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호주여행을 통해 차별 없는 인식과 배려심을 바탕으로 해야만 장애인복지가 발전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권민혁

이십년 전 호주 여행에서 경험한 편의시설

엘리베이터나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는 요즘에도 장애인이 우리나라의 지하철을 이용하려면 어려움이 너무 많다. 리프트는 너무 느리고 전동차와 지하도 바닥의 높낮이가 맞지 않아 잘못하면 휠체어와 함께 추락할 위험까지 있다.

그러므로 이십년 전의 상황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십년 전, 우리나라의 지하철은 장애인들이 아예 이용하기 불가능한 교통수단이었다.

엘리베이터와 리프트가 없었고 집에서 역까지 갈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그 당시에는 전동휠체어도 장애인이 손쉽게 구할 수 없었고 수동휠체어를 밀고 다닐 정도로 도로가 정비되어 있지 않았었다.

그렇게 외출의 제약을 받던 내가 호주의 시드니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한벗회’ 라는 장애인이동 봉사대에서 기획위원장으로 일하던 당시, 기획위원이었던 장애인들과 편의시설 평가단을 꾸려 처음으로 외국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호주의 시드니에 도착한 순간, 내 눈길이 멈춘 곳은 지하철의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는 표지판이었다. 그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 보았더니 정말 그곳에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곳에는 경사로가 있었으며, 경사로가 어디쯤 있는지 알리는 표지판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더군다나 장애인이 어느 역에서 전철을 탔다는 걸 알게 되면 역무원이 장애인이 내리는 역에 나와 기다리다가 친절하게 케어를 해 주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우리 일행들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시드니의 도로는 지금의 우리나라보다 더 잘 정비되어 있었고, 민간단체들이 운영하는 장애인콜택시가 있어 장애인들이 외출을 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부러움과 감탄 속에서 우리 일행들은 그곳 시드니의 복지가 그토록 앞서갈 수 있었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처음 맛본 자유와 해방감

시드니의 국립도서관을 찾았을 때, 나의 감동과 놀라움은 극에 달했다. 그 도서관의 한쪽 책장에 숨은 듯이 꽂혀 있는 얇은 책 한권을 읽으면서 호주의 복지를 발전시키는 힘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책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파티에서 비장애인들이나 같은 장애인끼리 춤추는 방법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에도 휠체어 댄스를 하는 장애인이 있지만,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면 땅값이 내려 다고 반대하고 집안에 장애인이 있다는 걸 감추던 시대였으니 장애인이 휠체어로 춤을, 그것도 여러 사람 앞에서 추는 모습은 상상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 책을 보고, 호주사람들은 장애인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장애인들을 특별하거나 특이한 존재로 여기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호주에서는 장애인들이 몰려다녀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우리 일행들이 시드니의 골목을 누비고 다녀도 어느 한 사람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지 않았다.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도와주려고 하거나 하지 않으면서 세심하게 배려할 줄도 아는 사람들이었다.

해변가에서도, 산기슭에서도, 우리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나는 그러한 자유가 얼마나 해방감을 안겨주는지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내가 타인의 시선에 갇혀서 살아온 것이 엄청난 구속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시드니의 모든 편의시설을 체험하는 동안 나는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닌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어디에나 갈 수 있었고 어떤 일도 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내가 밝게 웃어도 어떻게 그리 밝을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혀를 쯧쯧 차며 안쓰럽게 바라보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은 내가 숱한 세월 동안 느껴왔던 장애는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만든 장애였다는 사실을 그곳 호주에서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아마도 장애인에 대한 호주 사람들의 차별 없는 인식과 배려심이 결국 호주의 장애인 복지를 발전시키는 데 원천적인 에너지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람들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만 복지가 발전할 수 있음을 호주여행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오늘도 비록 작은 몸짓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진옥씨는 기혼장애인여성연대 대표를 역임한 뇌성마비 장애여성이다. 장애여성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어나가려는 굳건한 의지와 실천력을 소유하고 있다.

장애여성은 장애남성과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장애여성 안에도 다양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한다. "같은 생각, 다른 목소리"에서는 장애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조금씩 다른 목소리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장애여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이제까지 익숙해 있던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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