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은 두 가지의 모습을 가진다. 하나는 결핍이고, 또 하나는 과잉이다. 생리학과 병리학은 이를 모두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정의한다. 장애는 대부분 ‘결핍’에서 오는 것이다. 예컨대 나에겐 걷거나 뛸 수 있는 운동 신경과 감각이 결핍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능적인 결핍 뿐만 아니라 호르몬과 에너지의 과잉 상태로 인한 ‘장애’가 현대의 정신 의학에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틱 장애로 알려진 뚜렛 증후군이 이에 해당되는데, 정신 의학은 이를 “시상, 시상하부, 변연계 그리고 편도에 일어난 임상학적, 병리학적 장애”로 설명한다.

신경장애 환자들의 임상사례를 문학적으로 묘사한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다양한 '결핍'과 '과잉' 상태의 장애를 경험하는 환자들이 등장한다. ⓒ이마고

영국의 신경학 전문의인 올리버 색스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신체 기능이 결핍되거나 일부가 과잉된 상태의 환자들이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새롭게 적응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주목한 것은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기인하는 삶의 '활력'들이다.

틱 장애를 가진 환자 ‘레이’는, 틱 장애로 인해 거칠고 돌발적이며 신경질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레이는 이 장애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파민 수치를 낮추는 할돌(Haldol)을 처방받는데, 이후 틱 장애는 완화되었지만 ‘정상적인’ 성격을 가진 자신의 모습이 진정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나는 틱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틱 증상이 치료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라며 낙담한다.

잠복기가 긴 뇌매독(cerebral syphilis)이 발현되어 갑작스럽게 밝고 활력있는 기분을 느끼게 된 90살이 한 노인은, 자신의 병이 매독으로 인한 ‘비정상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뇌매독이 완전히 치료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생의 새로운 활력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려는 의사들은 이들이 경험하는 과잉 상태가 건강한 상태에서 발현되는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기에 약물 등을 통해 정상 상태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질병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며, 병의 산물로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례에서 살펴보았듯 환자들은 병리 상태를 ‘행복한 상태’로 경험하며, 병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다. 결국 레이는 평일에는 할돌을 처방받아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고, 주말에는 다시 틱 장애를 가진 자신으로 돌아와 거칠지만 활력 있는 삶을 산다. 뇌매독에 걸린 노인은 병이 그 이상으로 진행되지 않을 정도의 약물을 처방받아, 계속해 활기 있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물론 대부분의 장애는 결핍 상태이기에 이를 행복한 상태로 경험하기도 힘들며, 장애를 긍정적으로 이용하기도 힘들다. 결핍으로 인한 장애는 다양한 물리적인 고통을 수반할 뿐 아니라, 사회적,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불쾌한 상태를 경험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의 경험틀 내에서 장애는 실존적으로 개개인마다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내 장애는 때때로 나에게 고통과 불쾌함을 가져다주지만, 다른 측면에서 내가 장애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알 수 없었을 다양한 경험들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것이 과잉 상태에서 오는 것처럼 직접적인 활력을 가져오지 못할지라도, 불가피하게 이겨내야 하며 극복해내야 하는 다양한 과제들이 내 삶의 영역에 들어와 다른 종류의 활력들을 불러 일으켰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나는 단 한 번도 비장애인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다”라고 말하는 장애인들도 한 번쯤은 ‘내가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어떠한 삶을 살고 있을까’라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장애를 ‘치료’받고 난 후에 얻어질 신체적인 안정과 장애라는 ‘비정상 상태’에서 기인하는 새로운 활력, 당신은 어떤 삶을 원하는가. 나는 아직까지 전자의 삶을 선택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 이후의 내 경험들이 결국 지금의 선택을 바꿀 수 있을만한 활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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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화학부 04학번,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 진학 예정. 커피와 고양이, 책을 좋아하고 식상함과 무기력을 싫어하는 스물다섯의 귀차니스트. 다년간의 관악산 휠체어 라이딩으로 다져진 팔근육과 연약해 보이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지체장애인. '대중의 과학화'를 꿈꾸며 멋진 저술가가 되고 싶은 평범한 과학도. 내게는 일상인 풍경들 속에 나 역시 풍경으로 비춰질까, 부조화한 이방인으로 비춰질가 오늘도 고민-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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