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서 정확히 5개월 반이 지남으로써 제가 에이블뉴스에 칼럼을 쓰게된지 반년이 되었습니다. 정확히 지금까지 써온 날만큼, 앞으로 쓸 수 있겠지요.

‘기말고사’기간이 여전히 존재하는, 다소 구닥다리적인 학교생활을 이 나이 먹도록 하는 중이라, 6월에도 글쓰기를 지체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실 오늘은 별다른 주제를 담은 글쓰기는 아닙니다. 다만, 왜 이렇게 칼럼을 쓰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지, 반환점을 맞아 간단한 성찰(좋은 말로 하면 성찰이고, 오히려 정확한 단어는 ‘투덜거림’이 되겠습니다.)을 좀 해 볼까 합니다.

1. '시국선언'의 시대

칼럼을 본래 쓰려고 마음먹을 당시에는, 머릿속으로 구상한 여러 가지 주제들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장애인의 ‘연애’나 ‘사랑’을 담은 이야기도 있고, 장애인의 권리와 ‘동물의 권리’에 대한 다소 급진적인 논의도 생각해두었고, 교육권이나 노동권 같은 급박한 문제 이외에도 장애인으로서 경험하는 여러 가지 감각들에 대해 썰을 풀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 몇 가지는 어설프게나마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만, 당황스럽게도 점점 그런 글을 쓰기가 ‘민망’해지는 나날들이 다가온 것입니다.

그야말로 시대는 제가 태어난 80년대로 돌아가는 듯합니다. 다큐멘터리 PD를 검찰이 잡아가 조사를 하고, 인터넷에 글을 올린 사람을 구속기소하는가 하면, 봉쇄된 광장 주변에 경찰들은 곤봉을 든 채 시위대를 후려치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전직 대통령은 자살을 하고, ‘좌파서적’을 검열한다면서 서점가를 뒤지라는 정부 공문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한 시대를 살기 ‘쪽팔리는’ 때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이러니 사람들의 저항도 과거로 회귀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가에는 시국선언문이 발표되었지요. 그런데 이런 시국선언의 시대가, 그야말로 장애인의 기본권과, 그 기본권에 아직은 해당되는지 안 되는지 모를 이슈를 제기하는 글쓰기를 민망하게 만들어버린 겁니다.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권리는 언제나 이런 거대한 사회적 싸움 앞에서 뒤로 밀려나야했습니다.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주장은, 기본적으로 모든 시민이 ‘기본권’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적, 현실적 전제위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국민전체의 기본권이 심대하게 흔들리는 시대가 되니, 장애인의 권리를 말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시점이 된 것입니다. 80-90년대 장애인운동들이 민주화와 독재타도라는 대의앞에서, 장애인만의 고유한 억압과 차별을 말할 기회를 갖기 어려웠던 것처럼 말이지요.

게다가 저는 그‘기본권’이라고 인정된 것들 이외의 이야기들도 꺼내고 싶었으니, 이러한 상황은 저를 참 힘들게 합니다. 노무현전대통령의 죽음, 용산참사, 그 시점에서 솔직히 더 이상은 “야한장애인 담론”을 꺼내기 어려웠습니다.

어쩌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놓이게 되었을까요. 앞으로 남은 6개월 간 저는 어떤 글을 쓸 수 있고, 써야할까요. 이런 우울하고 촌스러운 시대 한 가운데서도,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다양한 감각들이 우리의 감각 속을 자유롭게 건너다닐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촌스러운 시대를 맞이하는, 세련된 전략을 찾아나서는 것, 이것이 앞으로의 과제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2. 다른 칼럼니스트들은 어디로 갔을까

6개월간 글을 써오면서, 참으로 불성실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본래 계획은 한 달에 3편 가량의 글을 올린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평균 2편 정도쯤 올린 것 같습니다. 다소 무리한 계획이기는 했지만,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글을 올리기 ‘민망한’ 이유중에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이 불성실한 저조차 글을 올리기 뻘쭘할 정도로, 다른 칼럼니스트 분들의 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들도 ‘시국선언’의 시대에 할 말을 잃으신 걸까요? 저는 여러분들의 글을 즐겁게 읽고 있었습니다. 다음 글들이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저와 같은 독자들이 여럿 계실 테니, 이 민망하고 뻘쭘한 시대에도 불구하고 좋은 글들을 써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어 지원을 했으나 뽑히지 못하신 분들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말이지요.

에이블뉴스의 독자가 얼마나 되는지, 어떤 분들이 읽고 계신지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끔씩 메일을 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누군가 제 글을 읽고 관심을 가져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책임감을 가지려 노력합니다. 남은 반년간은 이 ‘시국’에도 불구하고, 이 ‘뻘쭘’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주제들을 제기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제 글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 비판 등도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20대 후반의 지체장애인. 태어나서부터 10여 년간 병원생활을 했다. 초등학교 검정고시, 특수학교 중학부, 일반고교를 거쳐 2003년 대학에 진학해 사회학을 전공했고, 2009년부터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우주와 관련한 서적이나 다큐멘터리, 생물학 서적, 연극, 드라마, 소설 등을 좋아한다. 스스로 섹시한 장애인이라고 공언하고 다니지만 가난하고 까칠한 성격에 별 볼일 없는 외모로 연애시장에서 잘 안 팔린다. 신이나 사람, 어떤 신념에 의존하기보다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고자 노력중이다. 직설적이고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화법을 종종 구사해 주변에서 원성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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