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넓다. 총 면적이 140만㎡ 정도라고 하는데, 학교 내에서 셔틀 버스가 운행되고, 오토바이나 스쿠터를 타고 강의동을 이동하는 학우들을 종종 만날 수 있을 정도이니 아주 넓다고 해야겠다. 그냥 넓기만 하면 좋겠는데, 인근 주민들이 ‘등산’을 하러 올 정도로 지대도 높은 편이다. 나처럼 휠체어 라이딩이 불가피한 장애학생들에게나, 높은 힐을 신고 통학을 하는 여학우들에게나, 물론 건장한 학우들에게도 학교 내에서의 ‘이동’은 만만찮은 일이다. 그리고 이 넓고 높은 지대의 학교에서 ‘이동’만큼 중요한 것이 ‘휴식’이다.

넓고, 높은 지대의 학교. 그 내부를 이동하는 것도 충분히 '난이도'가 있는 미션이다. ⓒ서울대 장애인권연대사업팀

학부 시절동안 수업 중간중간 시간이 남는 ‘공강’ 시간에, 급하게 ‘휴강’이 될 때에 나는 주로 도서관에 있었다. 나의 친구들이 쉬이 오해하던 것처럼 쉬는 시간을 쪼개 틈틈히 공부를 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었고, 그렇다고 사람들과 잘 어울릴 줄 몰라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보통의 학우들은 쉬는 시간이 생기면 ‘과방’이나 ‘동아리방’과 같은 자치 공간에서 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공간들은 대부분 장애배제적이다. 아직까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 있어 자치 공간 자체에 접근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공간 자체에 접근이 가능하더라도 휠체어로 드나들기 빠듯한 공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루 종일 앉아있다보면 허리가 아프고, 다른 친구들에 비해 쉽게 피로를 느끼는 나는 꿀 같은 휴식 시간에 잠시 누워 피로를 풀고 싶은데, 쉼없이 사람들이 드나들고 대화가 오고가는 공간에서 휠체어를 옆에 두고 누워있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절대 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쉬는 시간이 생기면 도서관 열람실에 엎드려 누워있거나 내가 소속되어 있던 자연대에서 멀리 떨어진 동아리방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이 공간도 최근에는 세 개의 동아리가 함께 쓰게 되어 휠체어 한 대가 들어가기도 힘든 곳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나 혼자만이 겪는 일이 아니라 학교에 존재하는 70명이 넘는 장애학생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학교 내에 장애학우의 ‘휴식’을 위해 주어진 공간은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권리, 학교 내에서 이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해왔다. 건물마다 엘리베이터가 생기고, 학교에는 장애학생 셔틀버스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청각장애학생의 수업권을 위해 대필도우미 제도가 생기고,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속기사 제도가 도입되었다. 대학이라는 공간 내에서 ‘다른 몸’을 가졌기 때문에 겪을 수 밖에 없던 문제들을 우리는 ‘수업권’, ‘이동권’과 같은 단어로 치환해 ‘다른 방식’으로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까지 시기상조인 것처럼 보이는 ‘휴식’의 권리를 말하는 것은 어떤가. 장애학생들의 몸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휴식할 수 없다는 것은 수업을 들을 수 없고, 이동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응당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이유로 나의 동아리 친구들은 지난 학기부터 학교에 ‘장애학생 휴게실’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누구나 접근하기 쉽고, 학교의 중심에 존재한 '학생회관'에 휴게실이 생길 것을 요구한다. 서점, 약국, 은행, 동아리방 등이 존재해 학교생활의 중심에 놓인 ‘학생회관’에 작년까지 엘리베이터가 없었기 때문에 장애학생은 학교생활의 중심에서 어쩔 수 없이 외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얼마 전 그곳에 엘리베이터가 생겼고, 접근성 외에도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으로 학교 생활의 ‘중심’에서 그 권리를 행사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로도 그 공간에 ‘장애학생 휴게실’이 신설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이 단순히 휴게실을 확보하려는 노력으로만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장애학생 휴게실 확보의 노력은 대학교라는 공간에서 비장애인 중심의 공간 체계를 장애친화적으로 바꾸려는 시도이다. 또한 그 공간에서 장애학생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정보를 교류하고 여론을 형성시키며 학내 다른 문제들을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캠퍼스를 위해서, 나는 이제 장애학생의 ‘휴식권’을 요구하고 싶다.

서울대 화학부 04학번,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 진학 예정. 커피와 고양이, 책을 좋아하고 식상함과 무기력을 싫어하는 스물다섯의 귀차니스트. 다년간의 관악산 휠체어 라이딩으로 다져진 팔근육과 연약해 보이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지체장애인. '대중의 과학화'를 꿈꾸며 멋진 저술가가 되고 싶은 평범한 과학도. 내게는 일상인 풍경들 속에 나 역시 풍경으로 비춰질까, 부조화한 이방인으로 비춰질가 오늘도 고민-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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