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아. 풀의 싹 ; 생명의 기원, 삶의 근간을 바탕으로 하는 힘을 뜻한다. ⓒ이상호

초아 2

(草芽 - 풀의 싹 ; 생명의 기원, 삶의 근간을 바탕으로 하는 힘을 뜻한다)

백남은 학원에 1년 일찍 들어왔다. 말끔한 외모에 훤칠한 키, 헤픈 씀씀이, 1년을 일찍 들어왔으니 모두 넉넉한 집안에 영재인 줄 알았다.

수업은 관심 없고 관계를 위한 술자리만 집착했던 백남은 K를 만났다.

K는 장애인이었다. 이런저런 상흔 끝에 갈 길을 헤매던 K는 잠깐 지나가는 여정이라 여기며 학원에 들어왔다. 백남과 k의 어정쩡한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k에게 털어놓은 백남의 여정은 공황이 올 정도의 삶이었으나 백남은 아무렇지 않은 듯 털어 놓았다.

백남은 고아였다. 일찍 부모를 여위고 삼촌 집에서 자랐던 그는 17살에 집을 나왔다고 했다.

집을 나온 백남은 이런저런 여정 끝에 나이트(무도장)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화장실 보조 이었다.

춤을 추고 땀을 격하게 흘린 손님이 화장실에 들어오면 세면대에 얼음을 채워주고 수건 등을 챙겨 주는 일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환락에 젖은 무도장은 마약이 거래되고는 했다.

환락을 증폭시키기 위해 손님들은 마약을 찾았고 마약은 은폐된 룸에서 거래되고는 했다. 잠깐을 이기지 못한 마약 투여자들은 간혹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했다.

약에 절은 손님을 호텔이나 룸으로 옮겨야 했으며, 투약 이후 뒤처리까지 감당해야 했다. 운이 닿지 않을 경우에는 공범으로 사법처리 될 수 있는 위험은 있었으나 생존을 이어가야 했던 백남에게는 뒷돈의 유혹은 강렬했다.

생존을 이어가야 했던 백남은 본격적으로 마약장사에 뛰어 들었다고 했다.

약을 건넸으나 돈을 때이기도 했다. 마침 그는 그 바닥에서 알아주는 폭력배였다. 받을 생각 말라던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백남은 그를 찾아갔다.

어린놈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낄낄 데던 그의 등에 백남은 쌍도끼를 꽂았다. 보복을 피해 잠수를 탔던 백남을 찾아냈던 그는 백남을 산으로 끌고 가 산체로 묻으려 했다. 몸이 거의 반 쯤 묻혔던 백남은 삽자루를 진이들에게 염산을 뿌리고 탈출했다. 경찰에 자수했다고 했다.

백남은 마약장사를 통해 모은 꽤 많은 돈은 숨긴 체 소년원에 입감됐다.

백남은 소년원에서 대학을 준비했다. 소년원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었던 백남은 모범수가 되어 가출소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소년원은 온갖 양아치들이 즐비했었다. 자신을 생계형 범죄(?)라고 믿었던 백남은 다른 이들과는 어울리지 않은 채 죽을 힘을 다해 공부만 했다고 한다.

충분히 나쁜 짓(?)을 했으니 대학에 가면 의로운 일을 꼭 하리라 마음 먹었다고 한다. 이런 궤적을 백남은 17살! 집을 나올 때부터 준비했다고 한다.

돈을 위해 사고 한번 크게 치고 빵에 갈 생각을 말이다.

k가 기억하기에 백남은 영민했으며, 독했고, 세상에 단맛 쓴 맛을 다 아는 이였다.

백남에게 삶이란 내내 춥고 어두웠으니 의로운 것에 대한 남다른 신심이 내재되어 있기도 했다.

수열은 홍릉 갈비 집 아들이었다. 청량리에서 외대 쪽을 가다보면 수십 년 된 갈비집들이 늘어서 있었고 홍릉 갈비라는 이름으로 나름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도대체 공부에는 관심 없고 그림만 그렸던 수열이 에게 아버지는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예술 대에 입학해서 교수가 되라 했다.

수열은 190cm의 키에 180kg에 덩치를 갖고 있었다.

k와 백남이 수열과 말 하려하면 고개를 90도 이상 고개를 들고 애기해야 했다. 하늘을 쳐다보고 애기하는 기분이었다.

덩치와는 달리 수열은 심성이 고왔다.

적당한 건달기(?)가 있는 k와 진짜 깡패(?) 출신인 백남과는 사뭇 달랐다.

