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견 하나를 주제로 독자 여러분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는데 필자의 게으름과 무지의 탓으로 만족스러운 결과에 도달하지 못하여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1년 동안 필자가 남긴 몇 가지 이야기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장애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사회 참여의 기회를 확대하며,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시민 태도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모든 활동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해 보자.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각자 고민하게 되고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 보편타당한 진리를 만들어 가치를 계승하며 제도를 구성한다. 이들이 다시 모여 법으로도 규정하지 않는 상식의 개념 하에 놓인 윤리의식과 도덕, 관습 등을 만들어 내고 또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리고 나면 또 다른 상식이 허용되는 사회가 도래한다.

장애인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참여시키기 위한 모든 비장애인의 노력과 장애인 당사자의 투쟁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위해 성립된 것이다. 결코 인권을 중시하는 몇몇 선각자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변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가 여전히 아쉬움을 금치 못하는 것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인간 본연의 특성이 빚어낸 이 땅의 모든 상식선상에 아직도 안내견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필자는 본 코너를 통해 안내견은 시각장애인 당사자에게도 큰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이를 둘러싼 주변 구성원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까지 두루두루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는 버르장머리 없는 생각으로 안내견의 장점을 논한 적은 단연코 한번도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 가진 물건을 자랑하기 위해서만 열을 올리는 분들은 내게는 단 하나의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조금 귀찮긴 하지만 좋은 보험상품 하나라도 팔려고 하는 설계사가 내게는 더욱 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순간도 어딘가에서는 안내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거부하거나 부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한 태도를 지닌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 대상에 대한 비호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안내견으로 인해 시각장애인 한명이 이 땅에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익을 따져 본다면 결코 욕을 해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안내견 뿐만 아니라 독립적 주체로서 생활할 수 있도록 계발된 모든 장애인 보조도구가 이에 속한다.

안내견을 기피 하는 일부 사람들은 곰곰이 생각해주길 바란다. 안내견이 시각장애인에게 의미하는 바에 준하는 정도의 의미를 자신이 시각장애인에게 되돌려줄 수 있는가를….

어떤 이들은 안내견을 두고 사람을 위해 한 평생을 희생하는 노동자와 같은 시선으로 취급한다. 이 주제도 지난 글에서 한번 다룬 적이 있다. 그 글에서 필자는 안내견과 시각장애인 사용자 간의 관계를 주종 관계로 인식하고 있는 잘못된 부분들에 대하여 큰 우려를 필역하였다. 다시 언급한다. 안내견은 시각장애인 사용자를 통해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시키는 또 하나의 주체적 산물이다. 반면 안내견사용자 역시 안내견을 통해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는 주체적 산물이다. 이 둘은 서로를 위해 살아갈 뿐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하는 따위의 위선적 언행을 지니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커다란 행복을 추구하려는 속성을 지니기 마련이다. 엄밀히 따지면 행복의 수준을 큰 것에서 찾고자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더욱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모든 상황의 요소에서 벌어지는 웃음 따위는 행복으로도 취급하지 않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큰 행복감을 느끼기 위하여 희생하면서 느끼는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결국 그 스트레스가 궁극적 행복을 앞당기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는 것 또한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강토와 채송이, 그리고 이곳 안내견학교에서 훈련받고 있는 모든 강아지들은 내게 진정한 행복을 깨닫게 해준 스승들이다. 옆에서 가만히 잠자고 있는 녀석들의 얼굴만 보고 있어도 입가에 웃음이 절로 나고, 목에 채우는 견줄 소리만 살짝 나도 벌떡 일어나 부스스한 몸짓으로 달려오는 녀석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따뜻해지고, 지겨움에 못 이겨 장난감 들고 와 눈치 살살 보며 무릎 위에 얹어놓고 도망가는 녀석의 능청에 다시 웃음이 터지고, 누가 보면 아무것도 아닌 꼬리짓 한번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나는 충분한 삶을 살 가치가 있는 존재라 생각한다. 비로소 행복의 참 뜻을 깨닫는 순간이다.

본래 하늘에서 정한 나의 수명보다 약 5년은 더 살아야겠다는 강한 생명 연장의 의지가 불타오른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내게 행복을 전해준 소중한 생명들에게 무언가 보답하고 싶어서다.

우리 가족에게 나는 어떤 존재의 가치로 여겨져 왔는지를 고민해 본다. 시각의 장애를 지닌 자녀를 대하는 일반적 부모의 태도는 상반된 큰 두 줄기로 나뉜다. 과잉보호와 절대 무시다. 우리 부모님은 이 중 전자에 해당한다. 과잉보호라 하여 무조건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심 자녀의 지식 및 일상을 대하는 태도, 주어진 과업 수행의 기능 등을 과소평가 하는 것 역시도 같은 분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항상 보호 받아야 할 존재, 따로 분리된 관리 대상자로서의 존재적 인식의 틀 속에 갇혀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태도를 지닌 우리 가족을 나무랄 의도는 전혀 없다. 오히려 절대적 무관심으로 일관하지 않고 지금까지 지켜봐 주신 것에 너무나 감사한다.

안내견은 보살핌의 대상이며, 관리의 대상이다. 그 관리자는 시각장애인사용자 당사자다. 그러므로 안내견에 대한 모든 책임 또한 안내견사용자 당사자에게 있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지 스스로 깨닫도록 만들어준 안내견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신 부모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제는 우리 가족도 안내견으로 인해 많이 변했다. 특히 서로를 대하는 관계의 틀에 변화가 찾아왔다. 일방적이고 수직적 관계가 아닌 서로의 위치를 바르게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어 가는 시기를 맞고 있다.

어떤이들은 안내견이 정말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정도의 파워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하여 의문을 가질 것이다. 필자는 그 의문을 잠재우기 위한 더 이상의 어떤 글도 쓸 수 없다. 즉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내용들은 필자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한 마음으로 부터의 솔직함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다음에 다시 이 지면을 통해 여러분과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좀 더 세련된 예들로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거듭 감사드린다.

선천성 시각장애로 특수학교(대전맹학교)를 나와 2002년 창원대학교에서 특수교육과 사학을 복수전공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첫 안내견 강토와 만나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수준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방의 열악한 현실에서 안내견 강토의 활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시각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일깨워 주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지난 2005년에는 삼성화재 공익광고에 출연하여 대한민국광고윤리대상을 수상하였고, 안내견에 대한 대중의식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 입사하여 시각장애인에게 안내견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홍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시각장애인 및 안내견 인식개선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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