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너꽃해> 시인 김종태 작품. ⓒ김종태

<도가니>는 역시 잘 된 소설이다. 마치 추리소설처럼 첫장부터 긴장감이 감돈다. 소설을 엮어가는 것은 작가의 몫이고 작가의 능력이다. 확실히 대단한 작가이다. 궁금증을 증폭시키면서 상황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듯이 잘도 썼다.

공지영이란 파워있는 작가가 장애인을 소재로 작품을 썼다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아니 작가한테 고마울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고맙다. 예전부터 장애인은 쭉 있어왔지만 장애인을 소재나 주제로 한 작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런 소재가 독자들을 끌어당길 수 없기 때문에 작가들이 장애인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작품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지영이 청각장애인 특수학교에서 발생한 성폭력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쓴 것은 이제 우리 사회가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했으니 말이다.

나는 <도가니>를 한 줄 한 줄 정성껏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었다. 독자인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인물은 자애학교에 부임해 온 강인호와 인권운동센터 간사인 서유진 뿐이다.

그리고 만약 소설 <도가니>를 두 줄로 압축해보라고 하면

-자애학교에 온 강인호가 학교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비리와 성폭력을 목격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농성하는 아이들을 뒤로한 채 학교를 떠난다-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청각장애인 특수학교에서 발생한 이 사건이 충격적이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청각장애인의 삶이 신기해서 소설을 읽어가는 재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 판에서는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기에 스토리가 주는 신선함은 없다. 다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집필했기에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도가니>가 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걸었었는데 소설책을 덮는 순간 그 기대가 지나친 욕심이었음을 깨달았다.

배롱나무, <너꽃해> 시인 김종태 작품. ⓒ김종태

소설 <도가니>에는 장애인이 없다. 청각장애는 소설을 엮어가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것은 장애인 관점에서 소설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인호의 시각이 아니라 성폭력의 희생자인 학생들 가운데 가장 똑똑해서 성폭력 사건을 세상에 알린 연두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갔어야 한다.

만약 성폭력 당사자인 연두가 주인공이었다면 <도가니>를 통해 독자들은 청각장애여성을 좀 더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소설에서조차 수화통역사를 통해 대화가 이어졌기 때문에 청각장애인의 목소리에 한꺼풀이 씌워질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안타깝다. 1935년에 발표한 계용묵의 소설 <백치아다다> 속의 청각장애인이나 74년이 지난 공지영의 <도가니> 속의 청각장애인이나 장애인은 여전히 핍박받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것이 서글프다.

-장애인 작품, 정말 잘 부탁드려요-

28년 동안 방송계에 몸담고 있는 방송작가이자 방송을 직접 진행하는 방송인입니다. 장애인 문학 발전을 위해 1991년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 문예지「솟대문학」을 창간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발간해오고 있습니다. 틈틈이 단행본을 19권 출간하고 있는데 주로 장애인을 소재로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우송대학과 의료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로 대학 강단에 서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