신입생 환영회 때 같은 줄에 앉아있었던 셋은 구호와 투쟁가가 흘러 넘치는 그날의 분위기가 쌩뚱 맞아 도망쳐 나왔다.

넉넉한 용돈이 있었으니 술집을 찾아 밤새 시간을 나누었다.

십대의 회한, 눈물, 희망 등등

수열은 k와 백남의 십대에 대한 연민이 있었다.

둘을 따뜻이 보듬을 생각을 했다고 한다.

수열과 백남에게 십대와 이십대를 가르던 그해는 희년이었다.

k를 제외하고 말이다.

수열은 그의 심성대로 백남을 친 형제마냥 돌 봐주었다.

지방 캠퍼스였던 학원에서 백남은 종종 아무도 모르게 종적을 감추고는 했다. 술에 만취한 상태로 돌아오곤 했다.

자취방에 백남의 자리를 마련하고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면 해장국을 끓여 내기도 했다. 한 달을 넘게 같이 지내도 통 가족과 연락이 없던 백남의 궤적을 수열은 눈치로 짐작하고 있었다.

만행 (萬行 - 불교에서 말하는 대중, 민중의 삶에 대한 행보)

학원은 대동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학원에 통 재미를 못 붙이던 백남과 k는 한판 제대로 놀아보자는 심산으로 대동제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효선 누나는 예대에서 대동제 준비 짱으로 일하고 있었다.

밤을 새워 홀로 일을 하던 효선 누나는 한손이라도 아쉬운 형편이었다.

대동제 주변을 기웃거리던 백남과 k, 수열을 붙잡고 술은 얼마든지 사줄 테니 도와달라고 했다. 기운은 넘치고 술도 공짜인데다가 관계를 넓힐 수 있으니 셋은 낼름 동하였다. 그날부터 효선이 누나를 따라 셋은 학원에서 밤을 새우곤 했다.

동아리와 과별로 터를 만들고 주막을 세우기 위해 거의 토목공사 수준에 일을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학원을 온통 현수막으로 포장해야 했고 걸개그림, 기념티를 만들기 위해 실크인쇄, 대자보 제작 및 부착, 학교 입구 넓은 마당이 가들 찰 정도로 그림을 그려야 했으며, 강의실과 동아리방 곳곳 마다 들러 대동제 참여를 홍보해야 했다. 지역 주민한마당도 멋스럽게 꾸려내기 위해 공연단을 만들어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노래도 하고 춤도 추었다.

공장에서는 노동자와 함께 했으며, 시장에서는 노점상 어머니들과 함께 했다. 시 외곽 가난한 농민, 빈민들과도 함께 했다.

20여 일간을 거의 잠 한숨 못잔 체 대동제를 준비했다.

대동제는 성공적이었다. 수업이 없었음에도 학우들은 일부러 대동제를 찾아왔다. 학우들, 거의 전부가 참여했고 지역주민 분들 역시 꽤 많은 참여와 호응을 보내주셨다. 이런 저런 수익은 지역주민 분들에게 돌아갔고 학우들 역시 이런 모습을 흐뭇한 웃음으로 지지 해 주었다.

마지막 날 ! 치우는 것은 다음날 해도 되니 오늘은 마음껏 취하리라 다짐하고 백여 명의 대동제 일꾼들이 뒤풀이를 시작했다.

졸업한 선배들이 일부러 찾아와 격려해 주었다. 그날 학원은 내년 대동제에 대한 다짐, 빈자들과의 시간에서 느낀 아픔, 이후 그들과 나누어야 할 삶에 대한 희망들이 넓은 교정에서, 각자의 가슴에서 희년으로 교차하고 있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아름다운 날이었다.

만행 (蠻行 - 야만스러운 행위)

다음 날 세 명 모두 좀비(?)로 발견됐다.

백여 명의 술꾼들은 새벽이 올 무렵 모두 집으로 돌아갔건만 셋은 끝까지 남아 만용을 부렸다. 집으로 갈 것을 재촉 했건만 계속 마셔야 갰다는 셋을 얼어 죽지는 않겠다 싶어 선배들은 그냥 내버려두고 갔다.

다음 날 아침! 백남은 빤쓰만 입은 체 동상을 껴안고 자고 있었다.

백남은 잠자리에 들 때면 항상 옷을 벗고 자는 습관이 있었다.

