 부모들에게 동정적인 태도를 전달함으로써 정확한 장애인식을 더디게 한다.

조금 다른 경우지만, 자녀의 장애를 객관적으로 진단했음에도 이를 집안의 수치로 여겨 쉬쉬하며 외부에 알리지 않고, 장애 자녀를 집안이나 시설에서 고립적으로 양육하는 부모들도 있다. 장애를 가진 자녀의 존재를 극도로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유명 인사들이 많다. 비장애인 주류 사회계층은 기득권을 옹호하려는 경향 때문에 장애인을 가치 없는 존재로 부정하는 경향 때문에 스스로 이중적 태도를 가지게 된다. 서울시에서 교육환경이 좋다는 강남, 서초, 송파구가 장애학생들에게는 가장 힘겨운 특수교육의 불모지로 평가되고 있는 아이러니는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내 아이는 지적 장애가 아니다?

두 번째로는 자녀의 장애를 수용하면서도 “내 아인 달라요. 지적 장애가 아닙니다” 라며 부분적으로만 수용하는 부모들이 있다. 지적 수준이 비교적 양호한 이른바 경계급 장애, 지적 기능이 높은 자폐성 장애, ADHD(주의부족-과잉행동) 등 정서나 행동상의 어려움을 가진 아동의 부모들이 취하기 쉬운 태도다.

지적 능력은 그래도 낫다고 애써 위안을 삼으려는 것일 수 있지만, 지적 기능은 아동의 발달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간과한다. 그리고 지적 장애를 더욱 곤란하고 심각한 장애로 바라보는 오류를 범하는 셈이다. 지적 기능과 정서, 사회적인 발달이 불일치할수록 아동은 자아 발달을 힘겹게 경험할 것이므로 정서, 사회적인 지원이 더욱 중요해진다.

장애를 가진 딸아이를 관찰하면서 발달장애인의 궁극적인 자립을 위해서는 지적인 발달보다 정서, 사회적인 발달이 더욱 중요하다고 느꼈다. 몸과 마음이 서로 통합하여 발달하고, 장애아동의 발달도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자아발달이라는 상식을 기억한다면, 자녀의 발달과 자립생활을 지원하는데 균형을 잃지 않게 될 것이다.

내 아이는 신체장애일 뿐이다?

세 번째는 뇌병변 장애 등 신체장애와 발달상의 장애를 함께 가진 아동의 부모들이 “내 아이는 발달장애가 아니라, 신체장애일 뿐이야”라고 애써 자녀의 발달상 문제를 회피하여 자녀의 장애를 부정하는 경우이다. 뇌병변 장애아동 중에는 발달상의 어려움을 중복으로 가진 경우가 40%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발달장애로 낙인받는 게 싫다고 발달상의 지원을 외면해 버린다면 그야말로 자녀에게 매우 위험한 것이 아닐까?

뇌병변 장애 등으로 지체장애 특수학교에 취학시킨 학부모들 중에는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법제도는 우리와 상관없다”고 잘라서 말하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매우 당혹스럽다. 정말 자녀의 장애가 발달장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해도 모든 장애인에게 그 지원이 적용될 가능성이 많은데도 말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발달장애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데, 해외의 경우 발달장애를 폭넓게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미국 발달장애인지원법은 22세 이전의 지적 또는 신체적 손상으로 자기 돌봄, 이해력, 언어표현, 학습, 이동 자기결정, 독립생활, 자급자족 등 8개 영역 중에서 3개 이상의 곤란이 발생했을 때, 발달장애로 규정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자기 돌봄과 독립이동이 어려워 경제활동을 하기 곤란한 신체장애인도 발달장애에 해당되어 필요한 지원들을 받을 수 있다.

부모들마저도 자녀의 장애를 부정하거나 장애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은 근원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다. 이러한 편견과 부정은 장애문제를 개인의 손상으로 보고 병리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협소한 관점(장애에 대한 의료 모델)과 차별적인 관행 때문에 만들어 진다. 사회적 지원제도가 도입되어 장애가 더 이상 차별과 낙인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지원 문제로 정착되었다면, 어떤 장애인 부모도 장애인 자녀를 부끄럽게 여기거나 자녀의 장애를 부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장애인 부모들은 장애를 부정하거나 무기력한 현실도피를 선택할게 아니라, 장애인 자녀를 둘러싼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차별과 편견을 해소하여 권리를 옹호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가져야 하겠다. 장애에 대한 인식, 장애인 자녀에 대한 부모의 태도는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 가능성을 결정한다.

*다음에는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해서 부모가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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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중학생 딸을 둔 아버지 활동가입니다. 아이들 돌보고 살림도 챙기는 주부이기도 합니다. 2003년 부모활동가로서 장애인교육권연대,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를 조직하였고, 장애인활동가들과 함께 진보정당 장애인위원회를 건설하는데 참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애어린이 희망찾기>, 위드뉴스 <새로운 부모운동을 위한 전국순회> 라는 연재 글을 썼고, 2007년 한신대에서 <한국사회 장애인 부모운동 연구> 이라는 논문을 썼습니다. 현재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정책국장과 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조례운동본부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부모운동과 가족지원,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해방에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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