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제목만 보고는 혹시라도 허리우드 영웅 중 한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영어가 부족한 탓도 있었겠지만, 워낙 올해는 배트맨, 핸콕, 아이언맨, 헐크, 람보, 인디아나 존스 등 허리우드 영웅들이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실제 이 영화의 제목을 영어로 해석해보면 'He was a quiet man'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다.’가 된다. 결국 평범하고 불쌍한 사람이지만, 뭔가 과거형으로 끝나는 것이 묘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영화 콰이어트 맨의 포스터.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이 영화는 회사에서 괴롭힘과 무시를 당하는 소심한 성격의 한 남자 밥 맥코넬(크리스천 슬레이터)이 우연히 회사 안에서 살인하던 동료 콜맨을 죽임으로써 회사의 영웅으로 삶이 바뀌고, 바네사(엘리샤 커스버트)의 생명까지 직접 구하면서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짝사랑하던 회사의 퀸카 바네사와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맥코넬의 짝사랑이자 회사의 퀸카 바네사가 척추를 다치기 전 모습.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맥코넬은 이웃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점심시간이 되면 회사 앞 길가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 회사가 잘 보이는 위치에 올라가 밥을 먹으면서 회사를 폭파시키는 상상을 한다. 뿐만아니라 그는 매일 자신의 사무실 서랍 속에서 총을 꺼내 숨겨 놓은 총알을 장전하며 동료들을 쏘는 위험한 상상을 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회사를 다니면서 상상했을 만한 일이다. 나 대신 누군가 이러한 상상을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기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소심한 모습을 극도로 보여주는 맥코넬의 클로즈업 장면.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그 옆으로 바네사가 지나간다. 자신에게 말을 진심으로 말을 걸어주는 유일한 여인, 자신을 훌라맨이라 부르지만 그래도 훌라걸의 아픔을 이해해주는 여인이 있다. 맥코넬은 이 여인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그러나 신은 그 여인의 시련을 안겨준다. 척추에 맞은 총알 때문에 마비가 와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토록 회사에서 잘나가던 퀸카 바네사가 마비가 되어 병원에 누워있으며, 얼굴과 머리를 빼놓고는 전혀 움직일 수 있는 게 없다. 오히려 죽지 못하게 자신을 살려준 맥코넬을 원망한다. 아마도 잘나가는 도중에 장애인이 된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멋진 로맨스 영화는 뒷전으로 미루고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맥코넬이 바네사의 생명을 구해준 장면.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바네사가 병원 신세를 지는 동안 아무도 자신에게 문병을 오지도 않는다. 그리곤 맥코넬이 유일하게 자신을 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퇴원하는 날 죽을 계획을 세우고 그를 끌어들인다. 죽기 직전 세상에서 제일 비싼 식사와 멋진 노래 공연을 함께 한다. 노래를 부르던 도중 그녀의 배설백이 떨어지기 전까지 그래도 멋진 추억을 만들기 위해 서로가 노력한다. 결국 지하철 역에 도착한 그는 바네사의 휠체어를 놓았다가 결코 그렇게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다른 영화들 속에서도 이러한 내용의 대사와 장면들이 등장한다. 특히 장애인 자녀와 부모가 동반으로 뭔가 일을 꾸미려 한다. 장애인을 포함한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작은 에피소드로 갖고 있을만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더 진정성있게 다가온다.

맥코넬과 바네사가 함께 노래하는 장면.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과연 바네사는 이 상황을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을까? 지하철 역에서 두 번째 생명을 구한 것에 화가나 소리를 지르다가 자신의 새끼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희망을 갖는다. 결국 그동안 자신의 잘못을 맥코넬에게 사과하고 바네사와 그 둘은 행복한 동거를 시작한다.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도 휠체어를 타고 다시 가서 동료들을 만난다. 자신이 총을 맞았던 장소를 과감히 찾아가서 그 고통스러운 과거와 맞서려고 한다. 또한 그녀는 성관계에서도 주도적으로 진행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가능한 방법으로 자신의 매력을 발산한다. 가슴을 만지자 맥박수가 상승하는 재치도 보여준다.

바네사와 맥코넬이 첫 키스하는 장면.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영화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휠체어와 관련된 아주 세밀한 관심과 배려가 느껴진다. 퇴원하는 날 그녀가 안정적으로 휠체어에 앉아있다. 목은 고정되어 있고 팔과 다리 가슴까지 벨트로 묶는다. 물론 그녀의 도움도 있었지만, 그녀의 팔을 목 뒤로 해서 휠체어에서 차로 제대로 옮긴다. 차에 타서는 이마를 자신의 허리띠로 의자에 고정시킨다. 휠체어를 뒤에서 잡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휠체어에서 침대로 바네사를 이동시킨다. 맥코넬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그냥 주어도 된다. 목의 움직임이 나아지자 휠체어 목을 지탱해 주는 받침대가 예쁜 그녀와 너무나 잘 어울리며, 고급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다소 일상에서 휠체어란 친구를 만나면서 스스로 소흘히 했던 부분을 다시 성찰해 볼 수 있었다.

바네사와 맥토넬이 사랑스러운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영화 속에 장애와 관련된 내용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섬세함이 부족한 그런 영화가 아니기에 조금은 기분이 좋아진다. 세상엔 조용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나 조차도 조용한 남자다. 이들의 일상은 그렇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세밀하게 보여준다면 세상은 행복해질 것이다. 우리 모두 세상의 조용한 사람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는 것을 어떨까?

‘유토피아’는 2007년 장애인영화 전문칼럼니스트 강좌 수료생들의 모임입니다. 저희들은 영화를 사랑하고 장애현실을 살아가는 눈과 감수성으로 세상의 모든 영화들을 읽어내려고 합니다. 저희들은 육체의 장애가 영혼의 상처로 이어지지 않는 세상, 장애 때문에 가난해지지 않는 세상, 차이와 다름이 인정되는 세상, 바로 그런 세상이 담긴 영화를 기다립니다. 우리들의 유토피아를 위해 이제 영화읽기를 시작합니다. 有.討.皮.我. 당신(皮)과 나(我) 사이에 존재할(有) 새로운 이야기(討)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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