빤쓰 바람에 껴안고 잤었던 것은 마침 조소과 학우들이 만들어 놓은 소녀상이었다. 아침 등교 길에 백남을 발견한 여 학우들은 분을 참지 못하고 총여학생회에 일러 바쳤다.

k는 잔디밭에 누운 체로 잠을 깼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k를 보고 낄낄 데며 웃었다. 대동제 기간에 잔디밭에서 잘 수도 있지! 왜들 그러나 ! 하는 심정으로 툴툴거리며, 화장실에 들러 씻으려 하는 순간 k는 낮을 들 수 없었다.

얼굴에는 토한 자국이 밤샘 술자리에 상흔을 대신하고 있었다.

누운 체로 토했으니 얼굴에 온통 토사물이 흥건했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잔디밭에 누워 자던 k를 쳐다보며 웃는 학우들을 원망했던 것이다.

당근, 김치 국물, 오징어 다리, 밀가루 반죽 등등이 k의 얼굴에서 각자의 위치를 마련한 채 k를 원망하고 있었다. 술안주였던 파전의 흔적이었다.

수열은 정말 죽을 뻔 했다. 술자리 내내 덩치 값 하라며 선배들은 소주를 냉면 사발에 부어 먹였고 실성한(?) 수열은 아침이 올 무렵 잔디밭에 풀을 뜯어 먹으며 소 울음을 내고 있었다.

엄마 ! 살려 주세요 !엄마 백남이를 살려 주세요! 엄마! 엄마! k를 살려 주세요! 엄마!를 반복해서 중얼 거리며 풀을 뜯어 먹으며 울고 있었던 것이다.

수열은 아마 빤쓰 바람에 잠이 든 백남과 토한 채로 잠이든 k가 술 취한 정신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것 같다. 수열은 뺨을 몇 대 맞고 찬물에 목욕을

하고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고 한다.

대동제 마지막 날 아침 ! 50m 반경 안에서 셋은 그렇게 발견됐다.

백남은 총여학생회 선배들에게 무릎을 꿇고 읍소를 해야 했다.

성적 수치심을 자극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는 백남의 진정성은 받아 들여졌으나 한 달 동안 총여학생회 청소를 명 받았다.

k는 수치심에 얼굴을 들 수 없어 한 달여를 학생회관 근처에는 가지 못했다.

수열은 술 취한 정신에도 동료 학우들을 걱정하며 소 울음을 냈던 것이 귀감(?)이 되어 총학생회 상품으로 학생식당 식권 30장을 받았다.

선배들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풀을 뜯어 먹지 말라 했다.

시상식은 웃음바다로 끝났다.

셋이 대동제와 함께 보냈던 그 해는 평생 잊지 못할 날들이었다.

타는 목마름

셋 중 제일 먼저 학생회 문을 두드린 것은 백남이었다.

효선 누나의 영향이 컸다. 진작에 백남의 만만치 않은 삶을 눈치 챈 것도 효선 누나였고 대동제 만행에서 백남을 구출 해준 것도 그녀였다.

효선 누나는 가난한 노동자의 딸이었다.

배움에 한이 맺혔던 그녀의 아버지는 한사코 가지 않겠다던 그녀를 등을 떠밀다 시피 대학에 보냈다. 곧이어 등록금을 내지 못하게 됐으니 그녀는 졸업장을 학원에서 얻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기나긴 삶이고 보면 졸업장 이라봐야 쓸데없는 청춘의 단상이라 했다.

그녀가 학원에서 얻고자 했던 것은 졸업장이 아닌 삶을 어찌 살아 내야 할지에 대한 물음이라 했다. 평생을 누구하나 상처 주지 않고 성실하고 진정성 있는 삶은 살아냈던 그녀에 아버지가 왜 가난하고 천대받아야 되는지, 왜 자식들에게 항상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등록금을 내지 못해 휴학을 해야 했던 그녀가 아버지에게 말을 전한 날 ! 그녀의 아버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딸에게 술 한 잔 하자 하셨다고 한다.

몇 순배의 술을 무릎 꿇고 받아내던 그녀가 그날 들을 수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내내 울음 섞인 목소리가 섞인 미안하다는 말이 전부였다고 했다.

아버지를 잠자리에 모시고 난후 그녀와 어머니는 밤새 울었다고 했다.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서로에게 한 없이 미안해 하던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효선 누나는 휴학을 하지 않았다.

자퇴를 했다. 자퇴서를 내고 학생처를 나서는 날! 셋과 함께 술을 마셨다.

