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장애는 고래 등짝과도 같이 무거운 콤플렉스이지만, 그로 인해 나는 ‘내 언어’, ‘내 말’로 소통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고 있다. ⓒ박현희

수많은 다름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거울로 자신을 들여다보고는 콤플렉스를 발견한다. 콤플렉스란 자신이 숨기고 싶은 것, 즉 단점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견주는 심적 거울을 품고 있기에 내면적으로 완벽한 자아를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숙명적으로 콤플렉스 하나씩은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진스런 아이의 눈빛과 새침때기와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나 역시, 고래 등짝처럼 무거운 콤플렉스 하나가 있다. 나는 그것을 ‘언어장애’라는 단어 대신 ‘내 언어’ 또는 ‘내 말’로 표현하고 싶다. ‘장애’라는 것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나만의 것’을 갖고 싶을 뿐이니까.

나만의 언어를 갖는다는 것, 나를 감추는 일

언어에 대한 콤플렉스가 내 안에서 싹트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였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소리를 내어 교과서 한 페이지를 읽었는데, 내 차례가 다가올 때면 선생님들은 번번이 읽기를 중단시키거나 다른 학생이 자연스레 내 대신 읽곤 했다. 분명 그 시간은 나에게 주어진 차례이고 의무였지만 왜 나에게 읽는 걸 허락하지 않았을까? 그 해답은 간단명료했다.

내 언어가 알아듣기 쉽지 않을 뿐더러 느리기 때문이었다. 이는 언어가 사회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견고해서 내 언어가 헤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뜻인 것이다. 그 이유를 안 그때부터 뭔가 억울하고 잘못되었다고 느꼈지만, 이것에 대항할 영특함이 없었던 어린 나이였기에 의욕과 밝은 ‘끼’를 내 안에 꽁꽁 묶어둔 채 말없고 내성적인 아이가 되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나는 얌전한 요조숙녀가 되어 어느 집단 속에서 관계를 맺거나 사람을 사귀기 위해서는, 사막의 칼바람을 맞으면서 홀로 외로움을 다스리며 걸어가는 사막여우의 지혜가 나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금세 눈치 챌 수 있었다.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그들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소통과 표현을 요구한다. 그래서 사람들 대부분은 가장 편하고도 전달이 용이한 ‘말’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자신을 시원스럽게 드러내며 어필하기에도 능수능란하다. 이처럼 일반화 된 말로 소통과 표현이 자유스러워지고 있는 사회적 현실에서 내 언어를 가지고 나를 표현하고 사회와 소통하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내게 언어에 대한 콤플렉스가 돋아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내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거나 잘 알아듣는 사람을 만나면, 캄캄한 밤하늘이 은은한 빛을 발하는 별을 만나듯 반갑고 무거운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기분이 들곤 한다. 그 반면, 내 콤플렉스를 툭툭 건드려 잠재된 분노를 끄집어내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자면 혼자 쇼핑을 다니거나 공공기관에 볼일을 보러 혼자 가면, 들으려 하지도 않고선 의사소통이 안 된다고 다짜고짜 보호자부터 찾으며 다음에 오라는 제스처로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몰지각한 사람들은 내 말을 듣는 것조차 귀찮게 여긴 나머지 나의 다름을 이해 혹은 용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콤플렉스의 양면성

보기와 달리 나는 그런 분류의 사람들을 접할 때마다 그저 당하고만 있을 유한 성격이 결코 아니기에, 바로 응징에 들어간다. 내 응징은 간단하다. 1단계는 그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알 수 있도록 내가 겪은 부당함을 편지에 논리정연하게 써서 그들에게 친절하게 전달해주고는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다. 1단계가 안 먹혀 들어가면 2단계로 가는데, 그 회사 사이트나 시청 사이트에 부당한 일에 대한 글을 올리는 마지막 작업을 한다. 내 응징을 통해 그들이 잘못을 깨닫고 사과를 할 때마다 짜릿한 통쾌함을 느끼게 되며, 내가 마치 장애홍보대사가 된 것처럼 알 수 없는 사명감까지 들기도 한다. 이러한 것을 보면 내 몸속 어딘가에서 정의의 소녀 세일러문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언어에 대한 콤플렉스로부터 앞으로도 내 자아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건 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또한,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콤플렉스가 나쁜 면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면을 동시에 지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름이 사회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을지라도 내 언어로 계속 사회와 소통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며, 나를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간 내 언어로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세상을 만나지 않겠는가.

*칼럼니스트 지미희는 뇌병변 장애여성으로서 사회의 통념을 깨고자 느리지만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글쓰기를 통해 남다른 감수성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그것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

(위 손가락을 누르면 보다 많은 분들이 기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전 국민이 즐겨보는 장애인 & 복지 뉴스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애여성은 장애남성과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장애여성 안에도 다양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한다. "같은 생각, 다른 목소리"에서는 장애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조금씩 다른 목소리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장애여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이제까지 익숙해 있던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