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세종, 연산군, 선조, 광해군, 현종, 숙종, 경종, 정조의 공통점은 뭘까?

성군, 폐위된 임금, 전쟁을 치룬 임금, 장희빈, 사도세자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과의 연관성, 이들 중 한두 가지는 연관이 되겠으나 8명 모두가 갖고 있는 공통점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눈병으로 시각장애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시각장애인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나머지 7명의 임금도 시각장애 때문에 고통을 당했다는 것은 처음 밝히는 일이라 실록을 중심으로 소개를 한다.

이들 임금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시각장애를 잘 극복한 임금, 시각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해 임금에서 폐위되거나 실정을 했던 임금, 그리고 3대에 걸친 시각장애로 장애를 자연스럽게 수용한 임금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장애를 잘 극복한 임금으로 세종과 정조가 속하고, 장애를 수용하지 못해 실패한 임금으로는 연산군, 광해군, 선조가 있다. 그리고 현종, 숙종, 경종은 3대가 시각장애를 갖고 있어서 장애가 삶 속에서 당연시 여겨졌다.

연산군이 폭군이 된 이유를 어머니 폐비 윤씨의 억울한 죽음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지만 연산군은 안질 때문에 많이 위축돼 있었다. 책을 두어 장만 읽으면 눈에 티끌이 덮는 것 같다고 하기도 했고, 안개가 앞을 가리고 있는 듯하다 고백하기도 했다.

연산군은 경연에 참석하지 않아 학자들의 빈축을 샀는데 그 이유는 학문에 뜻이 없어서가 아니라 경연에 참가하면 글을 읽고 써야 하는데 글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고 참석을 하지 않았다. 연산군은 시각장애로 인한 열등감으로 국정을 보살피지 않아 중종반정으로 결국 축출이 되고 만다.

인조반정으로 폐위의 불운을 맞이한 두 번째 임금 광해군은 즉위 초기에는 정사에 부지런하여 존경을 받았다.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백성을 보살펴 나라의 안정을 되찾게 하는 등 치적이 큰 임금이다.

그런데 즉위 6년이 되던 해에 눈병을 앓게 된다. 눈병은 쉬어야 낫는다는 어의의 말에 따라 긴급하지 않은 일은 자기한테 알리지 말라는 전교를 내린다. 광해군은 중국 황제의 칙서를 영접하지 못하고 자꾸 미룰 정도로 눈병이 심각했다.

광해군은 자신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밖에 나가지 않았다. 국정을 기피하다 보니 국사가 적체가 되어 신하들이 임금을 찾아오면 광해군은 오지 말라는데 왔다고 크게 화를 냈다. 결국 광해군은 폭군이란 낙인이 찍혀 임금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인목대비를 비롯해서 신하들이 광해군의 처형을 상소했지만 인조는 광해군을 죽이지 않고 광화도로 유배를 보내는데 그 이유는 광해군이 앞을 볼 수 없는 상태라서 굳이 목숨을 거두지 않더라도 훗날을 도모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폐위되지는 않았지만 임진왜란으로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선조도 선조실록에 두 눈이 침침하여 곧 맹인이 될 상황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선조는 자신감을 상실하여 국정을 수행할 의욕을 잃었던 무능한 임금이었다. 선조가 오른쪽 수족을 전혀 움직일 수 없다고 자신의 건강에 대해 하소연한 것을 보면 편마비가 온 것 같다.

3대에 걸쳐 시각장애를 갖고 있었던 현종, 숙종, 경종은 장애에 순응하여 비교적 편안한 일생을 보냈다. 현종은 즉위 전부터 왼쪽 눈에 이상이 있었다. 그래서 모든 문서는 글자를 크게 써서 다시 올리도록 했다. 현종이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친서를 내리지 못했던 것을 보면 시각장애가 심각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좋은 신하가 있었던 것도 현종이 장애를 이겨내는데 도움이 됐다. 송준길은 주자가 좀 더 일찍 맹인이 되지 않았던 것을 한스러워했다고 임금을 위로하였다. 하지만 현종의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신하들은 학문에 정성이 없다고 현종을 비판했다.

숙종도 왼쪽 눈에 이상이 있었는데 곧 오른쪽 눈에도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숙종은 쌓여있는 문서를 목소리가 좋은 사람에게 읽도록 해서 정사를 돌봤다. 숙종은 조선왕조를 통틀어 당파간의 정쟁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였지만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고 조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왕으로 평가된다. 숙종은 눈 치료를 위해 온천을 많이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온천에 가기 어려우면 온수를 운반해오기도 했다. 눈병이 악화되어 더 이상 정사를 돌볼 수 없게 됐을 때는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켰다.

숙종에 이어 임금이 된 경종은 장희빈의 아들이다. 12세 때부터 눈에 이상이 생겨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경종은 책을 읽을 수 없자 내용을 요약해서 암기하는 형식으로 공부를 했다.

장애를 잘 극복한 임금으로 당연 세종대왕을 꼽을 수 있고 다음이 정조이다. 정조의 리더십은 오늘날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정조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조는 자신의 눈병 원인을 울화가 팽배해 있는 결과라고 생각했다. 정조의 눈병에 대해 정조 실록에 비교적 자세히 설명한 기록이 있다.

-몇 년 전부터 점점 눈이 어두워지더니 올(1799년) 봄 이후로는 더욱 심하여 글자 모양을 분명하게 볼 수가 없다.-

정조는 드디어 -내가 눈이 어둡기 때문에 자세히 볼 수 없으니 경들이 잘 살펴보도록 하라.-는 전교를 내린다.

정조는 시각장애로 위축되거나 분노심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시각장애 속에서 조선의 개혁을 이루어낸 유능한 임금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임금도 장애는 거부할 수 없었다. 장애를 잘 수용하면 성군이 되고 장애를 부정하려고 하면 폭군이 되는 극과 극의 길을 걸었다. 조선시대에도 장애인 임금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장애인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를 부탁해> 연재를 마치며 필자가 부탁하고 싶은 것은 바로 장애를 장애인, 비장애인 우리 모두의 몫으로 받아들여 함께 해결해 가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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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동안 방송계에 몸담고 있는 방송작가이자 방송을 직접 진행하는 방송인입니다. 장애인 문학 발전을 위해 1991년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 문예지「솟대문학」을 창간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발간해오고 있습니다. 틈틈이 단행본을 19권 출간하고 있는데 주로 장애인을 소재로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우송대학과 의료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로 대학 강단에 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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