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닥터 하우스>. 주인공 그레고리 하우스는 '나쁜' 장애인의 전형이다. ⓒOnstyle <닥터 하우스> 시즌 1 스틸컷

여기 한 '나쁜' 장애인이 있다. 그는 의사이다. 그는 제멋대로이고, 안하무인에, 상대방에게 상처주는 말을 서슴치 않는다.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여의사와 흑인의사를 차별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여의사에겐 "너 정도의 반반한 외모이면, 힘든 의사일을 하지 않고도 돈을 쉽게 벌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로 상처를 주며, 흑인 의사에게 얼굴이 '검다'는 이유로 '화이트' 보드에 메모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게다가 그는 찌질하다. 한 쪽 다리를 저는, 비교적 경증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새로 들어온 휠체어를 탄 의사가 그의 장애인 주차 구역을 요구하자, 시위의 의미로 일주일 내내 병원에서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닌다. 미성년자인 여자 환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질 뻔한 적도 있고, 약물 복용으로 수감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이 '나쁜' 장애인은 미국드라마 <닥터 하우스>의 주인공 그레고리 하우스이다. 별나고 독특한 성격이 자신의 컴플렉스를 감추기 위한 하나의 방어기제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해도, 하우스는 분명히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불쾌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우리 주변에서 접할 법한 장애인이기도 하다. 내 주위의 장애인들은 모두들 조금은 나쁘고, 조금은 이기적이며, 조금은 찌질하고, 가끔은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던지기도 한다. 장애를 가지지 않은 평범한 이들이 그렇듯.

우리 나라 드라마 속 장애인은 너무 착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휠체어에 앉아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클라라 이미지의 장애인 캐릭터는 식상할 법도 한데. 드라마 <추노>에서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등장하는 이선영은 자신을 만난 것이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말했던 남편 강철웅을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찬란한 유산>에 등장한 자폐증을 가진 소년 은호는 자신을 버리려 했던 새엄마를 끝까지 신뢰한다.

그리고 우리 나라 드라마 속 장애인에 대한 비판 역시 너무 착하다. 영화 <오아시스>나 <내 사랑 내 곁에> 속 장애인 캐릭터를 비판할 때, 그들이 '비장애인의 몸을 꿈꾸었다'는 사실을 든다. 물론 이상적으로 우리는 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장애를 가진 몸의 아름다움을 긍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래야만 한다'는 이상과 다르게 현실 속의 나는 종종 비장애인이 된 몸을 갈망한다.

대통령의 딸인 전도연과 평범한 경찰인 김주혁이 남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프라하의 연인> 비평을 오래전에 읽은 적이 있다. 전도연의 직장 동료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 윤영준이 등장하는데, 비평가는 전도연이 동료인 윤영준이 아니라 김주혁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휠체어 장애인을 무성화(無性化)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들은 공통적으로 '이상'을 강조하며, '현실'에 존재하는 장애인의 모습과 간극을 만들어낸다.

나는 드라마 속에 그레고리 하우스 같은 '나쁜' 장애인 캐릭터가 더 많이 등장하길 바란다. 우리 주위에 살아 숨쉬는 '나쁜' 장애인, '찌질한' 장애인, '변태' 장애인, '겉절이' 장애인을 드라마 속에서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런 장애인이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이상적인 상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그 리얼리티까지 훼손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아시스>의 문소리와 <내 사랑 내 곁에>의 김명민이 장애를 가진 자신의 몸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장면이 영화 속에 등장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통령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휠체어 장애인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봤으면 좋겠다. 분명 그것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 감동은 '재벌 2세와 사랑에 빠지는 신데렐라' 만큼이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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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화학부 04학번,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 진학 예정. 커피와 고양이, 책을 좋아하고 식상함과 무기력을 싫어하는 스물다섯의 귀차니스트. 다년간의 관악산 휠체어 라이딩으로 다져진 팔근육과 연약해 보이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지체장애인. '대중의 과학화'를 꿈꾸며 멋진 저술가가 되고 싶은 평범한 과학도. 내게는 일상인 풍경들 속에 나 역시 풍경으로 비춰질까, 부조화한 이방인으로 비춰질가 오늘도 고민-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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