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일방적인 한 해였다. 세상일이 언제쯤 다 해결될 수 있을까? 과연 더이상 고민 없는 세상은 존재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바라볼 때, 완숙하고 완전한 나를 만들려고 하지만, 이는 그저 바라보며 기대하는 이상일 뿐이다. 만일 나 자신이 완전하다면, 이는 이미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다. 바람(desire), 욕구(Need), 결핍(want) 그리고 갈등(conflict)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종종 힘들게 한다. 고통스럽게 한다. 때로는 헤어 나오기 힘든 막다른 골목으로 우리를 밀어붙이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은 DNWC(바람, 욕구, 결핍, 갈등의 줄임말)을 해소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피와 땀을 흘리며 수고하기도 하고, 사회적으로는 구조를 바꾸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에는 진보(Progress)와 발전(development)라는 아름다운 단어들이 자랑스럽게 등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이 완전히 해결되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다 해결된 세상을 우리는 유토피아(Utopia)라 부른다. 그런데 유토피아는 'there is no place in the world'란 뜻이다. 이 세상에는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최근에 저출산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고민이 많다. 아마도 21세기의 한국은 100년 사이에 사라질 수 있는 국가 중의 하나가 될 지 모른다. 30년전만 해도 둘 낳기 운동,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건너뛰어 낳아도 지구는 생지옥 등 다양한 슬로건을 가지고 저출산을 유도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제는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하게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일이 증가하므로 인하여 여성의 양육부담은 어느 정도 해소된 것 같지만, 어머니와 애착(attachment)관계에 있어야 할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를 맞이한 어린 아이들은 어머니 없이 살아야하는 비극을 경험하게 된다. 어머니 품에서 독점적인 사랑을 받아야 할 아이가 어머니도 아닌 다른 사람의 품에서 그것도 영아기 부터 경쟁하면서 살아야 하는 숙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최근 일부 단체들이 시험을 없애자, 경쟁을 없애자 라는 구호를 통해서 결코 평등할 수 없는 그리고 평균화될 수 없는 인간사회를 두부 모 자르듯이 동일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운동과는 다르게 영유아기 부터 보육시설과 유치원에서 경쟁을 하면서 살아간다.

더욱 웃기는 일은 아이를 직접 양육하는 어머니에게는 100,000원을 주고,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는 어머니에게는 작게는 20여만원, 크게는 100여만원(이는 영아기의 보육료, 교사인건비 지원금, 교재교구비 지원 등을 합친 금액)까지 지원한다. 복지시설을 이용하는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사회. 이상한 사회가 아닌가? 오히려 아이를 직접 기르겠다고 하는 어머니에게는 100만원을 주고, 복지시설을 이용하는 어머니에게 적게 주어야 형평성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탈시설화를 주장하면서, 영유아기의 어린 생명을 보육시설에 맡기는 일에는 침묵하고 있는 이 사회는 무슨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 여전히 중증 장애아를 시설에 맡기고 싶어서 좋은 시설을 찾아 전전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어야 하는가?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서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일 때와 국회의원 배지를 옷에 달고 다니면서 국민의 목소리 보다는 당의 목소리에 몸을 낮추는 행태는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싼 돈을 들여서 만든 국회를 각목, 갈구리, 그리고 온갖 잡다한 도구로 부숴놓고 자랑스럽게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국회의원들의 불법적인 행태는 무엇으로 설명하는가?이젠 정치판 깊숙이 들어가 있는 졸부들과 이익집단들은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은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

다수결이 옳은지 대화와 타협이 옳은지 누가 알 것인가? 민주당은 자기들이 정권잡았을 때에는 "다수결의 원리"를 주장하고, 한나라당은 야당일 때 "대화와 타협"을 얼마나 주장했는가? 이젠 입장이 바뀌어서 상대방의 언어를 자기의 언어로서 강력히 주장한다. 이들은 한번도 국민인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국민의 뜻"이라고 억지주장한다. 비소(悲笑)가 그들에게 향해진다.'

그런데 이 뿐인가?국민들은 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을 위한 복지정책을 아무 생각없이 남용하고 있다. 장애인 등록카드, 장애인 전용주차장, 농사직불금, 유류보조금 등 얼마나 일들이 국민들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세금 안내고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어 호화스럽게 사는 인간들. 전두환은 골프 치러 가면서 벌금도 내지 않고, 게다가 그 아들의 호화스러운 생활을 보면서 세금도 추징하지 못하는 이 무력한 정부.

서민들에게 수수료를 거두어 많은 월급을 받고 직장 복지제도까지 확실하게 만든 은행들, 그러나 그들은 정부에게 돈을 받아 자신의 잘못을 보충하려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정치의 잘못된 행태에 대하여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죽은 종교들. 사실 종교 그 자체에 더 문제가 많으니까.희망이 있는가?

장애인 부모들의 목소리가 커져가는 것은 좋은데, 그 목소리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도 인식해야 할 시점이 지금이 아닌가?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커져가는 것은 좋은데, 그 목소리가 항상 바로 지금 커져야 하는 것인지를 자성해야할 할 시점이 지금이 아닌가?

특수교사, 전문가, 치료사 등 과연 자신들이 장애인 문제에 대하여 전문가인가 아니면 오히려 장애인으로 인하여 안정된 직업을 갖고, 도리어 장애인들의 복지를 방해하는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야 할 시기가 지금은 아닌가?

보건복지가족부(保健福祉家族部)가 보건복지가족부(補身伏地假族部)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자리와 입지만을 생각하고, 개혁(改革)과 혁신(革新)을 시도하기 보다는 큰일만 터지지 않기를 바라는 자세로 위선적인 집단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아닌지?

전체와 점진적 발전보다는 브레이크 없이 게다가 향방없이 달려가는 모습이 오늘 우리사회는 아닌지.2008년 저물어간다.

더이상 희망도 언급할 수 없는 채 맞이해야할 2008년 마지막 날이 아닌가? 참으로 혼란스러운 한 해이다.

이계윤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철학과 졸업과 사회사업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한국밀알선교단과 세계밀알연합회에서 장애인선교현장경험을 가졌고 장애아전담보육시설 혜림어린이집 원장과 전국장애아보육시설협의회장으로 장애아보육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예수와 장애인, 장애인선교의 이론과 실제, 이삭에서 헨델까지, 재활복지실천의 이론과 실제, 재활복지실천프로그램의 실제, 장애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펴내어 재활복지실천으로 통한 선교에 이론적 작업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 이 칼럼난을 통하여 재활복지선교와 장애아 보육 그리고 장애인가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자와 함께 세상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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