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금요일 오후가 되면 퇴근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다. 한인 케이블 TV에서 방송하는 ‘콘서트 70/80’ 을 보기 위해서다.

연령상 나는 80보다는 70에 속하는 세대다. 이미 나이가 지긋이 든, 한때 내가 그토록 열광하며 좋아했던 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잠시 30여년전으로 돌아가곤 한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번민하던 나에게 이들은 분출구를 마련해 주었다. 기타를 배워 그들의 노래를 흉내내고 따라 부르며 젊음의 열정을 잠재웠었다. 그들의 노랫말에서 삶에 대한 희망을 엿보고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웠다.

내가 일찍부터 소망했던 것은 남들처럼 사는 일이었다. 남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과외공부와 입시에도 시달리고 여학생과 연애도 하고 실연도 하고 취직하고 결혼해서 사는 일들이었다.

운이 좋아 바라던 일들을 한, 두번씩은 경험하고 이루며 살게 되었다. 새벽에 자명종이 울리면 투덜거리고 일어나긴 하지만 아직도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난 아주 어려서부터 내가 평생 걷지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집안의 어른들이 아직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온갖 잡다한 치료를 받게 할 때도 난 이 모든 일들이 다 소용없는 짓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어린 나이에 이미 삶이란 결코 공평치 않으며 세상에는 내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외쳐도 바꿀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내가 남은 생을 사는데 도움이 되었다. 내게 주어진 운명을 짊어지고 묵묵히 사는데 익숙해졌다.

세상은 내가 나를 바라다보는 눈길로 나를 보고 있었다. 스스로 나를 동정하고 연민의 정을 쏟아부을 때 세상은 나를 불쌍한 장애인으로 밖에 보아주지 않았다. 내 스스로 자신감을 얻은 후에야 세상은 나를 남들과 동등하게 보아주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칼럼이 어느새 끝을 맺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장애인 신문’을 시작으로 그 후 ‘자유공간’그리고 2008년 ‘에이블뉴스’에 이르기까지 비록 지면을 통해서지만 장애인들과 가까이 접할 수 있어 즐겁고 행복했다. 언제라고 약속은 할 수 없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비록 지면을 통해서라도 다시 만나고 싶다.

최근에 읽은 책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무엇인가를 산다는 것은 아직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내년 3월에 공연하는 ‘엘튼 존’의 콘서트 티켓을 샀다.

독자여러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제 칼럼을 읽고 잠시나며 즐겁고 행복하셨기 바랍니다. 전 행복했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의 기억 속에는 내가 한때나마 걸어 다녔다는 사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다만 낡은 사진첩에 남아있는 한 장의 흑백사진 이 한때는 나도 걸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뿐입니다. 세살에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81년에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주정부 산재보험국에서 산재 근로자들에게 치료와 보상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누군가 이글을 읽고 잠시 즐거울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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