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녀의 필수조건, 밥보다 비싼 커피.

한국 사회에서 ‘된장녀’라는 단어가 특정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된 지 꽤 오래 되었다. 처음에는 능력도 없으면서 밥은 아웃백에서 먹고, 커피는 스타벅스에서 마시고 사진을 찍어 남기는, 주위 ‘어장관리남’들에게 프라다 핸드백을 뜯어내며 민폐를 끼치는 20대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요새는 그저 개념없는 여자들을 싸잡아서 된장녀라고 부른다. 능력이 있고, 개념이 있는 여성이라도 밥보다 더 비싼 커피를 자주 마시는 여자들을 된장녀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타벅스니 아웃백이니 하는 거대자본들이 20대 여성들의 욕구를 아이콘화하여 부추기는 것이기도 하고, 실상 20대 여성들의 ‘놀 문화’라는 것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 20대들의 ‘된장 플레이’의 주된 이유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나도 ‘된장녀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된장녀가 되고 싶다.

혼자 지하철을 타거나 시내에서 친구를 기다리면 여러 종류의 기분 나쁜 시선을 느끼게 된다.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다가와서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어보는 아줌마들,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슬며시 내 손에 누룽지맛 사탕을 쥐어주는 노인분들, 그 밖에 위 아래로 나를 훑어보는 끈적끈적하고 불쾌한 시선들. 나는 그런 시선들이 싫어 시내에 나가 친구를 기다릴 때면 언제나 한 손에는 스타벅스나 커피빈의 ‘비싼’ 커피를, 다른 한 손에는 ‘있어 보이는’ 종류의 책들을 들게 된다. 나는 당신들이 불쌍하게 쳐다볼 이유도, 도와줘야할 이유도 없는 평범한 20대입니다. 보이시죠? 나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정도의 능력과,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지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갈 길이나 계속 가시죠. 오해는 마시길. 나는 이렇게 허세를 떨고 나서 차비가 없어 콜택시 대신에 지하철을 타고와 기숙사에서 컵라면을 끓여먹는 돈 없는 학생일 뿐이니.

물론 나의 이런 허세 된장 플레이가 항상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아니다. 간혹 부작용도 있다. 신촌에서 ‘된장’으로 무장하고 콜택시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소주에 파전을 먹은 것 같은 냄새를 풍기는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혼자 오셨어요?” 내가 혼자오든 말든 댁이 무슨 상관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해코지를 당할까 싶어 친구와 같이 왔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그 아저씨는 “혼자 오셨으면 커피라도 한 잔 할까 했지요”라고 묘한 썩소를 지으면서 가버렸다. 학교에 있다고 이런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에 사람이 많으면 커피를 사서 카페 한 구석에서 혼자 공부를 하기도 한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복음을 전파하시는 분’들의 미끼가 된다. 내 자신이 기독교인이기도 하고 기독교나 기타 종교에 악감정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는데, 종교가 있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끊임없이 “좌절하지 마십시오. 힘드시죠? 기도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내 집중을 방해하는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주위에 앉은 수많은 커피남/커피녀들을 두고 굳이 공부를 하는 나에게 접근하는 이유가 ‘장애인이므로 의지처가 필요할 것이다’라는 계산을 통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짜증뿐만 아니라 화까지 치밀어 오른다.

내가 어디에서 누구를 기다리던 간에 끈적끈적한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자유를 허하라. 수단이나 아이콘으로서가 아니게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자유를 허하라.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향을 즐기며 평온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나에게 혼자 있을 자유를 허하라. 나에게 된장녀를 허하라!

서울대 화학부 04학번,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 진학 예정. 커피와 고양이, 책을 좋아하고 식상함과 무기력을 싫어하는 스물다섯의 귀차니스트. 다년간의 관악산 휠체어 라이딩으로 다져진 팔근육과 연약해 보이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지체장애인. '대중의 과학화'를 꿈꾸며 멋진 저술가가 되고 싶은 평범한 과학도. 내게는 일상인 풍경들 속에 나 역시 풍경으로 비춰질까, 부조화한 이방인으로 비춰질가 오늘도 고민-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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