누나는 아버지를 되뇌이며 울기만 했다.

학생회일은 백남에게 돌아왔다. 도무지 활동이란 것은 몰랐으니 그저 학생회실에 학우들이 많이 모이고 어렵고 힘든 일들을 나누면 되는 줄 알았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을 했다. 백남 역시 학교를 졸업 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으니 효선 누나의 수순을 밟을 요량이었다.

잘 이해는 되지 않았으나 선배들에 열정은 맞는 듯 했다.

자국의 국민을 학살한 사람이 버젓이 대통령이 되어 있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고 수많은 가난의 원인은 가난한 자에게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백남 보기에 정권은 별 것 아닌 영화조차 검열을 강요했고 폭력으로 상영을 막아섰다.

영화가 상영되는 날! 학우들의 몇 배가 되는 경찰은 학원을 포위하고 학내로 진입했다. 몸으로 막아서던 백남은 방패에 머리가 찢겨 졌고 이를 보던 수열은 경찰과 맨 앞에서 맞서게 된다.

내 친구 왜 때리는 데 ....... 이 씨팔놈들아 ........

야 노란 옷 너는 내꺼야 ......

수열은 마침 노란 옷을 입고 있었다. 덩치가 산만했던 수열을 경찰은 리더로 착각했던 것이다.

수열이 몇 차례 저항을 하던 중 경찰은 그를 에워싸고 수열을 구하려던 백남은 수열과 포위되고 말았다. 경찰은 린치 수준으로 둘을 다뤘다. 둘은 기절했다. 둘다 머리가 깨졌고 백남을 몸으로 막아섰던 수열은 갈비뼈까지 부러졌다. 피투성이가 된체 병원으로 향했다. 종종걸음을 치며 병원에 도착한 효선 누나는 자기 탓이라며 울고 있었다.

시대는 그녀의 아버지에 탓도 아니었고, 수열과 백남의 탓도, 그녀의 탓도 아니었다. 가지지지 못한 가난한 이들의 탓은 더더욱 아니었다.

해안 (解顔 - 앞길을 열어 길을 밝힘)

셋과 효선 누나는 각자의 삶을 살아냈다.

효선 누나는 노동자가 되어 있었다. 노동자의 딸이니 노동자가 된 것은 당연한 것이라 했다.

학교를 자퇴한 효선 누나는 일찌감치 공활(공장 활동 - 위장취업 전 사전 현장 활동: 국가안전기획부 좌경용공용어 해설집 1988)을 했다.

물 만난 고기마냥 공활을 끝냈던 그녀는 곧 노동자가 되었다.

옆에서 보기에도 그녀는 학생보다 노동자가 어울렸다.

수열은 경찰에게 얻어터진 것이 억울해 학생회 활동을 시작했다.

백남도 곧 학교를 떠났다. 졸업을 할 정도의 돈은 없었다. 있다 해도 길이 아닌 듯 했다. 백남은 수열에 대한 보은 이라며, 학교를 떠났던 마지막 해를 온 정성을 다해 후배들을 돌보며, 함께 했다.

수열은 날로 성장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

그런 수열을 백남은 온 조력을 다해 학생회장으로 만들어 냈다.

선거가 승리로 끝난 날 !

백남은 수열에게 떠날 것을 말했다.

그 날 셋은 아름다운 기억들을 되뇌이며, 이후를 다짐했다.

삼십대 중반쯤에 서로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효선 누나와 백남은 결혼을 했고 갈비집 사장이 됐다.

홍릉 갈비집의 노하우가 전수된 것이다.

수열은 결혼을 했고 이혼을 했다. 두 딸과 함께 ...........학원 원장이 됐다고 한다. 또 다른 셋은 그렇게 행복하다고 했다.

어떤 연유인지 모르나 청춘의 다짐은 뒤로 한 채 효선 누나와 백남, 수열은 일상으로 돌아 간 것이다.

그들을 미워했던 만행 蠻行(야만스러운 행위)을 잊기 까지 꽤 많은 시간을 k는 힘들어 했다.

만나지 않겠지만 만난다면 술자리가 될 것이다.

아니 효선누나는 백남이 하고 결혼하면 어떻게 ?

족보가 콩가루가 되잖아! - 수열

너는 왜 이혼했냐? 주제도 모르고 ......... - 백남

여자를 셋이나 데리고 살기 힘들어 하나 정리했다 - 수열

지랄은 .........

백남은 이십대에 자신을 가족처럼 돌보던 수열의 불행이 가슴 아팠다.

