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랜 벗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반가운 마음에 서로 안부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근황을 물어보는데, 친구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운을 뗐다.

“송 의원, 우리 아들 주례 좀 서 주게.”

“뭐, 뭐라고?”

“우리 막내아들이 이달 말에 결혼식을 하는데 자네가 주례 좀 서 줘야겠어.”

뜻밖의 부탁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친구가 지금 결혼식 주례라는 것을 한 손에 덥석 쥐어주는 짐 보따리 정도로 경하게 여기는 건가.

“자네 지금 농담하나?”

“농담이라니, 예식 준비에 신경쓰느라 이마에 주름이 다 잡히려고 하는데 농담할 여유가 어디 있겠나. 자네가 주례를 꼭 좀 해 주었으면 해서 그래. 부탁하네.”

“…….”

막무가내로 거듭 청하는 친구에게 며칠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식으로 대답을 미룬 채 전화를 끊었다. 난감한 마음에 수화기를 내려놓고도 한동안 수화기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나는 삼일 동안 장고에 들어갔다. 주례사를 읊는 것은 근엄하게 든, 멋들어지게 든, 혹은 신세대 취향으로든 얼마든지 할 수 있겠는데, 문제는 시각으로 판단해야 할 식순의 상황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신랑·신부 입장이라든가, 신랑·신부 맞절, 양가 부모님께 큰절 올리기 등은 되어가는 상황을 파악해 가면서 순서를 진행시켜야 하는 것들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눈부신 웨딩드레스의 끝자락을 다소곳이 끌고 가는 새신부의 고결한 행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급하게 신랑을 불러들인다거나, 부부가 서로 마주보기도 전에 맞절을 시켜버려 아름답고 올바르게 숙여져야 할 부부의 머리가 주례자를 향해 삐딱하게 기울어지게 한다던가, 깊고 공손하게 엎드려야 할 부모님을 향한 큰 절이 철 덜든 자식들의 행동거지마냥 엉거주춤 뭐 싼 폼이 되어버릴지도 모를 터였다. 보나마나 한 가정의 중요한 인륜지대사를 그르칠 것이 뻔한 이치였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여 등줄기에서는 하늘을 흐르는 별똥별같이 한줄기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 내가 못하는 것도 있구나. 매주 라디오 여행가이드를 3년이나 하고 있고, 비장애인에게도 그 벽을 쉽게 허물지 않는 사하라며, 아타카마며, 남극도 이 두 발로 달려 보았는데 말이다. 이처럼 생활 속의 소소한 일들이 사막보다도 더 거대해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오랜 생각 끝에 사흘째 되는 날 나는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들었다.

“이보게, 자네가 나를 생각해줘서 주례를 청탁한 것은 고맙게 생각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이번 일은 도저히 어렵겠네.”

나는 나대로 어렵게 고사했지만 친구는 친구대로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자네라면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는 우리 아들 내외에게 인생의 지침과 교훈이 될 만한 좋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너무 어렵게 생각지 말고 맡아 주게나.”

“식장 상황을 파악하면서 식순을 진행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잘 해낼 자신이 없어. 양해를 부탁하네.”

나의 힘없는 목소리에 친구는 어느새 아들의 주례는 뒷전으로 미룬 채 내게 용기와 패기 같은 것들을 북돋아주려 했다.

“새로운 도전에 한 치의 주저함도 없던 자네가 어째서 결혼 주례 따위를 겁을 내는 건가? 그리고 실수 좀 하면 어때서 그래? 새로운 세계에 도전한다 생각하고 용기를 내 봐. 응?”

“아니 그, 그게……, 글쎄, 그게……, 아닐 세…….”

친구가 목소리를 돋울수록 나의 목소리는 점점 더 조그맣게 기어들어갔다.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미처 시작도 해보기 전에 제자리에 주저앉은 꼴이 되고 말았다.

나는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를 생각해 보았다. 아기가 단번에 두 발로 우뚝 일어서서 제 힘으로 걸을 수 있을까? 여물지 않은 무릎으로 일어섰다 넘어지고, 넘어져 울면서도 다시 일어서 보고, 그러다 또 쿵하고 넘어져 마르지 않는 눈물을 다시 터트리고, 그렇게 넘어졌다 일어서기를 수천 번 반복한 후에야 저 멀리서 두 팔을 한껏 벌리며 기다리고 있는 엄마의 따뜻한 품으로 골인할 수 있지 않은가. 아기는 평균 2천 번을 넘어져야 비로소 걷는 법을 배운다고 한다. 친구의 주례부탁으로 인해 왠지 세상살이에 자신감이 없어진 것 같아 몇 천 번의 실패를 모아 성공으로 만드는 아기의 걸음마를 떠올리며 마음을 추슬러보는 요즘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