이제 민간인이 다 됐구나! - k

나도 이제 보수 반동이다 .......... - k

야! 너 아직도 데모 질 하고 다니다며 ..... - 수열

미안하다 ! 무슨 ............ 뭘 미안해 ........

언제고 가족들 다 데리고 여행가자 ..........

아니 느슨해 질까봐 싫다 ........

아니 나는 아직 너희 들이 20살로 보인다.

다른 모습은 보기 싫다.

k에게 그들은 등 푸른 이십대의 단상 그대로 였다.

십대의 회한과 함께 말이다.

에필로그 [epilogue 혹은 뒷 담화문]

그들은 각자 건강하게 살고 있다. 스스로의 덧에 갇혀 증오나 분노만 일삼고 있는 이들보다 그들의 삶이 더욱 건강하고 풍요(?)해 보인다.

환경 운동이니 뭐니 하며, 무공해 비누를 파는 것을 천박하다고 생각했다.

일상으로 돌아가 낙인을 피하기 위한 면죄부라 생각했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긴장과 가난을 반복하는 것만이 운동이라 생각 했다.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을 증오해야 적개심이 유지되는 줄로만 알았다.

사람사랑 사람중심이라 했으나 스스로 옥에 갇힌 꼴이다.

치어의 모습으로 대양에 나가 생명을 잉태하고 돌아오는 연어 중 도덕적이고 순결한 놈만 걸러 내고자 한다면 그것은 온당한 것인가?

또 그것은 가능한 것인가?

목숨을 걸고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들의 행보에 존경심만 더 한다.

생존을 위한 치열함 보다 더 존귀한 것이 있는가?

존재감에 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다.

단 한 줌이라도 그들에게 가능성이 있다면 크게 웃으며 언제라도 반겨 줄 일이다.

다만 중증장애인에 비극의 단상이 대안의 기준이 되었으면 한다.

얼마 전 후배에게 크게 혼이 난 적이 있다.

형은 아직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어! 뭐 그리 잘 났다고 재단하고 분석하고 미워하나? 형이나 잘해 !

욕 한자리 못하고 밤새 끙끙 앓았다.

완장에 도취한 이들도 있고 완장을 차려는 이들도 있다.

올라간 듯 하나 모래성이니 내려오는 길이 가까이 있다.

애써 완장을 피하고 도량을 넓히기 위해 현자들을 더 만나 볼 생각이다.

후배 말대로 꼴 값 떨지 않고 길 위에서 길을 묻고자 한다. 아직 그릇이 되지 않았다. 아니 영원히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결과가 신통치 않아도 쭉 가고자 한다.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시기를 빈다.

아직 장애운동의 길을 일 세기 쯤은 더 달려야 하니 건강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되지도 않은 시비 덕에 마음고생 하신 모든 분들에게 지면을 빌어 용서를 구한다.

잘못했다. 용서 해 주시라 !!!!!!!

그리고 꼭 건강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얼마간의 돈이 모이면 꼭 소주 한잔 대접하도록 하겠다.

눈 앞이 선하다.

마음만이라도 고맙게 받겠다고 넉넉하게 웃어 주실 테니 .....

항상 감사하다.

09년 !!! 섬광 같은 포스가 작렬하시기를 ...............

백두공룡 배상 !!!

장애운동을 한다는 것은 유전적으로 무척 훌륭한 DNA가 없다면 기실 불가능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항상 화려함을 강점으로 한다. 재벌을 비난하지만 재벌에 편입되고 싶은 욕망과 일치한다. 물론 loser(루저: 패배자, 손해 보는 사람)가 재벌로 편입되는 일은 통계학적으로 잡히지 않을 만큼 불가능하다. 자본의 입장에서 천박하거나 가난한 것은 화려한 조명아래 어두운 그늘이 된다. 물론 그것을 들여다보거나 살펴보려하는 용기를 가진 이는 드물다. 주위를 살펴 볼 만큼의 여유는 자본의 입장에서 허락되지 않는다. 하루하루 링거를 꽂은 채 연명치료를 하는 모양새로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이후로 대한민국은 늘 울고 있다. 마치 타이게투스산(고대 스파르타인 들이 불구자 혹은 원치 않은 아이들을 버렸던 산의 이름)에 울려 퍼졌던 통곡처럼, 누군가는 타이게투스산에 울렸던 통곡을 대신해야 하지 않을까? 헛소리를 넘어서는 수준에서 통곡을 대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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